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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ie Jul 27. 2021

허기져 보이지 않는 사람

바디 프로필 도전기 #2

나는 주변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많은 부분에서 비교되기 쉬운 것 같다. 이해한 것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을 바꿔놓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협업이 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작업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동료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자 갖춰야 할 태도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다 보니 가끔 예민해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작업(행동)하려고 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식단 조절을 시작하고 운동량을 크게 늘리면서 결심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

‘본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대하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라 여기지 않는다’

이다.


과정이 곧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목적 없이 운동하고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몸과 마음가짐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 바디 프로필을 찍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알아보면서, 직업으로서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사진과 유튜브 채널 등 관련 자료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어찌 되었든 이미지로 남는 결과물이고, 개인차마다 다르겠지만 신체를 동반한 합리화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들이 명확히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남을 기준으로 두고 내 부족한 부분들을 찾기 시작했다. 동기 부여되는 동시에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자주 자책하게 되었고, 회사를 다니며 준비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평정심과 느슨한 마음을 갖고자 했지만 비교하는 마음과 조급함이 생겨나 스스로 운동 강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단 조절을 시작하면서 만든 규칙이 '금주 하기’, ‘빵/면 먹지 않기’,’ 튀긴 음식 먹지 않기’, ‘맵고 짠 음식 먹지 않기’인데,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으로 해소하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해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는 동안 코로나로 인해 사람 간의 만남을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치팅 데이를 촬영 때까지 한 번도 갖지 않기로 하고, 도시락을 챙겨 다니며 식단 조절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문에 몸과 마음이 늘 허기져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보내던 중, 문득 사진 속 몸만들기에만 너무 집중해서 계획했던 결심 모두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처음 의도에서 너무 변질된 것은 아닐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경험하고 고민해본 만족감이란, 어떤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나한테 필요한 만큼 고르게 유지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비교를 통해 무언가 억지로 진행하는 것은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과정이었고, 노력한 결과물이 고통의 시간들을 떠오르게 하는 산출물로 남게 된다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결과적으로 실패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고 해놓고 빵이나, 짜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어떠한 자극 없이 자유롭게 준비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은 참다못해 집에 있는 그릇 중, 가장 큰 냄비 가득 푸짐하게 호박죽을 만들어 먹은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과정을 전부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 아주 많이 먹어도 몸과 마음이 그렇게 든든하고 편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따라 하며 음식의 성분만을 생각하며 먹지 않고, 먹는 내가 만족스러울 수 있을 만한 과정, 내가 좋아하는 재료, 심리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하며 전반적으로 식단을 재구성 하기 시작하면서 누군가와 비교하며 내 몸을 판단하는 일도 줄기 시작했고, 관심이 있는 재료를 찾아 입맛에 잘 맞는지 이리저리 시도해보며, 다시 먹는 것에 대한 기쁨과 자존감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내가 만드는 대부분의 음식은 맛있지도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며 장을 보고, 만드는 동안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 부분이 가장 좋았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존재가 될 수 있게 해 준다’ -아델 데이비스


내게 맞는 음식을 찾아 건강하게 먹는다고 해도 다이어트는 어쩔 수 없이 고단하고 힘든 여정일 수밖에 없다. 긴 여정 속에서 나만의 방법을 찾고 내 방식대로 지속시킬 수 있다면, 언젠가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더 나은 나를 만드는 나만의 식사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촬영일정이 다가오면서 거의 정신력으로 먹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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