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은 다시 1995년으로.
내 직업은 재즈콘서트 기획자이다.
이런저런 여러가지 직업을 가져봤지만 일단 현재는 소규모의 재즈콘서트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있다.
여기까지 오게 된것도 신기하고, 어찌보면 당연히 이쪽물을 먹으면서 살게 될 줄 알았다고 생각도 한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재즈음악을 자주 듣는다. 물론 꼭 일때문은 아니고 재즈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음악을 사랑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아무것도 안하고 음악만 들을 정도로 취미는 음악감상이다.
요즘 바쁜 시즌이 끝나고 백조생활 중인데 여유가 생긴만큼 예전 90년대 한국가요에 다시금 꽂혔다.
외국에 살던 나한테 진정한 댄스가수의 개념을 심어준 게 한국댄스가요라고 하면 믿어지는가. 현지에 사는 친구들이나 남편만 봐도 마돈나 등등 월드스타를 보면서 자랐다고 하니.
아무튼, 나한테는 노래 한곡한곡마다 추억이 깃들어있을 정도로 소중한 십대의 추억이므로 솔직히 그것들만 묶어서 글을 내고 싶을 정도이니.
본격적으로 한국댄스가요를 접하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에 한국에 사는 친척이 보내다준 노이즈 3집(무려 카세트테이프!)과 가요톱10 방송분을 녹화한 비디오테잎. 현란한 댄스와 함께 랩, 노래를 보여주며 화려한 의상과 카메라를 향한 완.전. 멋있던 무대매너. 언제 생소했었냐는 듯 나한테는 엄청난 신세계였다.
하나하나 다 적으려면 너무나 많지만 일단 오늘은 어린 나이에도 나의 깊은 애정을 받았던 가수 얘기를 하고싶다. 그 이름도 신성한 김.건.모! 아이튠즈에서 실수로 한국어자판으로 눌렀는데 자동검색어로 김건모가 떴다는건 안 비밀. 내가 어찌 이런 위대한 사람을 잊고 살았는지 통탄할 만큼 후회스러워서 당장 데뷔 초기의 앨범들을 다운받았다. (6집부터는 모아둔 앨범들이 있다)
나를 김건모의 열혈팬으로 만들게 해준건 일단 친척한테 받은 비디오테잎의 ''너에게'' 영상. 그리고 이런저런 어려운 경로를 통해서 얻은 김건모의 1,2,3집 카세트테잎. 특히 2집과 3집 전곡을 들으면서 온몸에 흐르는 짜릿한 전율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특이하게도 내 음악적 취향은 항상 그랬듯 앨범 타이틀곡이나 후속곡 보다는 숨겨진 좋은 마이너한 수록곡을 찾아내는 것이었는데(일부러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노래들이 항상 덜 알려진 곡들이었다.)
3집에는 2집에서 내가 특별히 좋아하던 ''서랍속의 추억''이나 ''버려진 시간''같은 스타일과 분위기가 굉장히 닮은 곡이 두세곡 있는데 내가 아끼던 곡은 ''너를 만난 후로''였다. 특히 이 곡에 대해서 인상깊었던 이유가 있는데 바로 난데없이 중국에서 번안곡을 들은것. 중독성 있는 도입부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에도 까먹을 만한하면 생각나서 자주 흥얼거렸는데 썩 몇년이 지나고 중국어로 듣게 된 그 묘한 느낌이란.
바로 ''청춘미소녀''(이름 참;;)라는 당시엔 꽤 파격적이었던 중국1세대 걸그룹이 있었는데 이 친구들에 의해서 편곡을 거친 리믹스버전의 곡으로 나온 것. 번안곡이지만 당시에 은근히 떴기에 내가 생활하던 북경에서 자주 들리기도 했고, 그 때문에 나는 깜놀-멘붕-미묘-긍지-분노라는 단계를 점차적으로 거쳐가야 했다.
당연히 표절은 아니었고 합법적으로 낸 번안곡이라 내가 좋아하는 한국가수의 대박 히트곡이 아닌 곡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기에 처음엔 엄청 흥분했었다. 그런데 바뀐 노래가 너무 촌스럽고 그 원곡을 너무나 사랑하는 내가 듣기에는 듣기 싫을 정도었다. 나중에는 ''니들이 감히 건모오빠의 노래를 이딴 식으로 불러?!''라고 혼자 화를 내고 있었으니 그때 내 마음은 이해가리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원곡을 편애하는 편이다. 특히 다른 언어로 번안되는 경우에는 더더욱. 여러 나라에서 떠돌아다니며 살았던 이유로 여러가지 언어를 부담없이 사용하는 편인데, 글과 노래는 한 나라의 고유의 언어와 맞아떨어지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한국어로 된 김건모 특유의 목소리로 부른 ''너를 만난 후로''와 바뀐 언어와 리듬이 나한테는 껄끄럽고 어색하게 다가왔던거 같다.
또한 감정전달도 중요한게, 경쾌한 펑키음악에 어우러진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마음을 마이너 멜로디로 카랑카랑하게 랩과 함께 불러낸게 은근히 섹시하게 느껴졌었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그런 어우러짐.그런데 번안곡은 어린 여자애들이 열심히 춤추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만 했다는 점, 미묘한 가사전달은 없었다는 게 싫었다. 하긴 이런 점은 요즘에도 나타나는데 예를 들자면 가창력은 넘치지만 아직 어려서 전달력이 떨어지는 이하이.(개인적으로 이하이의 엄청난 팬이다.)
어린 시절에 이 노래를 사랑했고 세월이 흘러서 마음에 안드는 리메이크곡을 들었을 때 드는 허탈감. 그 얘길 하고싶었다.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의 아이돌 김건모의 노래였으니까 더더욱.
요즘 들어서 김건모의 이미지가 어쩐지 살짝 부정적으로 바뀐거 같아서 조금 안타깝지만 그래도 음악적으로는 한국 가요계에서 정말 드문 페이스라는건 바뀌지 않는건 사실이다. 예전 1996년의 어느 가요제에서 김건모를 외모적으로도 까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도 내가 짜증을 냈었다. 크크.아마 R.ef의 이성욱과 비교하면서 엠씨가 농담을 건넨것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 외모보는 눈은 참 바뀌지도 않는다.)
이제 세월이 흘러서 내 나이도 그 당시에 한창 뜨던 김건모의 나이보다도 훨씬 더 많아졌다.
지금도 그 시절의 앨범을 듣는 나는 예전을 그리워하는게 분명하다. 토토가를 보면서 이유없이 뭉클했던 이유도 아마도 다들 말 안해도 알 듯하다.
대신 함께 나이들어가는 건모오빠는 영원한 나의 아이돌이다. 그의 노래가 어떤 식으로 리메이크가 되든, 새로운 앨범을 더이상 발매가 되지 않든, 바뀌지 않는건 그 당시의 노래를 잊지 않는 나의 팬심과 그때의 추억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