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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Mar 10. 2016

이탈리아에서 커피마시기

내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랄까

오늘도 동전꾸러미를 뒤진다, 허겁지겁.

금단증상이 온 사람이 급하게 자신한테 투여할 그 무언가를 찾듯이, 나도 1유로 20센트를 급히 골라낸다.

동전을 손에 말아쥐고, 그러는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곳의 문을 열고 미소를 지으며 ''부온 죠르노~(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외치며 들어선다.

까페. 이탈리아어로 Bar.바르. 영어로 된 ''바-r''가 아닌 바르. 바로 이탈리안 까페이다.


직업 특성상 새벽에 자고 늦은 아침에 눈을 뜬다.

날씨가 좋으면 ''아아 싱그러운 햇빛과 함께 하는 따듯한 커피~''이러고, 궂은 날씨면 ''호오 운치있게도 흐린 날이군.그런 의미에서 모닝커피를 한잔.'' 이러는 생각을 하면서 커피를 찾는 나는, 커피 중독자이다.

사실 나는 이십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십대 후반 정도에 아시아권에서 10년 가까이 살다가 이탈리아에 돌아와서 그런건지 커피엔 큰 감흥이 없었는데 어느 하루, 큰어머니가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데리러 오셨다.

참고로 큰어머니는 굉장한 미모와 아우라의 소유자이신데 이십대 초반에도 뭘 꾸미는걸 모르던 나한테는 계몽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하셨던 거 같다. 나보고 배고프지 않냐며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사주신다면서 내 손을 끌고 가셨다.


도착한 곳은 집근처의 작은 까페. 심지어 허름하기까지 하다. 동네주민인 이탈리안 아저씨네 일가족이 운영하는 곳인데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뭔가 싶었지만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서 큰어머니가 계산대에서 주문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윽고 나온 그릴에 노릇노릇하게 뎁혀진 piadina con formaggio e salame(살라미와 치즈를 넣은 삐아디나,또띠아롤과 비슷한 것)이 나왔다.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자고 큰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나한테는 까페 마끼아또(에스프레소에 우유거품 몇방울 떨어뜨린것)큰어머니는 까페 노르말레(에스프레소).

이 순간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나도 에스프레소를 시키려고 했는데 큰어머니가 살며시 내 손을 잡으시면서, ''너한텐 노르말레(위에도 언급했지만 에스프레소를 이탈리아어로 caffe' normale(까페 노르말레)라고 한다)가 강할테니 일단 마끼아또로 마셔봐''라고 하셨다. 그게 바로 내가 성인이 되어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마신 첫 커피었다.

이탈리아에 까페에서 흔히 보이는 에스프레소. 이탈리아어로 caffe' 혹은caffe' normale.

조그마하고 앙증맞은 잔에 반도 채워지지 않는 진한 커피 두세모금, 그게 내가 처음으로 느낀 에스프레소의 맛이었다. 모두가 상상하는 것처럼 사약 맛이 아닌, 빅사이즈의 아메리카노를 몇모금으로 졸여놓은 진한 맛.

엑기스만 모아놓은 쌉싸름하고 고소한 맛.



이십대중반에 대기업 신입으로 취직되고 시작한 첫 출근, 같은 학교 미국인 선배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아침에 문자가 왔다. ''우리 함께 ***(회사이름)에서의 첫 아침식사를 해볼까?''

바쁘고 북적대는 손님수에 비해 엄청하게 비좁은 회사 앞 커피숍에서 선배와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켰다. 첫 출근이라 긴장된 마음에 크로와상을 먹을 생각도 못하고, 심지어 카푸치노의 우유거품이 곱게 칠한 립스틱을 망칠까봐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선배는 그런 내 마음 이해한다는 듯 웃으면서 ''오늘 내가 점심이랑 간식도 쏠테니까 아침은 덜 먹어도 돼.''라고 해줬다. 얼마나 고맙던지.

호록호록 조금씩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따뜻한 액체에 무작정 신뢰가 갔다.


긴장된 오전시간을 보내고 동료들과 티타임을 가지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선배와 선배의 상사가 들어오더니 뭔가를 우리 테이블에 투툭 하고 던져놓더니 빠이~하고 문닫고 사라졌다. 뭔가 싶어서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니 라바짜(Lavazza,유명한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커피캡슐. 두번째로 선배한테 감격한 순간이었다. 첫출근이라는 긴장감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바짝 힘주고 있었었는데, 위잉~하는 커피머신에서 나오는 커피내리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잇따라 코끝을 간질거리는 내음... 휴게실 소파에 앉아서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키는 순간, 그 모든 긴장감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때 그 느낌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그 조그만 잔에 담겨진 진한 액체에 걱정거리를 타서 꿀꺽 가뿐하게 넘긴 느낌.


이탈리아에서는 알려진 바대로 커피를 많이 마신다. 그리고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 위주로 많이 마시는데 의외로 종류가 많지 않다.

기본부터 재료가 섞이는 순서대로 대충 정리를 해보자면 카페 노르말레(에스프레소), 카페 마끼아또(에스프레소에 우유거품 아주 약간 섞은것), 카페 룽고(아메리카노와 거의 비슷하지만 양이 훨씬 적다),까푸치노(에스프레소에 우유를 거품내서 올린것), 까페라떼(에스프레소에 비슷한 양의 우유를 섞은것), 라떼 마끼아또(우유에 에스프레소 몇방울 섞은 것) 이 정도이다.


기본 베이스로 맛있는 맛과 향을 내려는 것이 이탈리아 커피와 음식에 대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원칙이기 때문에 엑스트라로 잡다한 것을 섞는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또한 쓸데없이 양만 많은 걸 싫어한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왜 커피를 배부르게 마셔야 하나? 커피는 커피답게 음미해야지.''

커피 사이즈도 딱 하나. 끽해봐야 더블에스프레소 정도.


커피를 마시는 시간과 종류도 대부분 정해놓고 마시는 편이다.

상대적으로 추운 북부쪽에서는 시간과 크게 관계없이 아침이든 저녁이든 카푸치노를 마시지만 이탈리아 중부 움부리아 주부터 시작해서 남부이탈리아에서는 아침에 카푸치노, 정오 12시부터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편이다.

보통 카푸치노는 아침식사 혹은 에스프레소를 못 마시는 사람들 위주로 마시는 편이고, 식후에는 마시지 않는다.

식후에 에스프레소를 마심으로서 음식냄새를 줄이는 입가심 정도로 이용한다.

당연히 오후 5시전까지는 에스프레소를 조금씩 마셔주며 쉬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비건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우유를 못마시는 사람들을 위해 두유 혹은 유당을 뺀 우유로 카푸치노를 주문할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에스프레소를 한모금에 원샷하고 휙하고 바람처럼 나가버린다는 얘기가 알려졌는데 사실이다. 테이블에 앉아서 느긋하게 한두시간씩 하는 문화가 없으니 말이다. 외국의 커피체인점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처럼 노트북 펼쳐놓고 커피 한잔 시키고 오랫동안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드물다.

또한 이탈리아에 잠깐 살아놓고 겉멋든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들 중 하나가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설탕을 넣은 후 젓지 말고 잔을 휘휘 기울이고 원샷하라'' 이건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정석이라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번 몇모금 나눠마셔도 되고, 설탕 안넣고 마셔도 되고, 설탕 듬뿍 넣고 엄청나게 저어서 마셔도 되고..등등.


가끔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커피숍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중 하나가 손님: ''카라멜 마끼아또 주세요'' 직원 왈,''그게 뭡니까?'' 아니면 ''라떼 하나요'' 이랬더니 흰우유가 떡 하니 나오는거.(이탈리아어로 라떼는 흰우유라는 뜻이다. 실제로 라떼라는 단어 자체가 이탈리아어다.)

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걸 주문했더니 조그마한 카푸치노 잔에 카페룽고에 얼음 하나 넣은 미지근한 거 나온다든가(...) 뭐 요즘은 관광지에서는 테이크아웃 포장도 나오고 제대로 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있긴 하더라.


본론으로,위에 언급되었듯 커피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나서 이탈리아에는 그 흔한 스타벅스나 코스타 같은 커피체인점들이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못내게 했었다. (2016년 2월부로 밀라노에 첫 스타벅스가 생겼다고 한다.신기하게도)

온갖 신기한 메뉴들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신기해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으니.

그리고 중요한 건 또 하나, 가격이다.

수도 로마에서만 봐도 일반 주택가는 카푸치노 한잔 1유로, 에스프레소 한잔 80센트이다.

관광지에서는 천차만별이지만. 북부 이탈리아나 남부 이탈리아가 오히려 수도인 로마보다도 조금 더 비싼데 그래봤자 카푸치노 1,20~1.80유로 에스프레소 1유로~1.5유로이다. 여기서 얘기한 가격은 테이블 차지하지 않고 바에 서서 마시는 일반 동네 커피숍의 가격이다.

이런 상황에 스타벅스 같은 곳의 괜히 양많고 비싸게 받는 시스템이 이탈리아 사람들한테는 불만으로 다가올것이라고 생각한다.



슬슬 삼십대 중반으로 들어서고 결혼도 하고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지난 몇해를 치열하게 살아왔다.

엄청난 멘붕을 겪기도 했고, 큰 행복감에 황홀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고... 옆을 항상 지켜준 가족을 빼고 옆에 항상 있어준건 커피었다. 술도 있었지만(...)

아침엔 하루일과를 생각하며 무거운 머리를 커피로 깨우고, 일하다 중간중간 쉬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면서 수년간 달려왔다. 처음으로 나한테 커피를 사주셨던 큰어머니는 몇해전 독일에서 암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다. 나한테는 커피처럼 내 일상에 깃든 커피내음 같은 분이시다. 참 신기한게 커피를 시킬때마다 조금만 눈을 감고 있으면 그분이 생각난다.


지금 나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이유로 수입이 들쭉날쭉이다. 요즘엔 돈에 쪼들리는 편이다.

그래도 외출하면 동전을 손에 모아쥐고 카푸치노 한 잔 마시러 간다.

예전에 노숙자들을 보면서 제발 돈이 있으면 술 좀 그만 사고 음식이나 사드시지 그생각을 했는데. 참 한국엔 저렴한 소주가 있고 이탈리아엔 저렴한 팩와인이 있으니... 그런데 요즘 내 모습이 그러하다. 수중에 몇 푼 남아도 그 돈을 박박 긁어모아서 1,20유로짜리 커피마시러 간다니.

브뤼셀공항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이탈리와의 그것과 맛 차이가 엄연하다.


커피중독은 어쩔 수 없나보다. 커피맛도 맛이겠지만 나한테는 그게 럭셔리한 삶인걸.

지갑 챙겨들고, 골목길을 따라 걸어나와서 두블럭 걸어서 보이는 카페에 간다.

파란색 카페간판이 보인다. 동전을 준비한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활기차게 인사한다.

''부온 죠르노! 운 까푸치노 그라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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