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냐작가냐 Sep 11. 2021

딸이 말했다. '나는 아프게 태어났어'

[아니, 넌 예쁘게 태어났어 ]

퇴근하고 온 내게 엄마가 속삭였다.

 

"찌가 그러더라. '나는 아게 태어났어 ' 라고..  

 그래서  

'아니야, 찌는 예쁘게 태어났지~ '

                        라고 말해주긴 했는데 왜 그런 걸까 "



대체 누가 어떤 말을 어떻게 한 걸까?  

21갤 밖에 안 되는 아이에게.

.

.

얼마 전 어린이집 원장님 말씀이 떠올랐다.


 " 어머니, 찌가 얼마나 야무진데요.

  조그맣고 '아프게 태어나서'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

 쯤이었던가, 나의 복직과 남편의 긴 휴가가 끝나고 찌가 너무 힘들어했을 때였다.

그 좋아하던 어린이집 가는 것도 싫다고 하고,

심지어 엉엉 울기까지 했던 그때.

애가 괜찮냐고 물어보던 내게 원장님이 했던 말씀이다.

당시 '내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닌데...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한다.


헌데 그 얘길 들었다고 애가 스스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단 한 번 들은 이야기를??

.

.

아, 우리 딸내미는 한 달 일찍 태어났고.

 현재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일찍 태어났지'만' 건강하다가 아니다.

더 일찍 더 적은 몸무게로 나온 이른둥이들도 잘 자라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집에선 나도. 애 아빠도. 외할미도. 그 누구도

찌가 아프게 태어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 두 달에 한 번씩 대학병원 외래가 있던 때,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 찌야  우리 선생님한테 이만큼 컸어요~ 자랑하고 올까?'

' 와~ 선생님이 찌 많이 컸다고 칭찬해주셨네?'


어쨌든, 나도 잊고 살고 있던 태생을 언급하시니...

찌가 이른둥이라는 언급이 이전에도 있지 않았을까?

다른 선생님들께 전달하는 과정도 있었을 테고.

혹시 배려하려는 마음에서라도 얘기한 적은 없을까?

가령  '찌는 아프게 태어났으니 양보해주자'

'찌는 아프게 태어나서 작으니까 보살펴줘야 해'와 같은...


어린이집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는지

당장이라도 물어볼 작정으로 전화기를 들었지만,

카톡창을 클릭하지도 못한 채 내려놓았다.  

왜냐,

나는 자식을 맡긴 슈퍼 슈퍼 슈퍼 을이니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과거의 기억을 곱씹어보던 중, 

용의 선상 오른 인물은 뜻밖에도 나였다.

이런 멍청한 엄마 같으니라고!!

어린이집에 입회원서를 낼 출생 주수를 적는 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일부러 더 정확하게 적어 넣었다.

출생 당시 발견된 병명까지도.

그리고 직접 선생님께 전달하기도 했다.

혹시 문제 상황이 오게 되면 잘 대처해주십사...

좀 더 신경 써주십사... 하는 알량한 맘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참 웃기다.

그 일로 애한테 편견을 갖게 되는 건 질색하면서

 왜 그 일을 얘기하면 더 신경 써 줄 거라고 생각했는지...


젖꼭지를 뜯어먹을 듯 야무지던 신생아 시절부터

다행히 녀석이 잘 자라주어 잊고 살았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려면

아예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구나 싶다.


물론 아팠던 것도 맞고 숨길 일도 아니지만

굳이 아이가 자각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그래도 찌의 말을 듣고, 반응해 준

울 엄마의 말이 새삼 고맙다. 그래서.

나도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아프게 태어난 게 아니라
" 예쁘게 태어났다 " 고...


찌도. 예쁘게 태어난 모든 아이들도

행여나 의기소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갑자기 거창하긴 하지만:;;; 진심으로

아직 투병 중인 예쁜이들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예쁜이들이 건강하길.. 아주 간~절히 바란다


툭 던진 찌의 한 마디에 생각이 많아졌던

9월 9일 목.

찌 탄신 652일 차의 에피소드 ㅡ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때문에 집에 가기 싫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