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사태에서 순간순간 고민될 때
"알려드립니다. OO직원 한 명이 코로나 검사 결과 양성 판정받았습니다. OO건물은 방역이 이뤄질 예정이며 하루 동안 폐쇄됩니다. 모든 임직원은 바로 귀가조치해주시기 바랍니다."
기계적인 알림음이 소식을 알렸다. 회사 직원 중 한 명이 양성 판정을 받은 이후로 두 번째 건물 폐쇄 조치다. 내가 있던 건물은 아니다. 순간적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차. 혹시나 하여 예방 차원으로 귀가 조치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다니.
건너편 동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진귀한 풍경을 목격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집에 일찍 간다는 마음에 기뻤을까? 혹시 나도 걸린 것 아닐까 걱정되었을까?
코로나 19를 오래 겪으며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식당에 가도 될까, 카페에 들러도 될까, 영화관 사람 없다는 데 다녀올까, 공원에 한 바퀴는 괜찮지 않을까. 모든 순간 판단의 연속이다. 될까?라는 물음 뒤에는 걱정이 수반되어 있다. 동시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선택을 하게 될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기도 하고 나의 신념을 다시 한번 떠올리기도 한다. 가족과 뜻을 같이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FM이다. 코로나 19 사태 초반은 꽤 철저히 단속했다. 3월 한 달 동안 양가 부모님 댁도 찾아뵙지 않았다. 이 정도로 부모님을 못 뵐 정도니 외부 음식점, 카페 이런 건 말할 것도 없이 집에만 있었다.
월요일 회의 시간 전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주말에 뭐했어요?"이다. 어김없이 그날도 이런 질문을 받았고 난 "요즘 어딜 나가요. 안 나가죠. 집에만 있어요." 했더니 "FM이네."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던 우리도 4월부턴 지쳤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외출이 잦다는 것이 눈에 더 보였다. 우리도 조금 느슨해지고 싶은 마음에 나가도 되는 이유를 찾았던 건 아닐까. '남들도 다 하는데 우리도 이제 슬슬 다녀보자.' 그렇게 4월 초 아빠의 생신을 기점으로 양가 부모님 댁을 방문하며 우리만의 단속은 조금 느슨해졌다. 처음엔 부모님 댁에 가면서도 절대 외식은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이후 방문부터는 더 이상 그렇게까진 말하지 못했다. 너무 우리만 까탈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외식을 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가 점점 느슨해질 즈음 5월 초 이태원 발 코로나 사태가 더 악화되었다. 젊은 친구들은 여전히 클럽도 다니고 주점도 다니고 달라진 것 없이 생활하는 모습에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런 뉴스를 볼 수록 잘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이 온다. 아이를 가진 엄마의 불안은 더 커진다.
6-7월 어느새 조금 여유 있는 생활로 돌아왔다. 코로나 19와 가까이 있지만 조금 조심하면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하루는 휴가를 내고 영화관을 가볼까 잠시 생각해본 적 있다. 아무래도 찜찜해서 관뒀지만, 누군가는 "영화관이 사람이 제일 없대요. 이럴 때 가야 돼요."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에 "그래도 영화관은 좀 그렇지 않나요?"라고 대답했던 나도 막상 기회가 생기니 영화관을 가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회사 게시판에는 GYM, GX는 방문 자제해달라는 메시지가 뜨지만 SNS에는 GYM에서 운동하는 사진을 인증하는 사람들로 넘친다. 나만 안 가면 뭐하나 하는 마음이 시시때때로 든다. 그러면서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8월 다시 경종이 울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되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두 번째 겪는 위기에 사람들에게 더 철저한 경각심을 요구한다. 할 수 있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가이드도 더 명확해졌다. 가이드가 명확하니 마음이 편하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닌가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조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나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할까? 말까?' 선택의 순간에서 늘 '말자'를 선택하며 오늘도 우리는 집콕 생활중이다. 더 많은 사람이 한 마음으로 집콕 생활을 유지하면 이 위기도 금방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