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근원은 사랑이라는 삶의 뿌리
얼마 남지 않은 2021년. 위드 코로나가 함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수 많은 변화가 쏟아지는 정보 홍수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예측불가능한 시대일수록 절대불변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가치가 나 - 가족 - 우리 동네 - 우리 나라 - 세계 - 우주로 확장되는 것이 외부 요인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뿌리와 중심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하려면 내가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이 커야 한다. 내 그릇이 큰 만큼 수용하고 깊어질 수 있다. 내가 받았던 많은 “사랑” 중 세월이 지날수록 애틋하고 그림움이 커지는 사랑은 외할머니의 사랑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어렸을 적 누구나가 느꼈을 초등학교의 널따란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품으로 나를 품어주었던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마음을 사물로 표현한다면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따스한 색채의 따뜻한 촉감 그리고 무엇이든 품을 수 있는 “보자기”가 아닐까. 너무나 큰 힌트를 그림을 만나기도 전에 풀어버렸다. 외할머니의 사랑이다.
두 번째 글에서 만나볼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여인들과 항아리」이다. 그림을 함께 분석해보기 전에 "지금 그림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인지 잘 기억해두도록 하자.
아래와 같은 순서로 그림을 만나보려고 한다.
1. 에너지 방향
① 전체적으로 보기
② 인물
③ 사슴
2. 배경 입체적으로 느껴보기
3. 인물 분석
4. 여인들과 항아리에 담겨있는 그림들
그림을 만나는 첫 번째 방법은 인물과 배경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대상들이 불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 같지만 대상들을 선으로 이어 따라가 보자. 대상들이 선을 따라 도미노처럼 촤르륵 입체감있게 솟아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선을 따라 그림 속을 천천히 여행해보자. (오른쪽 위부터)하늘 향해 살짝 들려있는 기와 지붕부터 두 그루의 나무, 항아리를 든 여인, 꽃 장식과 새 장속의 새, 매화를 입에 문 사슴,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 날아가는 새, 앉아 있는 여인들 등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대상들이 선을 따라 만나다 보면 그림 속에서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넓어진다. 그리고 한 번 더 들어가서 도자기, 동·식물, 사람 등으로 분류해서 그림을 디테일하게 관찰해보자.
그림 가운데 사슴과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을 중심을 두고 인물들을 좌우로 나눠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형태가 단순화된 인물 - 오른쪽에 항아리를 들고 가슴을 가리거나 이목구비가 지워진 여인 - 중심에는 상반신을 드러낸 여인이 항아리, 얼굴, 가슴 3의 동그라미가 하나를 이루고 있고 치마를 한 손으로 잡고 있다. 그림 가운데에 사용된 색은 파란색, 하얀색이 주색이고 포인트로 붉은색을 사용했다.
우리 한국의 하늘은 지독히 푸릅니다.
하늘뿐 아니라 동해 바다 또한 푸르고 맑아서... 니스에 와서 지중해를 보고...
다만, 우리 동해 바다처럼 그렇게 푸르고 맑지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결을 좋아합니다. 깨끗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백의민족이라 부르도록 흰빛을 사랑하고 흰옷을 많이 입었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사는 우리들은 푸른 자기 청자를 만들었고,
간결을 사랑하고 흰옷을 입는 우리들은 흰 자기. 저 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 김환기,「片片想」,『사상계』, 1961, 9월호.
그림 한 가운데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사슴. 사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김환기의 「사슴」이라는 작품이 떠오를 것이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을 사용했고, 사슴의 뿔과 잎에 문 붉은 매화로 포인트를 주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색감과 함께 에너지 방향이다. 사슴의 뿔과 매화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사슴의 뿔과 매화의 방향을 살펴보았는가? 바람개비가 바람에 휘날리며 회전하는 것처럼 사슴의 뿔과 매화 잎에서 바람의 풍향을 느껴보자. 우리가 앞서 트레이닝했던 배경을 제외한 인물과 사물들의 에너지 방향의 운동성을 떠올리며 그 느낌과 사슴이 만들어내는 바람을 함께 느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짜잔!!!!! ①각 인물들과 배경이 분리되면서 배경으로 걸어놓은 천 조각들이 외할머니댁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들처럼 색감과 텍스쳐가 생명력을 얻어 펄럭이기 시작한다.
특히,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의 천조각 들에서 펄럭이는 입체감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②배경의 위,아래가 분리되면서 마치 인물 뒤에 병풍을 배경으로 펼쳐놓은 것처럼 배경에서 공간감이 느껴진다.
배경을 입체감있게 더 잘 느낄 수 있는 Tip!!
서두에 언급했던 "보자기"를 기억해보자. "보자기" 이미지를 마음에 새기고 「여인들과 항아리」작품을 다시 보자. 배경에서 천 조각이 한 장, 한 장 섬세하게 살아나는 것이 느껴지는가? 잔잔한 연못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커다란 파동을 만드는 것처럼 배경의 천 한 자락이 살아나면서 그림 전체에 생동감이 느껴진고 생생한 삶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원본의 그림을 다시 살펴보자. 처음에 그림을 봤을 때와 지금 나의 감각이 달라진 것이 느껴지는가?
처음「여인들과 항아리」를 보았을 때는 그림이 납작하고 평평하고 보이지 않았던 사물들이나 인물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들은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슴의 붉은 색을 중심으로 살랑사랑 포근한 바람이 불면서 배경의 천조각들이 펄럭이고 천 조각의 가장 밑바탕인(중앙 여인과 사슴 뒤) 푸른 배경까지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높고 넓은 공간감이 느껴질 것이다. 인물들과 사물들은 어떤가? 배경과 확실히 분리되어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고 우리가 애정과 관심을 갖는 만큼 그림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림이 하는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면 된다. 내가 그림에게 사랑을 주는 만큼 그림도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을 준다.
「여인들과 항아리」에서 중앙에 배치된 여인을 보고 오버랩되어 라파엘로의「아테네 학당」에서 그림 중앙에 배치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떠올랐다.
「아테네 학당」에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는 왼쪽 인물은 플라톤, 손바닥으로 땅을 가르키는 오른쪽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일반적인 분석으로는 플라톤은 이상주의자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 중시하기 때문에 손가락을 위로 향하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자이자 자연과학을 중시하기 때문에 손바닥으로 아래를 가르킨다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여인들과 항아리」를 보면 여인의 손 방향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오른손은 구름무늬의 항아리(동그라미)를 이고 위로 향해있고, 왼손은 치마(네모)를 잡고 아래쪽을 향해 있다. 그리고 떠오른 사상은 천원지방.
서양철학의 뿌리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동양철학의 뿌리인 천원지방을 그림 중앙에 녹아내었다.
「여인들과 항아리」그림을 천천히 살펴보면 김환기 화백의 다른 작품들이 오버랩 될 것 이다. 왼쪽(1번)부터 살펴보면「항아리와 여인들」, 2번째는 많은 분들이 떠올리셨을 「사슴」, 3번째는 「꽃장수」, 4번째는 「가을」까지.
전시회를 간다거나 마음에 드는 화가가 있으면 꼭 구글링을 해서 화가의 폭 넓은 작품의 세계를 한번 훑어보고 갔으면 좋겠다. 내가 마음만 열려있으면, 다채로운 예술의 세계를 즐길 수 있다. 1-4번의 그림을 한번 훝어보고 다시「여인들과 항아리」를 보면, 처음과 또 다른 느낌으로 그림을 마음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가위바위보에서 보는 손가락을 모두 펼치고 손을 열어야 한다. 새롭게 시작하고 수용하려면 마음을 열고 현재의 나를 인정하고 무언가를 담을 그릇을 키워야 한다.
「항아리와 여인들」보자기 배경에서 느꼈던 무한한 공간감. 새해에는 곱고 따스한 사랑 가득한 보자기를 내 삶의 배경으로 두는 것이 어떨까.
여러분, 모두 행복한 11월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