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세보 버튼에 대하여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 누르기를
참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열린 채로 있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닫힘 버튼으로 간다. 가볍게 한 번 누른다. 문이 닫히지 않는다. 꾸욱 한 번 더 누른다. 그리고 짧게 한 번 더 누른다. 문은 결국 닫힌다. 내가 세 번 눌러서 닫힌 건지, 원래 그 타이밍에 닫히는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냥 습관적으로 누른다. 문이 곧 닫힐 걸 알면서도 누른다. 왜 여러 번 눌렀는지 잘 모르겠다.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층수 버튼을 누른 후 거의 반사적으로 닫힘 버튼을 누른다. 한 번이 아니다. 두 번, 세 번. 어떤 사람은 문이 거의 다 닫힐 때까지 계속 누른다. 바쁜 사람일수록, 서두르는 사람일수록 더 자주 누른다. 문이 빨리 닫히면 운행 효율은 올라간다. 층간 이동이 많은 건물에서는 닫기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운행 효율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다. 국내외 엘리베이터들 중 - 닫힘 버튼이 실제 회로와 연결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전력 소비를 줄이겠다고 끊어 버린 경우, 자주 열고 닫으면 제품 수명에 영향을 끼친다는 끊어 버린 경우도 있다. 장애인 접근성 법규에 따라 일정 시간 동안 열어 놓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버튼의 불도 들어오고, 누르는 감촉도 있데 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걸 플라세보 버튼(Placebo Button)이라고 부른다. 가짜 약을 먹었는데 실제로 효과가 느껴지는 것처럼, 작동하지 않는 버튼을 눌렀는데 문이 빨리 닫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 느낌은 착각이다. 하지만 그때 느껴지는 심리적인 안도감은 진짜이다.
핵심은 불안감을 제어하는 것이다. 인간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안도감을 얻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는 것보다 뭔가를 하는 게 심리적으로 덜 불편하다. 버튼이 실제로 작동하든 안 하든, 내가 행동했다는 사실이 불안을 낮춘다.
통제감. 그것이 목적이었다.
여기서 또 다른 심리적 기제가 작용한다. 인간은 결과가 불분명할 때, 반복 행동으로 불안을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 버튼을 눌렀는데 문이 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내 행동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면 뇌는 그 행동을 '아직 안 된 것'으로 처리한다. 미완료 상태는 반복을 부른다.
웹페이지가 느릴 때 새로고침을 연타하는 것. 결제 버튼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어 다시 탭 하는 것. 집을 나서다 문이 잠겼는지 돌아가 다시 확인하는 것. 왜 반복했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멈출 수가 없다. 전부 같은 구조다. 피드백이 없으면 행동이 반복된다.
어느 날 동네 허름한 상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닫기 버튼을 누르니 불이 깜박한다. 그게 전부다. 다른 피드백은 없다. 문은 움직이지 않는다. "문이 닫힙니다"라는 신호는 어디에도 없다. 그 공백 속에서 손가락은 다시 버튼을 찾는다.
시스템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튼을 누른 직후 낮은 '딸깍' 소리 하나, 아주 짧은 진동 하나. 그것만으로도 손가락은 멈출 수 있다. 내 행동이 전달됐다는 신호. 그게 있으면 두 번 누를 이유가 없다. 피드백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안심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 불편한 역설이 있다. 플라세보라는 걸 알게 됐을 때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버튼을 누른다. 나도 그랬다.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 손가락은 버튼으로 간다. 지식이 행동을 막지 못한다.
이 구조가 설계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꽤 불편하다. 작동하지 않는 버튼이라도 사람이 누를 수 있게 두는 게 맞는가. 통제감이라는 환상을 제공하는 것이 사용자 경험에 도움이 되는가. 사용자를 계속 속이는 게 정답인가. 나는 정답을 모르겠다. 그리고 닫힘 버튼은 오늘도 거기 있다.
나는 지금도 엘리베이터에 타면 닫힘 버튼을 누른다. 예전엔 세 번, 네 번 눌렀다. 지금은 꾸욱- 한 번 누르고 손을 뺀다. 그리고 기다린다. 달라진 건 없다. 문이 닫히는 속도도 같고, 도착하는 시간도 같다.
그냥 내가 덜 불안해졌을 뿐이다.
어쩌면 가장 잘 설계된 경험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한 번 눌렀을 때 이미 충분히 안심이 되는 것. 더 누를 이유가 사라지는 것. 수고로움을 줄이는 맥락을 제공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