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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온 Jan 13. 2024

극장에서, 1979년 12월로

<서울의 봄> 김성수, 2023

식당에서 틀어둔 뉴스를 보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이 극장을 너머 서점가와 SNS에서까지 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관객수는 벌써 천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부터 극장가는 침체기라고 할 수 있을만큼 썰렁해졌다. 사람들로 가득찬 극장의 풍경은 이제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은 9시 뉴스에서도 전할만한 소식이었던 것이다. 뉴스 자료화면으로 펼쳐진 영상들은 이랬다. 전두환, 근현대사 역사 관련 책들이 서점가 매대에 한 코너를 차지한 모습, 흔히들 'MZ세대'라는 이들이 유심히 그 관련 책들을 고르고 구매하는 모습, 직접 현충원 묘지를 찾아가는 이들, <서울의 봄> 영화를 보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시민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나는 개봉 당일 극장에서 <서울의 봄>을 봤다. 제작 예정이라는 기사를 봤을 때부터 궁금했던 작품이었고 황정민이 표현하는 '전두광'은 어떤 빌런일지 기대가 됐다. 극장 좌석에 편안히 앉아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그들의 난장판을 낄낄거리며 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램프가 꺼지고 스크린에 불이 켜진 순간, 나는 1979년 12월 12일 밤 어느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마치 이제 막 군대에 들어갔는데 그 사건을 맞닥뜨려서 우왕좌왕하는 군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 군인은 2023년에서 건너왔기 때문에 이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모두 알고 있다. 전두광을 잡지 못하면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이고 그는 8년까지 독재를 할 것이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할지. 이태신 사령관을 믿어보지만, 그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란 것도 안다. 그의 전략대로, 모두가 한 뜻으로 움직여줬더라면, 신사협정 따위 거절하고 하나회를 모두 잡아들일 수 있었다면... 결국 역사를 바꾸지 못했지만 이태신의 입을 빌어 이 말은 할 수 있었다. "넌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 그 대사와 함께 나는 현재 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나는 안전하게 극장 안이었다. 모든 것을 되돌리지 못하고 실패한 채로. 그러나 그 대사 덕분에 속은 시원했다. 시원한데... 왜 씁쓸하고 눈물이 나려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자격도 없는 그가 마음대로 쥐고 흔든 대통령이라는 권력 아래 피를 흘린 사람들이 떠올라서였을까.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화장실에서 오줌이나 싸고 있는 전두광의 뒷통수를 때려 그가 죽는다면 적어도 영화 속 사람들이 사는 80년대는 달라졌을까? 


뉴스에서 보도했던 서울의 봄 신드롬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자주 가는 미용실의 디자이너 분도 서울의 봄을 보고 한국사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극장 밖을 나오면서 내내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창에 '서울의 봄 실제' 이런 검색어를 썼다. 내가 몰랐던 것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영화를 보는 동안 느꼈던 긴박감과 재미가 증발하고 남은 자리에는 도대체 정말 그들을 막을 수 없었는지, 진짜 그들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영화는 끝이 나서야 시작이 되었다. 언론 시사회 영상에서 김성수 감독의 답변이 알 수 없는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주었다. 놀랍게도 감독은 12월 12일 날, 한남동에서 여러 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한다. 열 아홉살이던 그는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가까운 친구 집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 소리를 들었던 소년은 시간이 한참 흘러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허탈한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영화를 보면서 빙의한 그 사람은  1979년 열 아홉살이었던 그 소년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영화를 통해 그 당시 자신이 느꼈던 혼란스러움과 풀리지 않았던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생히 담아두었다. 인간을 보는 더 깊어진 시선도 함께. 관객들 모두가 열아홉 살의 김성수 감독이 된 것이다. 


<서울의 봄>을 본 이후, 새삼 잊고 있었던 영화의 힘과 파급력을 깨달았다. OTT와 숏폼 콘텐츠에 밀려 힘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극장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을 보는 듯한, 그 경험이 가능한 장르는 영화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커다란 스크린과 섬세하고 웅장한 사운드는 그 효과를 더한다. 그것이 주는 압도감은 우리의 생각도 바꿀 수 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역사책을 다시 집어들게 한다. 법을 새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변화를 주는 영화가 꼭 블록버스터, 천만영화는 아니다. 진심을 담아 공들여 만든 영화라면 반드시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새해에는 자주 영화관에 가보려고 한다. 무엇을 볼지 정하지 않고 문득 생각나면 영화관에 가는 것도 좋고, 개봉일을 표시해뒀다가 그 날이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예매를 해도좋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렇게 만난 영화에서 어떤 사람의 마음과 시선 속으로 들어갈 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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