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 최인규, 방한준. 1940
1930년대 후반. 수원의 어느 소학교에 영달이라는 아이가있다. 영달이의 부모님은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장사를 하시고 그 돈을 영달이와 할머니에게 부쳐준다. 그런데 몇 달째 생활비가 오지 않는다. 유일한 연락인 편지는 감감 무소식이다. 학교 수업료와 월세를 낼 날은 다가오는데 하필 할머니도 땡볕에서 일을 하시다 몸살이 나버렸다. 씩씩한 영달이는 수업료를 내지 못해도 냇가에 앉아 국어책을 읽는다. 국어책에는 일본어로 용감하게 전선에 뛰어드는 군인들의 이야기만 한 가득이다. 우렁차게 읽어보지만 허무한 메아리만 울린다.
지금쯤 영달이가 살아있다면 90대 노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90대 할아버지가 11살 아이였을 때의 모습을 한국영상자료원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교실 풍경이었다. 학교에서 그 작은 아이들이 모두 일본어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유창하게.
영달이는 참 성실한 학생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일단 책부터 펴서 복습을 한다. 선생님이 영달이를 부르면 천진난만한 아이의 표정이 아닌, 충직한 군인처럼 미간에 주름이 진다. 그렇게 열심히 학교에서 배우기 위해서, 영달이는 수업료를 빌리러 기꺼이 수원에서 평택까지 걸어간다. 넉살좋게 소달구지도 얻어타고, 물도 얻어마시며 걷다가 아무도 없는 음산한 숲길을 걸을 때. 영달이는 울지도 않고 학교에서 부른 노래를 부른다. '애마진군가' 라는 일본군 군가를.
그 장면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영달이가 겪을 미래의 상황을 알고 있다. 영달이가 그렇게도 열심히 학교에서 복습했던 내용들은 이제 아무 쓸모가 없어질 것이란 것을. 왜인지는 모르지만 슬프고 쓸쓸하고 소름이 끼쳤다. 왜 그 시절 아이들은 학교에서 그런 것을 배워야만 했을까. 걷는게 힘들고, 무섭다는 걸 표현하기에도 벅찰 아이인데. 그렇게 세뇌를 당할 정도로 철저히 교육을 시킨 일제가 지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수업료를 낼 수 없는 아이가 평택까지 걸어가 친척 어른에게 돈을 빌리러 가는 로드무비이고 동네 친구들과 이웃들이 그들의 형편을 알고 도와주는 따뜻한 이야기다. 엔딩에서는 추석 명절날, 부모님이 돌아오면서 모든 것이 행복하게 끝을 맺는다. 아이가 군가를 부르는 것쯤은 별 것 아닌 일상인 것이다.
그렇게 학구열이 넘치는 영달이는 불과 5년 후 해방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6.25 전쟁에 참전했을 것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해피엔딩인 영화지만 그들에게 닥칠 미래를 생각하면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그 후에 일어날 사건들을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영달이가 어른이 된 후, 그는 여전히 일본군 군가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두렵고 힘들고 외로울 때 그는 무슨 노래를 부를까.
(영화 <수업료>는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를 통해 감상 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XRMI02EXmN4?si=llUBrFSS6el3ph_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