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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Feb 12. 2020

박나래 │ 도전하는 여자의 역사

ize 소속 당시 내보냈던 기사를 아카이빙 차원에서 모아둡니다. 그의 2019년 MBC 연예대상 수상에 경의를 표하며.





2019년 4월 23일


“하나가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또 다른 내가 되면 되니까.” 박나래는 ‘2018 원더우먼 페스티벌’ 강연에서 실패를 두려워하는 청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박나래는 지금껏 끊임없이 도전했고 또 실패했으며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해왔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던 박나래의 시간들을 정리했다.


                              


예능인 박나래의  첫 무대


박나래는 2002년 4월 SBS ‘진실게임’에 출연하며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섰다. 당시 18살이었던 그는 4명의 진짜 무속인들 사이에서 무속인을 연기하는 유일한 가짜였다. 그는 무당집 아이로 태어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가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MC의 요구에 “복채는 들고 오라”라고 당돌하게 응수하며 보는 이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박나래는 당시를 “모두가 개그맨이 되라고 해서 더욱 되고 싶지 않았지만 나만 몰랐던 천직이었다”(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라고 회상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배우를 꿈꿨던 박나래는 안양예고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했다.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던 그는 어머니의 무한한 신뢰와 지지 덕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오디션에 100회 이상 도전했고 단역 배우, 방청객, 인형극 등 늘 무대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른 첫 무대에서, 그는 베테랑 MC와 출연진을 깜빡 속여 넘길 만큼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떡잎부터 남다른 예능인 박나래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개그콘서트’에 서다



‘신 스틸러’가 되기 위해 상명대 연극과에 진학한 박나래는 “잘생긴 선배들과 술 한번 마시려고” 개그동아리에 들어갔다가 얼떨결에 KBS 21기 공채 개그맨 시험에 응시, 단번에 합격하며 예상치 못한 개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출근 첫날 “올해의 얼굴은 너구나”라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뭔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느꼈다. 2006년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서 귀신으로 데뷔한 그는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는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고 두 달만에 하차했다. 무대에서 몸에 잔뜩 힘을 준 채 정극 연기를 펼쳤고, “너 연기 되게 못해. 사람들이 너 부담스러워 해”라는 감독의 직언을 듣고서야 연기 엘리트 코스를 거쳐왔다는 자만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는 퇴근 후 새벽 5시까지 연기 수업을 받으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나 ‘비호감’ 이미지를 지울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성형수술을 받은 뒤에도 선배들에게 “애매하게 못생겨졌다”, “바퀴벌레보단 예쁘다”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박나래는 주눅 들지 않았다. 그가 ‘봉숭아 학당’에 돌아와 맡은 처음 역할은 ‘거액을 들여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두꺼비를 닮은’ 여성이었고, 누군가가 두꺼비를 닮았다고 손가락질하면 오히려 두꺼비의 표정과 동작을 모사했다. “저는 제가 망가지는 게 좋더라고요.”(YTN ‘김선영의 NEWS 나이트’) 그는 변화한 모습에 진심으로 만족했고, 타인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폄훼하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누가 뭐라 하든, 박나래는 매번 자신을 미녀 개그우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패션 No.5’의 인기를 뒤로 하고



‘개그콘서트’ 여러 코너에 출연하면서도 크게 활약하지 못했던 박나래는 2012년 패션모델의 포즈와 의상을 재해석한 ‘패션 No.5’ 코너를 통해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관객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자신의 단점을 역이용, 짧은 순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분장을 보여주며 ‘치고 빠지는’ 자신만의 개그 스타일을 찾았다. 그가 장도연, 허안나와 함께 출연한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4’ 방송분은 지금도 온라인상에서 회자되는 전설의 영상이다. 그러나 박나래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시청률이 20%에 달했던 ‘개그콘서트’를 떠나 시즌2 이후 하향세에 들어선 tvN ‘코미디빅리그 시즌3’에 합류한 것. 그는 장도연, 이국주와 호기롭게 ‘이개인(‘이게 바로 개그다 인간들아’에서 따온 팀명)’을 결성했지만, 토너먼트 특성상 얼마 지나지 않아 탈락하고 말았다. 박나래는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나가서 잘 될 줄 알았느냐”, “개콘 망신은 다 시킨다” 등 지독한 말들을 들었고, 스트레스에 과음을 하며 벽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뺨을 때리는 과격한 주사를 부리기도 했다. “처음으로 내 인생이 틀렸나 생각하게 된 때(tvN ‘어쩌다 어른’)”에도 박나래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코미디빅리그’에선 ‘소모임’, ‘썸앤쌈’, ‘요상한 민박집’, ‘중고 앤 나라’, ‘초저가 항공’ 등 계속해서 새로운 코너를 내놨고, 코미디 뮤지컬 ‘드립걸즈 시즌2~4’를 통해 공연장에서 관객과 호흡하는 법을 단련했다. 또 가장 힘든 시기 곁을 지켜준 주변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나래바’를 차렸다. 그렇게 박나래는 도약할 땅을 찬찬히 다지고 있었다.



                              


‘라디오스타’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박나래는 2015년 MBC ‘라디오스타’를 기점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는 ‘19금 입담의 여제’로 출연해 남성을 유혹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했고 욕망에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다. MC 김구라가 뿌리는 물을 맞아가며 정극과 콩트를 오가는 연기를 선보이는가 하면, 처음으로 ‘나래바’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MC들은 박나래를 두고 ‘너무 세다, 비방용이다’라며 혀를 내둘렀지만, 그는 “사생활이 노출될까 봐 인지도를 더 얻고 싶지 않다”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함께 출연한 유재환을 칭찬하며 자존감을 높여주고 윤정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호탕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5개월 만에 다시 출연했을 때, 박나래는 ‘라스’의 수혜자가 아니라 조력자로서 저력을 발휘했다. 그는 MC가 믿고 맡기는 ‘개그 자판기’, 나머지 출연진의 개인기를 진두지휘하는 ‘박 감독’,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사진도 거침없이 공개하는 ‘뼈그맨’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2주 연속 방송을 이끌어냈다. 김구라는 그를 향해 “술을 끊으면 에피소드가 없을 것 같은데”라고 장담했지만, 박나래는 그 순간에도 이미 술과 상관없이 프로그램 전반을 살피는 MC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데뷔 이래 오랜 고민거리였던 비호감 이미지는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박나래는 이후 각종 CF를 섭렵한 것은 물론 ‘마이 리틀 텔레비전’, ‘무한도전’ 등 MBC 간판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호감 가는 예능인으로 거듭났다.



                              


‘나 혼자 산다’를 ‘더불어 산다’로



MBC ‘나 혼자 산다’는 박나래 합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박나래는 어떤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넘어,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자리에 도달했다. 박나래는 ‘무지개 라이브’ 첫 출연과 함께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후에도 요리, 집 청소, 이사 등 소소한 일상을 한 편의 콩트처럼 풀어내며 자연스럽게 무지개 회원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고정 패널로 합류한 그는 정기모임, 여름나래학교 등을 기획해 무지개 회원들을 단합했다. 손님들의 식사, 음주가무, 불쇼, 마사지, 캐치볼을 거쳐 기념사진까지 책임졌던 ‘나래바’의 주인장이 ‘나 혼자 산다’로 영업을 확장해 근사한 시간을 베푼 것. 또한 출연진 고유의 특징을 짚어내거나 ‘썸’을 형성하면서 그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했다. 기안84, 김충재, 사이먼도미닉, 심지어는 전현무까지 남성 출연진 대부분은 한 번씩 박나래의 ‘썸남’을 거치면서 ‘나 혼자 산다’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러브라인을 몰아가는 주변인들을 만류하는 척 적극적으로 연기를 펼치면서도 동시에 선을 넘지 않는 박나래의 완급 조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재석, 강호동을 누르고 방송예능인 브랜드 평판 1위를 기록한 그가 그해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 후보에 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전은 계속된다



박나래는 현재 ‘나 혼자 산다’의 메인 MC이자 무지개 임시 회장을 맡고 있다. 전현무와 한혜진, 두 사람이 하차 전날 전화를 걸어 “큰 짐을 떠맡기게 된 것 같아 미안하다”라고 말했을 만큼, 박나래는 기안84, 이시언, 헨리 등 MC로서의 진행 능력이 전무한 출연진 가운데서 프로그램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MBC ‘구해줘! 홈즈’, MBC 에브리원 ‘비디오스타’, JTBC4 ‘마이 매드 뷰티 3’ 등 방송사와 장르를 막론하고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영역을 넓혀가던 박나래는 방송 초기 때부터 함께한 tvN ‘짠내 투어’에서 하차하며 숨 고르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도전 중이다. 지상파 메인 MC가 된 뒤에도 ‘코미디 빅리그’에서 분장 개그를 하며 매주 방청객들의 평가를 받는다. 오는 5월에는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뒀다. 넷플릭스 ‘농염주의보’를 통해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소품과 분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그에게 무대에서 오롯이 홀로 서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파격적인 시도가 될 것이다. 앞선 성과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실패의 쓴맛을 맛볼 수도 있다. 앞일을 장담할 수 없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박나래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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