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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착한 말

by 더디지만 우아하게

어제 저녁, 6살 첫째를 씻기고 머리를 말리는데 아이가 갑자기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조금만 착하게 말해주면 안 돼요?"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내가 팔을 다친 이후로 내가 아이들을 씻기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내와 한 명씩 씻기면 비교적 수월했는데 저녁 먹고 설거지를 한 이후에 두 아이를 씻기고 일찍 재우려면 항상 마음이 분주하다.


어제도 첫째가 머리를 말리면서 계속 변기 위에 앉아서 장난을 쳤다. 그러다가 변기 덮개와 벽이 부딪히면서 그릇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바로 'OO야~'라고 조금 단호하게 말하며 주의를 줬는데 아이는 그게 무서웠나 보다.


평소에 상냥하게 말한다고 생각했던 터라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충격이 컸고 사실 조금 반발심도 생겼다. '너가 위험하게 장난치니까 그렇잖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실제로 아이에게 바로 이렇게 말했다. '그럼 OO도 앞으로 찡찡거리지 않고 울지 말고 말해줄 수 있어?' 지금 생각해도 참 쪼잔할 정도로 부끄럽다.


샤워를 마치고 아이와 책을 읽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앞으로 조금 더 착하게 말하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했다. 너도 대신 이렇게 해줘...라는 조건은 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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