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e 소속 당시 내보냈던 기사를 아카이빙 차원에서 모아둡니다.
2019년 10월 7일
“이 시스템은 정말 엄청난 팬덤을 가진 아이돌한테서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지난달 21일 방송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송은이는 송가인과 그의 팬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송가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팬 문화는 이례적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은 투표를 통해 선출한 ‘지역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별 체계를 갖추고 있고, 행사장을 미리 답사하고 주차 위치 및 동선까지 파악해 송가인 스태프 측에 전달한다. 단순히 지지와 애정을 표하는 것을 넘어, 행사 진행부터 경호까지 다양한 역할을 자처하며 일손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송가인이 TV조선의 주시청자층인 남녀 60대 이상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에서 우승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 팬덤의 운영 방식은 마치 팬덤이라기보다는 지역공동체처럼 보이기도 할 만큼 기존과 또 다른 성격을 갖는다.
송가인 팬덤은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기존 연예인 팬덤의 문화와 송가인을 통해 처음으로 본격적인 팬덤 문화를 형성해가는 노년층 팬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 나간다. 그들은 아이돌 팬덤과 마찬가지로 송가인의 팬카페 ‘Again’에서 활동하고, 팬카페에는 ‘등업(게시물 열람 및 작성 권한 상승)’ 방법부터 ‘스밍(스트리밍의 준말로 특정 곡을 계속 재생하면서 음원차트 순위를 올려주는 행위)’ 안내 등 기존 팬덤과 비슷한 방법으로 송가인을 응원한다. 하지만 회원들 다수가 팬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특정 회원을 호칭할 때는 모두 끝에 ‘님’을 붙여야 하고, 팬들의 연령대를 생각해 각종 공지의 글자 크기는 상당히 크다. 또한 지난달 출시된 송가인의 굿즈는 판매 당일 바로 쿠션, 우산, 유기세트 등 일부 품목이 품절됐고, 페이지 조회수(PV) 3만 이상을 기록했다. 굿즈 판매처인 11번가 관계자는 “40~50대 장년 남성의 구매 비율이 타 굿즈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송가인의 팬이라고 밝힌 A는 “예전에 나훈아를 좋아했기 때문에 팬카페에 가입하면 새로운 정보를 접하기 쉽다는 걸 알고 있어서 송가인에게 관심이 생기자마자 바로 가입했다”라면서도 “요즘은 팬이 그냥 좋아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뭔가 복잡해져서 어렵다”라고 말했다. 팬카페 초창기부터 지켜봤다는 B는 송가인 팬덤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풍선을 들고 다니다가, 단체복과 모자를 맞췄고, 나중에야 저녁 행사에 사용할 수 있는 응원 도구들을 제작했다. 우리 나이에 ‘아이돌 팬’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H.O.T.나 젝스키스의 팬들이 어떻게 했었나를 참고했다가 요즘 아이돌 문화를 찾아보고 시행착오도 거치면서 점점 발전한 거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기존 팬덤 활동에서 찾으면서 팬덤 활동을 학습하고, 그 과정에서 팬덤의 모습도 실시간으로 변화한다고 할 수 있다.
낯선 문화는 혼란과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7월 팬클럽 창단과 관련, 소속사와 팬카페 회원들 간 의견 충돌이 있었다. 소속사는 팬덤의 규모가 커지면서 체계적인 팬클럽의 필요성을 주장, 가입비 납부 제도를 도입하고자 했다. 반면 팬카페에서는 팬클럽이 진입장벽이 되거나 팬들 사이의 차별을 조장할 수 있으니 반대한다는 의견과 소속사의 뜻에 따르자는 의견이 대립했다. 결국 팬클럽 없이 팬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으나, 최근 팬카페 운영진 사이에서 다툼이 발생하면서 내부 체계 정비가 불가피해졌다. 또한 송가인의 고향집에는 하루 200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그중 일부는 송가인의 부모가 거주하고 있는 사적인 공간에 불쑥 들어와 술을 권하거나 사진 촬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우려한 다른 팬들은 CCTV와 함께 ‘시설물 및 물건 함부로 손대지 않기’, ‘부모님께 먹거리 요구하지 않기’, ‘송백구(반려견), 조나비(반려묘) 괴롭히지 않기’,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등 준수사항을 담은 안내문을 설치하기도 했다. 아이돌 팬덤이 초창기에 겪으며 팬덤 내부에서 어느 정도 원칙을 정한 문제들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기존 연예인 팬덤은 커뮤니티나 SNS 등을 통해 다른 팬덤의 사례 등을 참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송가인의 팬덤은 세대가 다른 팬덤의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 대신 팬덤 내의 갈등을 스스로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송가인 팬픽(Fan Fiction) ‘어느 63세 팬의 이야기’는 그 노력의 일환이다. 여타 팬픽이 연예인끼리 또는 연예인과 팬의 관계를 다루는 것과 달리, 해당 글은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노인이 주변의 도움을 받아 송가인의 음악을 즐기는 이야기를 그린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청년층에게도 호응을 얻으며 수필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하는 이 팬픽은 40대 C의 창작물로, “어르신들의 정서에 맞게 거부감 없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스밍’을 두고 분위기가 좀 격해졌던 적이 있다. ‘내 가수’ 순위를 올리고 싶은 분들도, ‘스밍’이 정말 어렵고 힘들어서 못하는 분들도 각자 나름의 입장이 있다.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팬픽으로 설명해보자 싶었다.” 그는 자신의 팬 활동 초기의 경험을 들려주며 팬 문화에 서툰 이들이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고 했다. “나도 처음엔 바라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가수님이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분인 것 같아서, 팬들과 소통도 그렇고 워낙 잘하시니까 걱정거리가 없다” 팬덤이 ‘동네 사랑방’ 같은 분위기이기 때문에 가끔은 다툴지언정 기본적으로 따뜻함을 가졌다는 게 C의 설명이다. 팬카페 안의 팬덤이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송가인 팬덤의 팬들은 송가인은 물론 팬덤이라는 공동체 자체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송가인은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이동 전 현장에 모인 팬들을 만나 30분 정도 대화를 나눈다. 아이돌도 이런 식의 미니 팬미팅을 열지만, 송가인처럼 인기가 많은 가수가 거의 모든 무대마다 미니 팬미팅을 여는 경우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신 팬들은 자진해서 천막을 나르고, 물품을 나눠주고, 목청껏 응원 구호를 외친다. 이런 팬 활동을 하려면 사전 준비 시간까지 6~10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팬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많은 팬들이 일정에 맞춰 휴업을 하거나 월차를 내고 찾아온다. C는 “그날 하루를 즐기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됐다. 정리까지 끝내고 나면 성취감과 함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도 느껴진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은퇴, 노후 등으로 고립감과 무력감을 느끼기 쉬운 노년층은 팬덤 내에서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받는다. 80대 부부, 노모를 모시고 오는 아들, 현직 초등학교 교감 등 여러 이유로 송가인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팬카페에서 가까운 사이가 된다.
전 세계 음악 산업에서 가장 거대한 팬덤을 가진 그룹 비틀즈의 첫 싱글 ‘Love me do’는 1962년 발표됐다. 노년층이 대중문화 팬덤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 일본의 팬덤 역시 노년층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젊은 시절부터 팬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송가인의 팬덤은 장년 또는 노년이 돼서 ‘미스트롯’을 통해 처음으로 팬 활동을 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송가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의 클립 영상의 조회수를 올리고, 송가인에 관한 각종 기사 및 콘텐츠에 달리는 댓글을 ‘관리’하는 일 등은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새로운 세계다. 이 팬덤의 연령대는 기존 팬덤 대비 상당히 높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팬덤 내에서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이 기존 팬덤 문화와 노년 세대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아직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그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한창 ‘덕질’하기 좋은 때를 즐기고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