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이를 가지기 전, 오클랜드 근교의 한 카페 안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매우 넓은 카페이긴 했지만 사람이 많은 시간이라 번잡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조용한 시간을 방해받는 게 싫었으니까. 그런데 신기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 카페에서 아이들 때문에 표정이 일그러진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말고는 그 카페의 누구도 아이들 때문에 언짢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울어서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항상 전전긍긍했었다. 아이가 100일 정도 되었을 때 파인 다이닝 프렌치 식당에 간 적이 있다. 훌륭한 코스 요리를 앞두고 우리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울어서 시끄러울 것 같으면 안아서 달래주느라 식사에 도통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옆 테이블의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오시더니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괜찮아. 아이는 원래 우는 거야." 그제야 그때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알았다. 아이들은 원래 뛰어다니는 거구나.
아이는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이다. 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부모, 한국의 경우는 대부분 여성을 갈아 넣고 소비하여 착취하는 구조다. 단 일주일이라도 독박 육아를 경험해본다면, 사회가 아이의 양육자를 감옥 속에 가둬둔다는 것이 비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백화점과 키즈카페가 전부다. 다른 곳은 수유는커녕 기저귀도 갈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밥 한 끼 나가서 사 먹기도 힘든 상황에도 우울증이 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는 아이를 달래는 데는 몇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손목과 허리 등등이고, 이것들은 소모품이다. 우리 부부의 손목은 예전에 망가져 둘 다 손으로 젖은 걸레를 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가 여성에게 출산을 요구하다니 이건 상식과 양심의 문제다. 다달이 푼돈 쥐어주는 게 출산장려정책이라니 문제의 본질을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 (보편복지는 앞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푼돈이라면 선별복지만 못하다고도 생각한다.) 육아와 출산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경력단절이나 보육문제가 맞겠지만, 한국 사회는 지금 외벌이를 할 정도로 충분히 여유가 있는 집 조차 아이를 키우기에 지옥 같다.
이렇게 산업화 이후 언제나 육아 지옥이었던 한국에, 노키즈존이라는 몹쓸 것들이 생기고 있다. 길게 말하기 싫다. 그냥 개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