시간의 흐름이 무의미해지고 일상이 비일상이 되는 곳
별거 아닌 것이 독특함과 유니크함으로 간주되는 현상은 흔하다.
당신만을 위한 화장품, 당신만을 위한 차. 세계에서 몇개 밖에 없는 한정품.
여행도 마찬가지로 별거 아닌 것이 독특함과 유니크함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일본 최고(最古)의 카스테라집, 삼대 미항, 죽기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여행지 top 100 등은... 사실 가보면 별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특함과 유니크함을 찾아 저 멀리 떠나고는 한다.
이번 나의 여행도 그러했다. 다른 거 다 필요없이, 백야와 유럽대륙의 북쪽 끝이라는 환상만을 쫓아 달려온 5일간의 여정. 비행기 6구간과, 페리 1번, 그리고 버스 2번을 타고 동아시아 대한민국에서 노르웨이 호닝스바그까지 날고, 떠서, 달리고, 다시 날아와서 드디어 호닝스바그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목적지. 노드캅의, 12시에도 지지 않는 태양을 보기 위해서 딱 한 번 더 버스를 탔다.
호닝스바그에서 노드캅으로 가는 버스는 몇개의 항구마을을 거쳐간다. 사람들이 사는 항구 마을은, 이곳이 북극권인가 싶을 정도로 녹음과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항구마을들을 거쳐서 약 20여분이 지났을까. 만년설이 펼쳐진 황야에 도착했다.
호닝스바그도 충분히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자연이라고 생각했지만. 호닝스바그에서 노드캅 까지 가는 길은 왕복 이차로의 포장도로 사이로 북극의 만년설이 저멀리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북극권의 황야는 일반 황야와 느낌이 달랐다. 하늘의 구름과 맞닿은 듯한 만년설이 덮인 황야를 보고 있자니 지금이 6월이라는 것도. 밤 10시를 넘어가는 시간인 것도 잊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어쩌면 나는 11.5년간의 학교에 있던 시간을 잊기 위해 저 멀리 노르웨이의 북쪽 끝으로 떠나려고 했었을 지도 모른다. 시간을 잊게 맞드는 풍경. 같은 지구이지만 다른 공간인 곳. 지구어디서나 시간은 똑같이 지나가지만 나의 삶은 다른 속도로 흐르는 곳. 상대성 이론은 속도에 따른 시간이 다르다는 얘기를 하였다. 어쩌면 삶의 시계는 속도가 아니라 장소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것이 아닐까.
북극의 만년설과 바다가 만나는 여백의 공간. 산과 바다 사이의 경계에서는 북극의 여름이 푸르게 펼쳐져 있는 것도. 밤 10시가 되어가는데 아직도 해는 한중천에 떠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영상의 여름에도 녹지 않고 남아있는 만년설을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는 태양은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지구의 다른 곳보다 더 강한 자외선을 내뿜어내지만,
그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순백의 피부를 자랑스럽게 내비치는 그런 풍경.
그런 비현실적인 듯한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양들과, 그런 풍경 사이를 질주하는 한 무리의 사이클러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한 동양인을 태운 버스가 달려갔다.
해가 지지 않아도, 현대인의 날짜는 변한다. 사이클러들도, 나도 날짜가 변하기 전에 노드캅에 도착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 00:00:00 이 되기 전까지 잠깐 커피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학기술이 덜 발달한 시절의 하루가 변하는 것은 새로운 태양이 뜰 때였을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하루는 태양에 의해 디지털적으로 명확히 구분되었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의 하루는, 23:59:59 → 00:00:00 이 되는 순간이다. 세슘원자의 진동수에 기반한 오늘날 하루하루는 사실 태양의 운동과 상관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바뀌는 순간은 점점 아무 의식없이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옛날 사람들은 백야가 왔을때 하루를 어떻게 정했을까. 해가 지지 않는 그 몇 달간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구분하며 지냈을까. 아날로그적 시대에서 디지털적으로 하루를 구분하지 못했을때 어떻게 살아왔을까.
2017년의 나는, 그리고 노드캅으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왜 00:00:00 에 태양이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순간을 보기 위해 달려왔는가.
디지털시대의 우리들은 하루의 기준이 태양이 아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분이 되는 순간에 태양이 떠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그 순간을 기념하는가.
우리의 '이' 하루가 특별하다고 느끼고 싶어서일까. 우연치 않게도 그날은 6/30 → 7/1 로 달이 바뀌는 날이었다. 나의 6월과 나의 7월엔 같은 태양이 떠 있었다는 것. 단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나는 5일간 여행을 떠났을까.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찾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뿐이지, 미래의 나는 아니다. 여행 계획을 시간단위로 꼼꼼히 짜더라도, 1시간뒤의 내가 있는 곳, 2시간뒤의 내가 있는 곳은 계획과 달라 알수 없다.
여행은 지금의 내가 떠나는 것이며, 여행을 다녀온다고 내가 딱히 바뀐 적은 없다.
하지만, 일상에 숨겨져 있는 '나'란 존재가 드러난다는 것은 여행의 유일한 부작용이자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23:30이 되자,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주변을 둘러봤다.
유럽대륙의 북쪽 끝(실제론 최 북단은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다만)은 북극해를 향해 깎아지른 절벽과 바위를 들이밀고 있었고
해가 하루가 바뀌는 순간에도 수면위에 떠 있는 광경을 보기 위해
제각각의 방식으로 실내에서 연주를 하기도, 듣기도 하고.
북쪽 끝을 상징하는 지구본 모양의 조형물 주변에 모여 있기도 하는 사이
6월의 마지막 해가 7월의 처음 해로 바뀌는 순간이 왔다.
카메라 센서에 명점이 생길 정도로 강력한 태양은 변하지 않았지만, 태양을 바라보는 우리는 같은 삶의 여행자로서, 낯선 사람들이지만 선뜻 새로운 하루를 맞이 할 수 있음을 축하하는 인사를 나눴다.
새로운 날을 맞이 하는 의식은 너무 길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관광버스를, 캠핑카를, 개인 렌트카를 타고, 혹은 사이클을 타고 각각의 숙소로 돌아갔고
나와 2명의 여행자만이 마지막으로 노드캅을 떠나는 버스를 타고, 다시 온 길을 되짚어 가며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하였다.
사실 이 모든 경험은 그냥 하루가 지나갔을 뿐이다.
하지만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비일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막차이지만 해가 떠 있다는 경험을 언제 해 보겠는가.
아니 해가 떠 있는데 새로운 하루, 한달을 맞는다는 경험을 언제 해 보겠는가.
유럽의 최 북단에 언제 오겠는가.
비일상적인 하루는 해가 수면 아래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유럽 대륙의 북쪽 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특별한 하루다.
해가 떠 있는 백야의, 유럽 최북단에서 맞는 또다른 하루일 뿐이지만, 그 하루 앞에 붙은 몇개의 수식어가 나의 하루를 비일상적인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일상을 맞기 위해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번 여행의 1차 목적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는 2차 목적을 향해, 해가 좀 지는 곳을 향해, 떠나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