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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쾌한범주 Apr 24. 2020

불행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2018년 오클랜드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의 일이다. 우리 가족은 가장 큰 연간 행사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구경하려 오클랜드 시내로 나섰다. 그리고 불쾌한 일을 겪었다. 우리는 퍼레이드 시작 3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괜찮은 자리는 이미 찾기 힘들었고, 간신히 도로 옆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자리는 퍼레이드 코스의 거의 마지막 즈음이라, 예정된 시작 시간을 한참 넘겨서야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십여분이  흐른 뒤 중년 남성 관계자가 나와서 관중들에게 라인을 지키지 않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던 관중들 모두는 최소 세 시간 동안 같은 라인을 질서 있게 지키고 있었고, 그곳을 몇 시간 동안 지키고 있던 안전요원들에 한 번도 제지를 당한 적이 없었기에 황당했다. 거기다 그동안 뒤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기에 다들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말이 소용없는 듯 하자, 그 관계자는 앞에 있던 중국인 할머니와 엄마, 딸 일행을 콕 집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냐고 비아냥대더니 한숨을 내쉬고 사라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분들은 정말 못 알아들으신 눈치셨지만, 그 알 수 없는 불쾌감은 당연히 느끼셨을 것이다. 그분들의 옆에는 아시안 남성인 나도 있었고, 인도인 남성도 있었으며, 백인 가족도 있었지만 그는 더 약자들만 특정해 공격했다.


다른 비슷한 일이 우리 가족에게도 있었다. 단골 프랜차이즈 카페의 한 직원에게 3개월 넘게 인종차별을 당했다. 그 직원은 유독 여성인 나의 배우자에게만 인종차별을 했다. 나와 함께 방문했을 때에는 조금 덜했고, 내가 혼자 갈 때는 매우 친절했다. 매우 전형적인 수법이었는데, 항상 주문을 못 알아듣는 척하며 짜증을 내었다. 나의 배우자가 구운 할루미 치즈를 곁들인 퀴노아 샐러드를 주문했다면 긴가민가 했겠지만, 그가 주문한 건 롱블랙이었다. 뉴질랜드 카페에서 주문을 받으면 롱블랙 아니면 플랫화이트일 텐데 그걸 못 알아듣는다는 건 상식 밖이다. 게다가 내 배우자는 호주에서 카페 직원으로 일했던 경험까지 있었다. 그 직원의 매니저가 그걸 왜 못 알아듣냐고 화를 내는 장면을 보고 나서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었고, 본사에 항의를 했다. 그 직원은 아마 해고를 당한 듯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약자 속의 약자들, 마이너 속의 마이너들을 많이 보아왔다.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던 집단 내에서의 권위주의에 배제당하고 희생했던 여성들. 개천에서 난 용들을 업어 키운 그들의 수많은 누이들. 억압받던 흑인들의 폭동에 더 크게 희생당했던 한인들.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고, 미국의 백인 여성은 흑인 남성보다 20여 년 늦게 참정권을 보장받았다. 이렇듯 불행은 항상 게 중 더 약자에게 더욱 가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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