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잉지잉~' 휴대폰의 진동소리에 누구의 전화인지 확인해보니 딸아이다.
"엄마, 오늘 나 혼자 산다 볼 거예요?"
"글쎄, 오늘 누구 나오는지 보고 결정할래."
우리 집은 공식 취침시간은 9시다. 정확히는 9시에 침대에 눕고 이야기를 나누다 9시 30분에 잠이 드는 것이 목표이다. 가끔은 30분 늦춰지기도 하지만 10시를 넘기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금요일 밤은 나 혼자 산다를 함께 보며 늦게 잤다. 3~4번 했더니 아이는 계속 보고 싶어 하는 눈치다. 반면, 나는 보고 나면 후회되는 날도 있다. 특히 재미없는 편에서는 더욱 후회된다. 괜히 기다렸나 싶다. 마치 새벽에 하는 한일전을 보러 일어났다가 별 소득 없이 끝나는 축구를 볼 때의 기분이랄까. 괜히 일어났다 싶은 그 심정. 그래서 지난주 딸에게 선언했다. "엄마는 이제 나 혼자 산다 안 볼래. 재미있는 날은 괜찮은데 재미없는 날에는 너무 허무해." 그 말을 기억하고 금요일 오후 나에게 전화를 걸었나 보다.
10분 후 딸아이의 문자가 왔다. "엄마 나 혼자 산다 예고편 찾아봤는데 가루 요리사 사람이랑 헨리 나온대요." 엄마와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싶은 아이는 적극적으로 예고편까지 찾아보고 나에게 출연진을 알려주었다. 왜 이렇게까지 엄마랑 같이 보려고 애쓰는 걸까.
"OO아, 그런데 왜 엄마랑 같이 보고 싶어 해? 정 보고 싶으면 혼자 보고 자도 되잖아?"
"나는 늦은 시간까지 엄마랑 TV 보면 둘만 같이 있는 시간이라 좋아요. 그때 되면 동생도 잠들잖아요."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
첫째는 6년 동안 외동딸처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2살 때부터 5살까지 친할머니의 손에 자라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녀 사랑도 남다르시다. 게다가 친가에서는 그때까지 유일한 손녀였으며, 외가에서는 오빠만 둘 있는 막내였다. 그렇게 사랑을 독차지하던 딸에게 동생이 생겼다. 5살부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던 딸의 말을 듣고 임신 계획을 세웠다. 1년 이상 노력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찾아왔고 첫째 7살에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에게 동생은 누워만 있을 때까지는 그저 귀여운 동생이었다. 동생이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모습에 질투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엄마, 동생이 이렇게 늦게 크는 줄 알았으면 동생 갖고 싶다는 말 하지 말걸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정말 아이답다 싶었다. 그저 같이 놀 동생이 필요했던 건데, 이렇게 엄마와 어른들의 사랑을 나눠가지게 될 줄은 몰랐을테다.
둘째는 사랑이다. 하는 모든 짓이 귀엽고 예쁘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귀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딸이니 더 예쁘다. 첫째 눈에도 내가 둘째를 바라볼 때 눈에서 쏟아지는 하트가 보이는 걸까. 내가 둘째에게 뽀뽀라도 할라치면 쏜살같이 달려와 진한 뽀뽀를 한다. 둘째가 갖고 노는 장난감을 보면 본인도 하고 싶어 하고, 둘째가 공주 같은 원피스를 입으면 자기도 예쁜 원피스를 사달라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너는 11살이고 동생은 5살인데, 5살 하는 게 부러워?"라고 물으면 "응, 엄청 부러워. 나도 5살 하고 싶다." 한다. 둘째 덕분인지 아직 아기 같은 11살이다.
"엄마, 나 잠들면 꼭 깨워줘요."
"엄마, 헨리 아저씨가 하는 물감 그림 나도 하고 싶어요."
"엄마, 가루로 만든 음식 우리도 먹어봐요."
"엄마, 엄마랑 TV 같이 봐서 너무 좋아요."
이 아이에게 엄마는 동생과 나누고 싶지 않은 존재이다. 유일하게 동생과 나눌 필요 없는 '나 혼자 산다'를 보는 시간이 소중할 수밖에. 그 마음을 이제 알기에 나는 금요일 밤이면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나 혼자 산다'를 볼 계획이다. 그리고 5살이 되고 싶은 11살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늦은 잠을 청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