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금가락지들
춘자의 손이 비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손가락과 손목에서 이것저것 알 수 없는 금붙이들, 정확히는 금이라 속아 샀지만 금이 아닌 것들이 사라져 있었다. 내 기억 속 대부분의 춘자는 보라색으로 물들인 렌즈에 안경다리엔 크리스털이 촘촘하게 박힌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과거의 설움을 그런 소비로 달래곤 했다. 춘자가 벌고 잃었던 돈이 집안을 일으켜 세웠고, 때론 사기꾼들에게 쥐어졌고, 번쩍거리는 무언가로 바뀌어 그의 열 손가락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머리칼도 알록달록 염색을 하고 다녔더랬다. 특히 빨강과 보라를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색들과 일치한다는 걸 깨달은 것은 고등학생 때쯤의 일이다. 그와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그는 내게 피치 못할 영향을 미쳤다. 유난히 밝은 피부색이나 각진 귀밑 턱이 그랬다. 손맛이 좋았던 그는 뭐든 음식을 맛있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별 재료도 없는듯한 나물 무침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나물을 무치는 데에 나물과 기름 외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재료와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엄마에게 그런 음식을 먹고 자랐으면서도 요리에 소질이 없다고 툴툴거린 적이 있는데, 정작 나는 요리를 귀찮아하는 것에 비해 실패하지 않는 것을 보면 춘자의 손맛은 엄마를 스쳐 내게 내려온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며칠 내내 사골을 고아 도가니탕을 끓이는 춘자만큼 부지런하지도 기운차지도 않다. 그는 아들이 호떡이 먹고 싶다고 하면 집에서 커다란 소쿠리 가득 호떡을 부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춘자는 점점 요리를 않게 됐다. 요리가 열과 날카로운 도구를 필요로 하기에, 삼가야 하는 위험한 일이 된 것이다. 그토록 수많은 요리를 해냈던 춘자의 손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던 반지들이 그가 요리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됐을 때 모두 사라진 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