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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으니 Sep 03. 2020

회사도 2.5만큼 거리두기 중

회사에 앉아 있는 게 더욱 힘든 요즘이다.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앉아있는 자체가 힘들다. 왜 힘들까 생각해보니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 회사생활 패턴이 극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이전 회사 생활을 먼저 되짚어본다.

오늘도 10시에 회의가 있다. 머리가 제일 잘 돌아가는 아침 시간 회의를 안 할 수 없다. 9시 40분쯤 회사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하루 사이 쌓여 있는 이메일을 읽는다. 업무와 관계없는 메일들은 스킵하고, 중요한 제목 위주로 먼저 열어본다. 회의 시간이 5분 정도 남았다. 빠른 걸음으로 자리에 올려진 컵을 들고 휴게실로 향한다. 회의 시간에 커피는 꼭 한잔 들고 가야 한다. 커피 머신 아래 컵을 놓고 버튼을 누른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지만 그 향을 맡을 겨를 없이 버튼을 한 번 더 눌러 투샷으로 만든 후 뜨거운 물을 가득 붓는다. 그렇게 찰랑찰랑한 컵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회의실에 도착한다. 회의실은 뻥 뚫려있다. 사무실 한가운데 긴 회의용 테이블이 두 개 있고 각각 컴퓨터와 큰 화면의 TV가 놓여있다. 우리 사무실의 회의실은 이렇게 두 곳이다. 휴게실 쪽 막힌 공간의 회의실이 있지만 Conference Call만 하라는 운영지침에 따라 늘 사무실 중앙에서 회의가 진행된다. 회의실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하고 있으니 하나 둘 회의실로 걸어온다. 모두 앉아 우선 잡담으로 분위기를 깨운다. 늘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친구가 분위기를 살린다. 그럼 기분 좋게 회의를 시작할 수 있다. 어느덧 회의 시간이 1시간을 넘겼다. 점심시간이다. 회의가 길어지는 날엔 밥 친구들이 근처에 서성이며 눈치를 준다. 그럼 더 마음이 조급해져서 회의를 빨리 마무리한다. 부랴부랴 회의를 끝내고 각자 자리로 흩어진다. 나도 내 자리로 와서 신발을 갈아 신고 사원증을 챙겨 동료들과 식당으로 내려간다.

식당엔 메뉴가 4가지 정도 준비되어 있다. 한식, 양식, 중식 중에 메뉴를 고르고 취향이 맞는 사람끼리 같이 줄을 서고 그 사이에도 이야기를 나눈다. 여럿이 있을 때 못하던 이야기도 이때 하면 좋다. 넉넉히 5분 정도 기다리면 금방 내 차례가 된다. 식판을 준비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 사원증을 찍는다. 밑반찬을 하나 둘 올려놓고 가장 메인이 되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받아 빈자리를 찾아간다. 먼저 받은 사람이 빈자리를 맡으면 다른 동료에게 신호를 보내고 테이블에 모인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나면 그릇을 반납대에 올려놓고 커피숍으로 향한다. 커피숍은 사내에도 있고 사외에도 있지만 기분 따라 선택한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사외 커피숍으로 향한다. 주로 가는 단골 커피숍에 가서 아이스라테를 시키고 주문 번호를 받은 후 대기한다. 밥을 조금이라도 늦게 먹은 날엔 영락없이 커피숍에도 사람이 밀린다. 커피를 받아 들고 실내 휴게실로 향한다. 회사에는 3층에 여럿이 모일 수 있는 휴게실도 있고 층마다 휴게실이 있다. 휴게실에 모여 이야기 좀 나누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 점심시간이 끝나면 자리로 돌아간다.

오후 시간도 회의가 늘 있다. 오늘 회의도 2시에 하나 있다. 양치를 하고 밀린 이메일을 확인하며 답장을 하고 누군가 자리에 와서 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곧 2시다. 회의실에 모여 회의를 하다 보면 2시간은 후딱이다. 잘 안 풀리는 일은 모여서 해결될 때가 있다. 벌써 4시다. 슬슬 배 지칠 시간. 함께 회의한 동료들과 차 하잔 마시자고 사내 카페에 내려간다. 커피를 한잔씩 들고 다시 올라와 3층 휴게실에 모여 수다를 떤다. 회의실에서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각자 들었던 회사 내 소문도 하나씩 꺼낸다. 그렇게 30분을 이야기하고 자리로 돌아와서 또 업무를 처리한다.

5시 30분 저녁시간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점심시간을 함께 한 동료들을 부른다. 일찍 퇴근하는 사람은 먼저 가고 남은 사람끼리 저녁을 먹으러 향한다. 저녁은 식당에서 먹기도 하지만 주로 테이크아웃을 해서 회사 휴게실로 돌아와 먹는다. 점심시간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도 저녁시간에 또 할 이야기가 있다. 저녁을 여유롭게 먹고 나면 곧 퇴근시간이다. 야근하는 날도 있지만 오늘은 야근까진 필요 없으니 차 밀리는 시간을 피해 7시 30분쯤 회사를 나선다.


이제 코로나 19가 가장 심각한 지금을 기준으로 회사 생활을 떠올려본다.

오늘은 출근이 좀 빠르다. 빨리 퇴근하려는 생각에 서둘렀다. 7시 50분 회사 도착이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지하 1층 아침을 받으러 간다. 웬일인지 오늘은 사람이 더 많다. 엊그제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 건너편 동 식당이 폐쇄되어 이곳으로 사람이 다 몰렸다. 테이크아웃 줄이 제일 짧은 곳에서 밥을 받고 커피를 챙겨 사무실로 올라온다. 사무실엔 늘 일찍 와있는 사람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고, 나는 구석 내 자리를 향한다. 자리에 앉아도 마스크는 풀 수가 없다. 자리에서도 마스크를 꼭 하고 있으라는 지침 때문이다. 그래도 잠시 먹는 시간엔 마스크를 내리고 맘 편히 먹는다. 아직 주변에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이라 다행이다. 컴퓨터 전원을 누르고 윙~소리와 함께 컴퓨터가 깬다. 메일을 확인해보니 그리 많지 않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다 먹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마스크를 다시 쓰고 메일을 하나씩 열어본다. 오늘은 회의가 오후에 1건 있다. 오전엔 여유 있게 내 작업을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동료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엘리베이터가 왔다. 엘리베이터는 9명만 탈 수 있도록 칸이 그려져 있고, 자리가 하나 남아 있음에도 함께 타려던 다른 직원은 타지 못했다. 지하로 내려가 보니 줄이 길게 서있다. 최근엔 일부러 사람들 모이지 않게 인사팀에서 층별로 점심시간을 나누어놨는데, 아침에 봤던 그 건너편 사람들이 이 작은 식당에 몰려드니 북적댈 수밖에. 식당에서 잘 차려져 나오는 음식을 뒤로하고 나는 늘 테이크아웃만 먹는다. 부서 지침이기에 어쩔 수 없다. 마침 떡볶이가 나온대서 줄을 섰더니 웬걸, 줄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오히려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줄이 더 짧다. 순간 고민했다. 식당에서 먹고 갈까? 식당 관계자는 이 많은 사람을 예상 못했는지 우왕좌왕이다. 결국 5분을 기다려도 줄이 줄어들지 않아 옆의 도시락 줄로 옮겼다.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게 되었다. 제일 줄이 짧은 가장 맛없는 밥을 골라 들고 사무실로 빠르게 올라왔다. 코로나 19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을 간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빨리 사무실로 대피해서 각자 자리로 돌아가 도시락을 먹는다. 밥을 먹으며 책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수다를 못 떠는 건 아쉽지만 책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밥을 다 먹고 동료와 커피라도 한잔 같이 하고 싶지만 커피도 같이 마시지 말고, 그냥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금지라는 지침이 있어서 커피도 혼자 내려 먹는다. 밥 먹을 때 잠시 벗어놓았던 마스크를 쓰고 커피를 마실 때만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한 모금한다.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신호가 오기 전까지 책을 읽는다. 이 1 시간 동안 꽤 많은 양의 책을 볼 수 있다.

1시 회의가 있다. 양치를 하고 1시가 다 되어 사무실 가운데 회의실로 걸음을 옮긴다. 이때 팀장님과 다른 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옆에서 듣자 하니 회의실에 모이지도 말라는 소리를 하시는 듯하다. 회의실 컴퓨터를 켜려다 말고 팀장님과 이야기하던 분에게 물어보니 회의도 자리에서 화상회의로 진행하라고 한다. 와우. 강도 높은 거리두기라더니 정말 이번엔 별 걸 다 해본다. 헤드셋을 빌려 자리로 돌아오니 회의 주최자는 벌써 회의를 개설했다. 헤드셋을 연결하여 입장하니 생각보다 잘 들린다. 주최자는 본인 화면을 공유할 수도 있고, 우리는 필요하면 각자 컴퓨터에서 필요한 자료를 띄워 이야기를 한다. 다만 주변 사람들은 좀 시끄러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자리에서 회의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또 업무를 본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만 바라본 게 몇 시간째인지 눈이 피로감을 알리면 그때 잠시 창 밖을 바라보며 눈을 쉰다. 가끔 너무 앉아만 있기 힘들 땐 괜히 가장 먼 쪽의 휴게실까지 가서 물을 받아온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의자와 한 몸이 되어 일어날 일이 없다.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마스크는 계속 착용해야 하고 사무실을 돌아다닐 땐 물론이다.




나의 하루를 이렇게 비교해보며 알았다. 코로나 19 이후 사람과의 대화가 급격히 사라졌고, 내 자리에서만 회사에서의 시간 중 98%를 보내고 있다. 일 할 때는 물론이고 밥을 먹을 때도 철저히 혼자의 시간이다. 혼자 시간을 즐기는 나에게도 이 생활은 참 힘들다. 요즘 그렇게 빨리 퇴근하고 싶은 이유가 가족과 편한 곳에서 대화하고 숨을 쉬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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