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의자 사용법은 나만 헷갈리는 거냐

by 동동수목원


나는 매번 의자 앞에서 초기화가 된다


새 사무실 첫날, 배정받은 자리로 이동하여 의자에 앉자마자 레버를 찾는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에 의자 높이 조절과 등받이 고정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가장 먼저 높낮이 레버를 찾는다. 오른쪽 아래인가, 왼쪽 아래인가. 확률은 5:5이다. 왼쪽 레버를 내린다. 반응이 없다. 몸을 바로 세우니 갑자기 등받이가 뒤로 쑥 내려간다. '아 이건 등받이 고정 레버구나...'


이번엔 오른쪽 레버를 더듬거린다. 높낮이 레버는 그래도 직관적이다. 레버를 위로 당기면 의자가 위로 올라가고, 체중을 실으면 내려간다. 엉덩이를 약간 들었다 다시 앉으며 의자 높이를 맞춘다. 그다음, 등받이 틸팅 각도를 조절하고 싶다. 좌판 깊이, 헤드레스트 높이와 각도, 팔걸이 높이, 럼버 서포트 깊이 모두 미세 조정을 하고 싶다. 의자 하단의 좌우를 이리저리 더듬는다... 잘 모르겠다.


결국 난 자리에서 내려와, 의자 앞에 쭈그려 앉아 의자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사용법을 익힌다.


이상하게도, 이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이전 직장에서도 그랬다. 그 전 직장에서도. 집에 의자를 바꾼 날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레버를 찾고, 매번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매번 당황했다. 그리고 항상 의자 밑에 쭈그려 앉아 의자의 구조를 살폈다. 나는 의자 조작법을 그렇게 자주 까먹는 사람인가. 아니면 모두의 문제인가.

pexels-mintworkspace-28706299.jpg 의자의 기능이 많을 수록 복잡도는 올라간다


기억이 아니라, 단서가 없는 것이다

의자는 말이 없다. 컴퓨터는 부팅하면 화면이 뜬다. 커피머신은 물이 끓는 소리를 낸다. 엘리베이터는 층수를 표시한다. 모두 지금 자신의 상태를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의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레버가 하나 달려 있을 뿐이다. 그 레버를 어떤 방향으로 당겨야 움직이는지, 지금 잠겨 있는지 풀려 있는지, 얼마나 당겨야 작동하는지. 알려주는 단서가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맥락 의존적 기억(context-dependent memory)'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장소, 감각, 주변 환경의 단서가 있을 때 기억을 더 잘 불러온다. 반대로 단서가 없으면, 알고 있는 내용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초등학교 말고...국민학교 시절 의자가 생각하는 건 왜일까...)

초등학교 의자1.jpg 그냥 아무 기능없는 의자에 앉아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지


의자 밑에는 단서가 없다

그래서 매번 처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다 의자마다 작동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의자는 위로 당겨야 올라가고, 어떤 의자는 아래로 밀어야 한다. 앉은 채로 조작하는 것도 있고, 엉덩이를 들어야 하는 것도 있다. 등받이 각도 레버가 따로 달린 것도 있고, 레버 하나로 모든 걸 겸하는 것도 있다. 표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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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핸들은 어느 브랜드를 타든 비슷하게 작동한다. 전원 버튼은 어디서나 비슷하게 생겼다. 그런데 사무용 의자는 제조사마다, 모델마다, 가격대마다 조작 방식이 제각각이다. 완전히 다르면 차라리 새로 배운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살짝 다르게 작동하는 것, 그게 가장 인지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태다.


몸이 먼저 가고, 뇌가 나중에 따라온다

의자에 앉자마자 손은 이미 오른쪽 아래로 움직인다. '레버가 여기 있겠지'라는 경험치가 생각보다 먼저 손을 움직이게 만든다. 뇌가 "잠깐, 이 의자는 어떻게 생겼더라?"라고 묻기 전에 움직인다. 이건 효율적인 반응이다. 매번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몸의 기억이 '사무실 의자 일반'에 대한 평균이지, 지금 이 의자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는 점이다. 레버를 찾는 것까진 맞았다. 당기는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그 작은 차이 하나가 전체 경험을 어색하게 만든다. 그 어색함이 쌓이면 "나는 의자 조작을 못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니다. 의자가 말을 안 해준 것이다.


편안함에 도달하는 과정은 여전히 사용자가 감당한다

의자 산업은 오랫동안 "얼마나 편한가"에 집중해 왔다. 쿠션의 두께, 등받이의 곡률, 팔걸이의 소재. 고가의 의자는 앉으면 확실히 다르다. 그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편안함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누가 책임지는가.


높이를 맞추고, 등받이 각도를 조절하고, 허리 지지대 위치를 잡는 일. 이 과정이 불편하면 아무리 좋은 쿠션도 절반짜리다. 세팅이 끝나기 전까지 그 의자의 편안함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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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문을 열 때 설명서를 읽지 않는다. 손잡이를 잡고 당기면 된다. 형태 자체가 사용법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의자의 레버는 그 말을 하지 않는다. 앉았을 때의 편안함은 의자가 만든다. 그런데 그 편안함에 도달하는 과정은 여전히 사용자가 혼자 감당한다. 이건 미완성이다.


어떤 의자들은 레버 모양 자체로 방향을 알게 한다. 올라가는 방향이면 레버도 위쪽이 더 높게 설계된다. 아이콘 하나, 작은 돌기 하나. 그것만으로 틀리지 않는다. 헷갈리지 않은 게 아니다. 헷갈릴 조건이 없는 것이다. 편안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 과정을 누가 설계하느냐에 따라, 같은 의자가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


이제는 처음부터 의자 앞에 쭈그려 앉는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의자를 만나면 처음부터 쭈그려 앉아 의자를 파악한다. 눈으로 보고 레버를 찾고, 방향을 가늠하고, 예상이 맞는지 확인한다. 수많은 의자를 만났는데 여전히 탐색해야 한다. 의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였다. 어쩌면 우리가 불편함에 익숙해졌다고 말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불편한 채로 그냥 놔둔 것들일지도 모른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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