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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온 Feb 17. 2024

계속 살아야한다는 것의 괴로움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더 웨일>

두 남자가 있다. 한 명은 웃음을 잃어버린 채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또 다른 한 남자는 200kg이 넘는 거구가 되어버렸다. 그 둘의 공통점은 목숨보다 소중한 이를 잃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살아가는 남자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다. 건물 관리인으로써의 나날을 살아가던 리는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리는 자신이 두고 왔던, 가족의 상실 이전의 삶을 다시 마주보아야만 한다.

<더 웨일>의 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 혼자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초고도비만이 되었다. 그의 곁에 남은 사람은 간호사이자 친구인 리즈 뿐이다. 리즈는 그에게 이대로 가다간 곧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건 농담이 아니라 리즈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고다. 찰리도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그는 죽기 전에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딸 엘리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다.


이 두 영화는 사람에 따라 보기에 너무나 괴로울 수도 있다. 영화 속 이야기도 물론 재미있지만, 그저 재미있네 하며 가볍게 보고 넘기보다는 자꾸만 내가 덮어두었던 불편한 무언가를 건드렸다. 회피하던 관계, 나의 안 좋은 (어쩌면 나를 파괴할 수도 있는) 습관, 떠올리면 괴로워서 잊으려 노력했던 트라우마. 리와 찰리도 그런 것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아예 내 인생에 없었던 일처럼 덮어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의 삶은 별반 나아지지도 않았고 여전히 괴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소중한 사람들은 먼저 떠났는데, 자신만 살아남아 있다는 죄책감에 숨쉬는 것조차 불편해보이는 그들. 분명 안 보고 살고 잊은 채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리와 찰리는 살아는 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죽은 것처럼 보인다.


찰리가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딸에게 계속해서 했던 말이 있다.

"제발 솔직하게 쓰란 말이야"

그처럼 이 두 영화는 우리에게 솔직해지라고 요구한다. 솔직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영화는 말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찰리는 다행히 죽기 전 보고 싶었던 딸을 만났고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하고 죽었다. 찰리는 자신이 진행하는 온라인 글쓰기 수업에서 얼굴을 감춘 채 목소리로만 수업을 진행했다. 학기의 막바지가 다다랐을 때, 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뭔가 그 장면에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보이진 않지만 자신을 가리고 있던 막을 걷어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히 꺼내며 '이게 나다. 어쩔래.' 라는 태도를 보이는 찰리.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를 자유롭게 만들었던 걸까. 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면 리는 형의 죽음으로 인해 잊고 싶었던 끔찍한 기억과 마주했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 곁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의연한 조카 패트릭이 있고 동네 친구들이 있다. 영화 후반부는 도망가고 회피하다 결국 자신의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묵었던 감정을 토해내는 리의 모습이 그려진다. 삼촌과 조카 아니랄까봐, 조카 패트릭도 아버지의 죽음 이후 덤덤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것 같았지만 엉뚱하게도 냉동실 문을 열다가 눈물이 터진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런 격한 감정도 일상의 한 부분처럼 그려낸다.


우리는 '그럼에도' 계속 살아간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을 마주해도 다음 날은 찾아오고, 처리해야할 일이 있고, 가야할 곳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뻔뻔하게 살아야한다는 것이 괴롭다. 결국 리는 삶 쪽으로 한 발 짝 나아갔고, 찰리는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떤 선택을 하든 보고싶지 않고 도망가고만 싶었던 자신의 상처와결국 마주보아야만 하는 순간과 맞닥뜨린다. 도망갈수록 상처는 점점 곪고 급기야는 아파서 견딜 수 없을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괴롭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이 무기력하고 괴로운 영화를 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문득 용기가 생겼다. 부정적인 감정, 기억들이 켜켜이 쌓인 먼지가 가득한 방 안에 들어갈 용기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청나게 눈물이 쏟아지고 아프고 구역질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바탕 다 쏟아내고 나면 이제야 진짜 나의 마음이 보인다. 어떻게든 계속 잘 살고 싶은지, 차라리 정말 죽고 싶은지, 다시 누군가를 보고 싶은지... 찰리가 우연치않게 죽은 애인의 방에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https://watcha.com/af/0/Q2yDF-

더 웨일: https://watcha.com/af/0/MYeKFq

(이 포스팅은 왓챠 큐레이터 활동의 일환으로, 구매 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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