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실패를 모르는 예언에 대한 글을 적은 적이 있다. 비가 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인디언의 기우제다. 최근에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모든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목사님의 말씀이라 잠잠히 듣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질문을 가장한 저항의식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럼 사도바울은요?'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설교하시는 목사님도 본인의 젊은 시절 그러한 치유를 이야기했던 목사님에게 어느 정도 반발심을 가지고 이 질문을 했었다고 한다. 왜인지 나는 정말 통쾌한 기분이 들었고 그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다. 치유집회를 인도하셨던 목사님은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바울의 상처는 치유되었다. 아니라고 되묻던 목사님에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울은 열심으로 기도한 후에 다시는 그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의 상처는 치유되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설교를 들으면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 기도하던 바울에게 그 상처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이자 치유가 필요한 상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에게 너의 은혜가 족하다고 말씀하셨다. 당연히 상처가 회복되는 기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후 바울은 상처를 두고 기도하는 것을 멈췄다. 상처는 그대로지만 더 이상 그 상처는 회복이 필요한 이전의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울의 상처는 치유되었다. 요즘 이 이야기를 자주 생각한다. 바울의 상처처럼 나에게도 쉽지 않은 환경이 있다. 이것만 없으면 살만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 문제가 잠시 해결되었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또 찾아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런 나에게도 환경이 아닌 내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겨우 한 달 정도 지났지만 이를 위해 제법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진정한 상처의 회복에는 나의 노력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