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리 Jun 22. 2024

20대 회고, (1)대학

행복은 진짜 성적순일까? 좋은 대학 나와서 행복한가?



(1)


20대의 절반을 대학생의 신분으로 살아왔기에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대학과 관련한 회고를 해보았다. 누군가 너의 대학 생활은 어땠어?라고 물어보면 나는 주저 없이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야."라고 말할 수 있다.


밴드 동아리, 학회, 창업, 지각과 무단결석, 휴학, 12학점 듣기, CC, 미팅과 소개팅, 과 수석, 인생 친구 만들기, 알바/과외, 기숙사 생활 등등


'조금 더 열심히 놀아재낄 걸(?)' 정도를 제외하고는 해보고 싶었던 것들은 전부 다 해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졸업식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였다.


내가 6년 간 학교를 다니며 이루었던 성과와 경험한 것들에 대해 너무 만족스러웠고 그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유의미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쳤다.




(2)


물론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내가 '좋은 대학'에 다녔기 때문이다.


내가 졸업한 대학은 서울에 위치한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곳이다. (* 명문대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표하는 대학 순위에서 비교적 높은 순위에 있는 대학,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어쩌고"에서 비교적 앞 순서에 위치한 대학. 이 글에서는 이 정도로 정의하고 있음을 참고하시길.)



대학 그 자체가 주는 행복감은 1, 2학년 때까지 뿐이었다. 졸업을 향해가면서 새로운 목표와 과제들이 주어졌고 나는 점점 중심을 잃었다.


우리 학교엔 날고 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학생, 졸업생 포함) 타고나기를 머리가 비상한 인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노력하는 인간, 태어나보니 부자인 인간 등.


모든 측면에서 평균 수준의 인간인 나는 대학 시절 내내 자연스럽게 다양한 통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인간들과 나를 비교하며 살았다. 그 과정 속에서 질투나 자괴감을 느끼는 날들이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과 목표점이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었다.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래. 연대 나오면 저 정도 회사 타이틀은 달아야지. 나는 저 사람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니 저 정도는 벌어야지. 저 정도 직업은 가져야지. 저 정도 되는 남자친구는 만나야지.


과도한 목표 설정의 문제점은 일단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에 있다. 기준점은 저 위에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괴리감을 느끼고 매번 실망한다. 실패도 반복되면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절망의 어머니가 된다.


한 번 높아진 눈은 다시 내려오기 쉽지 않다. 나는 대학생 때 정의한 '멋있는 나'가 되기 위해서 강제로 열심히 살고 있고 매번 목표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끼며 살고 있다.




(3)


목표가 높은 것은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충분한 자아탐구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목표의식은 나 자신을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데려다 놓을 수 있다.


목표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도록 하는 요소에는 사회적인 시선들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처럼 은근히 사회적 시선을 신경 쓰고 보편성에서 벗어나는 것에 불편감을 느끼는 유형의 인간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무엇이든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을 때에는 많은 것들이 따라온다. 그중 하나는 타인들의 기대감이다. 학벌주의가 강한 한국에서(요즘은 좀 덜할 수도) 명문대생이 가진 상징성은 꽤 선명하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명문대생들에게 여러 가지 기준들을 제시하고 기대한다. 그리고 사회적 경험치가 낮은 대학생들은 그러한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취약하다.


"왜 연대 졸업해서 여기서 일 해?"  

"고대면 7급(공무원) 보지.."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위와 같은 말을 내뱉는다. 통계적으로 명문대 졸업 후 고소득이 보장되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어려운 시험 정도는 뚝딱 해치우고 전문직 혹은 고위 공무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사실이다.


때문에 위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대단히 잘못되었다거나 편견 가득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명문대생들의 진로 고민 폭을 좁힐 수 있다.




(4)


나도 그렇게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버린 나약한 명문대생 중 하나였다. 하고 싶었던 것들이 정말 많았는데 내 소속 집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속으로만 품고 있다가 개인적인 목표에서 배제해 버린 것이 정말 많다. 물론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던 것도 아니었겠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고 애초에 선택지에서 삭제해 버린 것에 대해서 다소 후회스럽다.


어떻게 보면 나는 너무나 간절하게 원했던 대학에 입학하여 자의식 과잉 상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연대생'다운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해 멋대로 정의하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사회적 시선을 신경 쓰면서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간과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거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것 맞아?'

'이거 너한테 정말 필요해?'

'지금 너 진짜로 즐겁고 만족스러워?'


수시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면 지금쯤 꽤 다른 모습의 내가 되어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5)


결론적으로 대학 생활을 회고하며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대학은 그저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앞으로 내가 먹고살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 기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아니 솔직히 그 이상의 상징성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의식하면 안 된다.)


내 동기들이 무엇을 하든 내 가족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나의 욕구와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창업, 알바, 동아리, 여행 등의 경험들을 쌓아가면 좀 더 의미 있는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는 미숙하여 그러지 못했으나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높아져버린 눈은 어쩔 수 없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남이 아닌 나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 성실하고 주체적으로 살아야지.


그래도 대학생 때가 제일 좋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