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에스컬레이터 위, 아무도 정하지 않은 규칙

아무도 정하지 않은 규칙이 모두를 움직이는 과정

by 동후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내린다.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어간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비대칭적인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오른쪽에는 멈춰 서는 사람, 왼쪽에는 걸어 올라가는 사람.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오른쪽에 선다. 생각해서 선 게 아니다. 몸이 먼저 오른쪽으로 간 것이다.


가끔 외국인 관광객이 왼쪽에 멈춰 서 있으면 뒤에서 작은 긴장이 생긴다. 물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뒤에 선 사람의 발이 한 박자 멈추고, 시선이 잠깐 머문다. 혀를 차는 소리 하나 없이도, 그 미묘한 공기만으로 서 있던 사람이 슬쩍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누가 알려줬을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공기가 알려준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에스컬레이터는 그냥 서 있으면 올라가는 기계다. 두 발로 올라서면 자동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계단처럼 걸어 올라가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당연한 듯 한쪽을 비워둔다. 걸어 올라가는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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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규칙을 만들었을까

이것은 사회법이 아니다. '에스컬레이터 우측 보행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지하철 안내 방송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 방송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한쪽에 서 있었다. 방송이 행동을 만든 게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행동을 방송이 뒤따라간 것이다.


이건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가 만들어낸 행동의 문제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앞은 작은 전쟁터다. 사람들은 1분이 아깝다. 아니, 30초가 아깝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만히 서 있으면 약 40초. 걸어 올라가면 약 20초. 그 20초 차이가 지하철 한 대를 놓치느냐 잡느냐의 경계가 된다.


급한 사람은 걷고 싶다. 그런데 앞에 두 줄로 서 있으면 걸을 수가 없다. 틈이 없다. 그래서 한쪽을 비워달라는 암묵적 요청이 생겼다. 처음에는 급한 누군가가 "잠깐, 지나갈게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 장면은 반복되었을 것이다. 반복이 관습이 되고, 관습이 규칙처럼 굳어졌다.


위에서 정한 규칙이 아니다. 아래에서 올라온 규칙이다. 사람들의 반복된 행동이 패턴을 만들었고, 그 패턴이 눈에 보이는 질서가 되었다. 어느 날 먼저 선 사람이 오른쪽에 섰고, 뒤에 온 사람은 그 대열에 합류했다. 명시적인 합의 없이 만들어진 합의. 누구의 서명도 없는 사회적 계약이다.


흥미로운 건 나라마다 서는 방향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오른쪽에 선다. 일본 오사카에서도 오른쪽에 선다. 그런데 같은 일본이라도 도쿄에서는 왼쪽에 선다. 영국 런던, 호주 시드니 등 대부분의 국가는 오른쪽에 선다. 통일된 국제 규범은 없다. 각 도시에서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행동한 결과가, 그 도시만의 문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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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에스컬레이터 한쪽 서기는 정말 효율적일까.

런던 지하철은 홀본역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한쪽 서기 대신, 양쪽에 모두 서도록 유도한 것이다. 결과는 의외였다. 두 줄로 서 있을 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이 이동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걸어 올라가는 줄에서는 사람 사이 간격이 넓어진다. 안전거리가 필요하니까. 서 있는 줄에서는 간격이 좁다.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사람이 올라탈 수 있다. 한쪽을 비워두면 전체 수용량의 절반만 쓰는 셈이다. 몇몇이 20초를 아끼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아래에서 더 오래 기다린다.


개인의 효율이 전체의 비효율을 만든다. 꽤 의미 있는 역설이다. 그런데도 실험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한쪽 서기로 돌아갔다. 데이터가 증명한 것과 몸이 기억하는 것 사이에는 꽤 넓은 간극이 있다. "두 줄로 서면 전체가 더 빨라집니다"라는 안내를 머리로는 이해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는 순간, 발은 자동으로 오른쪽을 향한다. 인지와 행동 사이의 그 간극. 이것이야말로 인간 행동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영역이다.


행위 유도의 구조를 살펴보자

앞사람이 오른쪽에 서면 뒤에 오는 사람도 오른쪽에 선다. 첫 번째 사람의 선택이 두 번째 사람의 선택을 유도하고, 두 번째가 세 번째를 이끈다. 이 연쇄 반응이 에스컬레이터 전체의 질서를 만든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가 여기서 작동한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서 있는 장면. 그건 개개인의 판단이 아니다. 앞사람이 만든 흐름에 뒷사람이 올라탄 것이다.


에스컬레이터의 물리적 형태도 이 행동에 관여한다. 폭이 대략 두 사람 분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서거나, 걷거나. 만약 세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있는 폭이었다면 규칙은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아예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설 수 있는 폭이라는 물리적 조건이 두 가지 선택지를 만들었고, 그 선택지가 좌우로 분리되었다. 구조가 선택을 만들었다. 선택이 행동을 만들었다. 행동이 반복되어 관습이 되었다. 관습이 규칙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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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구조는 도로에서도 발견된다. 고속도로의 1차선은 '추월 차선'이라 불린다. 법적으로는 앞차를 추월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차선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1차선은 빠르게 달리는 차들의 전용 도로처럼 작동한다. 느리게 달리는 차가 1차선에 있으면 뒤에서 경적이 울린다. 이것도 법이 만든 규칙이 아니다. 반복된 행동이 만든 규칙이다. 에스컬레이터의 한쪽 서기와 놀라울 정도로 같은 구조다.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공간이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눈다.


두 줄 서기를 시도한다

최근 서울 지하철 일부 역에서 '두 줄 서기' 캠페인이 시도되었다. 에스컬레이터 위를 걷는 행위가 기계에 편하중을 가하고 고장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 그리고 낙상 사고를 줄이겠다는 이유였다. 바닥에 발 모양 스티커를 붙이고, 안내 방송을 틀고, 역무원이 나와 안내도 했다.


한 역에서 출근 시간에 지켜본 적이 있다. 스티커가 선명했다. 양쪽 모두에 발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은 여전히 한쪽으로 갔다. 스티커 위를 밟으면서도 왼쪽은 비웠다. 바닥의 안내와 몸의 기억이 충돌하는 순간, 몸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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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느리다. 수년간 몸에 새겨진 행동은 스티커 하나로 바뀌지 않는다. 이건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한쪽 서기라는 행동은 누군가 가르쳐서 생긴 게 아니다.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다. 좁은 에스컬레이터, 바쁜 출퇴근 시간, 급한 사람과 느긋한 사람의 공존. 이 조건들이 겹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행동이다. 그 행동을 바꾸려면 안내 문구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조건을 바꿔야 한다.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지금보다 빨라진다면 어떨까. 걸어 올라갈 이유가 줄어든다.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에 넓은 계단이 있다면 어떨까. 걷고 싶은 사람은 계단을 택하고,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양쪽 모두 서게 된다. 사람의 의지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선택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한쪽 서기는 결국 하나의 설계다. 누군가 의도해서 만든 설계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행동이 쌓여서 만들어진 설계다. 그리고 그 설계는 지금도 매일 아침, 수백만 명의 발걸음을 한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규칙을 만든 건 사람이다. 하지만 그 규칙을 유지하는 건 구조다.


내일 아침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설 때, 한번 느껴보자. 내 발이 오른쪽으로 향하는 그 순간을.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구조가 이미 나를 그쪽으로 밀어놓은 것인지. 어쩌면 우리는 매일 아침,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규칙 위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