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편리한 전동 오프너를 무시하는 이유
전동 오프너는 아마추어나 쓰는 거지!
어느 저녁, 나는 와인 한 병을 꺼내 놓고, 소믈리에 나이프를 찾았다. 근데, 오프너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에 오프너가 없다. 이리저리 다른 도구들을 뒤적뒤적 거린다. 계속 뒤지고 있으니 아내가 전동 오프너를 사용하라고 한다. 그리고 전동 오프너 비하 발언을 한다.
"에이! 전동 오프너는 아마추어들이나 쓰는 거지"
우리집에는 전동 오프너도 두어개 정도 있고, 고급 디자인 브랜드의 오프너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굳이 수동 소믈리에 나이프를 찾는다. 결국, 한참을 뒤적인 끝에 수납장 구석에서 소믈리에 나이프를 찾았다.
바로 옆에는 전동 오프너가 있었다. 버튼 한 번 누르면 10초만에 끝났을 텐데.
소믈리에 나이프를 펼친다. 뾰족한 끝을 코르크 중심에 꽂고, 나선형 날을 천천히 돌려 박는다. 코르크 안쪽을 조금씩 파고드는 느낌이 전달된다. 적당한 깊이까지 날을 돌리고, 레버 중간에 있는 1단 지지대를 병 입구에 고정한다. 코르크가 수직으로 올라오는 각도를 생각하여 핸들을 꾸욱 들어 올린다. 코르크 마개가 적당하게 올라오면 레버 끝에 있는 2단 지지대를 병 입구에 걸치고 코르크 마개를 끝까지 뽑아 올린다.
이 과정도 와인을 즐기는 과정 중 하나인 것이다.
물론 나도 전동 오프너나 윙 오프너를 사용해봤다. 편하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결국 소믈리에 나이프를 찾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편한 건 맞는데, 뭔가 빠진 느낌이야."
다른 이유도 생각해보았다. 전동 오프너를 쓰다 보면 가끔 스크류가 비스듬하게 박히는 경우가 있다. 모터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예측할 수가 없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는 건 중간쯤, 동작이 멈추거나 코르크 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다. 그쯤이면 이미 늦은 것이다. 한 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기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물론 각도만 잘 맞으면 힘 안들이고 10초만에 코르크를 뺄 수 있다.
이상하다. 도구의 목적은 코르크를 빼는 것이다. 전동 오프너가 그걸 더 빠르게 한다. 그런데 왜 더 수고로운 쪽이 더 믿을 만하다는 느낌을 주는 걸까. 처음에는 취향이나 고집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소믈리에 나이프로 코르크를 뚫을 때, 손에 미묘한 감각들이 전달된다. 코르크의 밀도. 나선이 박히는 각도. 지렛대를 올릴 때 느껴지는 저항의 크기. 어떤 코르크는 부드럽게 빠지고, 어떤 코르크는 팔에 힘을 주게 만든다. 어떤 건 중간에 툭 끊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모든 것이 경험자에게는 데이터다. 나선이 비스듬하게 들어가고 있을 때도, 손이 먼저 안다. 수직 각도가 조금 어긋나는 느낌. 저항이 고르지 않은 감각이 느껴질 때. 그 순간 손목을 살짝 조정하면 된다. 코르크가 오래됐거나 건조해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더 주의해서 빼야겠다는 판단이, 머리가 아니라 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전동 오프너는 이 정보를 전부 생략한다. 버튼을 누르면 그냥 돌아간다. 편하지만, 병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을 때 알아차리는 게 항상 한 박자 늦다. 이것은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연결의 문제다.
UX 디자인에서는 오랫동안 마찰(friction)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클릭 수를 줄이고, 단계를 없애고, 기다림을 제거하는 방향. 그게 좋은 설계라고 여겼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와인 오프너 앞에서는 그 공식이 흔들린다. 소믈리에들이 쉬운 도구를 거부하는 건 비효율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 마찰 안에 담긴 정보를 잃고 싶지 않아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몸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손의 감각, 근육의 저항, 감촉이 쌓여서 하나의 판단이 된다는 것. 와인 애호가들이 "몸이 기억한다"고 말할 때, 그건 꽤 정확한 표현이다.
마찰은 때로 방해물이 아니다. 인터페이스다.
소믈리에 나이프는 쓰기 어렵다. 처음엔 나선이 비뚤어지게 박힌다. 지렛대 각도를 잘못 잡아서 코르크가 반쯤 빠지다 멈추기도 한다. 코르크가 부서져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전동 오프너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당연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이 어려움은 도구의 결함이 아니다. 학습 곡선이다. 그리고 그 곡선을 넘은 사람들이 바로 수동 오프너를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손에 기술이 쌓이면, 도구는 더 이상 저항이 아니라 확장이 된다. 코르크의 상태를 읽는 능력. 힘을 어디에 얼마나 써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 이것들은 전동 오프너를 쓰는 동안에는 생기지 않는다.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사진 작가들 중에는 자동 초점 카메라를 쓰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다. 더 오래 걸리고, 더 집중해야 한다. 틀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동을 고르는 이유는 하나다. 그 과정에서 피사체와 연결되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캡슐 머신이 더 빠르고 일정하다. 하지만 물 온도, 원두의 팽창, 추출 속도를 손으로 조절하며 커피와 대화한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구가 대신 해줄수록, 사람은 결과와 멀어진다.
과정이 사라지면 소유감도 함께 희미해진다.
전동 오프너와 소믈리에 나이프의 차이는 편의와 불편이 아니다. 정보를 얼마나 손에 남기느냐의 차이다. 쉬운 도구는 빠른 결과를 준다. 수고로운 도구는 과정을 준다. 와인 애호가들은 코르크를 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 병을 통과하는 경험이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굳이 나선을 꽂고, 지렛대를 올리고, 손목에 힘을 준다. 더 오래 걸리고, 더 신경 써야 하지만, 그 모든 수고가 와인을 마시는 경험의 일부가 된다.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항상 더 나은 경험을 만드는 건 아니다. 어떤 마찰은 없애야 할 장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경험의 질감이다.
수동 오프너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불편을 즐기는 게 아니다. 그 불편 속에 담긴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많은 마찰을 지우는 동안, 함께 지워버린 것들이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