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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 Mar 18. 2019

쿠트나호라, 해골 성당과 은광의 도시

작지만 안 가기엔 너무나 아까운 체코의 소도시, 쿠트나호라

동유럽 여행의 출발, 체코 (Czech Republic)

동유럽의 지도. 내가 40여일 동안 들른 나라는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7개국이었다.

동유럽 여행을 왜 떠난 것일까. 주변 친구들이 방학이 되면 머나먼 유럽이나 미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봤지만, 나에겐 아무 감흥이 없었다. 유럽과 미국이 한국에선 선진국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방송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런던, 파리, 뉴욕과 같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도시들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쏟아지는 정보들로 인해 이미 식상해진 상태다. 게다가 내가 촌놈인 데다 보수적이라 그런지, 생김새가 비슷한 아시아 국가들을 자연적으로 선호하게 되었다. 유럽 문화 못지않게 아시아의 문화가 뛰어나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증명하고 싶기도 했다. 유럽 여행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게 되었다. 결국 일본∙중국∙대만과 같은 동북아시아 국가들을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동안 여행을 마친 뒤, 유럽 여행을 뒤늦게 시작하기로 했다.

10유로로 마실 수 있는 맥주. 돈이 없는 학생이라면 동유럽이 눈에 끌리지 않겠는가!

유럽 여행을 계획했던 시기는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였다. 1년 쉬고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던 터라, 그동안 모은 돈을 쏟아부어 유럽 여행을 가야만 했다. 친구들은 런던에서 시작해 프랑스∙독일∙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택했지만, 비싼 비용 때문에 궁핍한 상태에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럼 적은 비용으로 맛집도 들리고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등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고민을 했다. 유럽 중 가장 싼 곳은? 바로 ‘동유럽’이었다.

여행의 시작, 체코 공화국의 문장

동유럽 여행의 일정은 체코에서 시작해 그리스에서 끝나는 장장 40일간의 일정이었다.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각 나라의 역사에 대해 파악하고, 자연 속에서 휴식도 취하는 계획을 세웠다. 유럽은 각 도시마다 특징이 많고,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도 많아 방문할 도시들을 고르는 것만 한참이 걸렸다. 아직도 몇몇 도시들에 들리지 못한 기억이 남아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동유럽엔 숨겨진 진주가 정말 많다. 그럼에도 사진들을 뒤져보며 여행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첫 여행지인 체코를 시작으로 내가 들린 여행지들이 가진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다소 길었던 동유럽 여행의 서론을 쓴 이유다.

체코 (Czech Republic)

체코 여행 중 꼭 알아야 할 것 01 - 쿠트나 호라의 역사

체코는 크게 세 지방으로 나뉘는데, 보헤미아 (Bohemia), 모라비아 (Moravia), 실레시아 (Silesia)가 그것이다. 체코의 중심은 인구의 60%, 면적의 67%를 차지하는 보헤미아 지방이다. 보헤미아 지방의 체코식 이름이 체시(Cesi)며, 체코 공화국이 이름도 체시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체코를 알기 위해선 보헤미아 지방으로 가야 한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모라비아와 실레시아 지방에선 국호가 체코라는 것에 대해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체코는 크게 세 지방으로 나뉘지만, 사실상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로 나뉘어진다.

쿠트나호라(Kutna Hora)는 보헤미아 지방의 소도시다. 수도인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면 도착하기 때문에 프라하에서 당일여행으로 방문하기 적절한 곳이다. 현재 인구는 고작 2만 명에 불과하지만, 쿠트나호라는 16세기만 해도 프라하에 이어 보헤미아 지방의 이인자였던 도시였다. 쿠트나호라가 중세시대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1260년에 발견된 은광 때문이었다. 유럽의 화폐로 금화와 은화가 쓰이던 시절에 은광을 보유했다는 건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쿠트나호라는 은광 덕분에 13세기에서 16세기 사이 황금기에는 프라하에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뒤지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은광으로 번영을 이룬 쿠트나호라의 모습

쿠트나호라는 은광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1300년 경에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웬체슬라스 2세에 의해 은광 채굴에 대한 기술∙행정에 대한 문서가 작성될 정도였다. 도시는 점차 확장되어 후스 전쟁 (Hussite War)이 1419년에 발발될 당시 보헤미아 지방에선 제2의 도시로 자리 잡아 몇몇 보헤미아 왕들은 프라하 대신 쿠트나호라에 거주하기도 했다.

후스 전쟁 (Hussite War)

쿠트나호라는 후스 전쟁 중 종교개혁을 추진하던 얀 후스를 추종하는 타보르 파 (Taborites)를 공격하기 위한 전진 기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타보르 파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가톨릭 측은 쿠트나호라를 뺏기지 않기 위해 애를 썼지만, 쿠트나호라 전투에서 얀 후스를 추종하는 장군인 얀 지즈카 (Jan Zizka)에 의해 도시를 빼앗기기도 했다. 후스 전쟁의 최종 승자가 가톨릭이 되면서 쿠트나호라는 다시 평화를 찾았지만, 전쟁터가 된 보헤미아 지방의 힘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전투를 이끌고 있는 잔 지즈카 (Jan Zizka)

16세기가 되자 번영했던 쿠트나호라는 쇠락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1526년에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쿠트나호라를 비롯한 보헤미아 지방 전체가 오스트리아에 합병되면서 은광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다. 게다가 1546년에 일어난 대홍수로 인해 은광이 큰 피해를 입게 되고, 연이어 발생한 흑사병과 30년 전쟁은 쿠트나호라를 점점 쇠락하게 만들었다. 여러 번의 재건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악재가 터졌고, 은광이 1770년 대화재로 완전히 폐허가 되면서 보헤미아의 이인자였던 쿠트나호라는 소도시로 전락하게 된다.


쿠트나 호라로 떠나다

체코의 프라하 국제공항에 도착한 건 오후 8시였다. 프라하 시내로 들어가니 어느덧 오후 10시라 시차 적응도 할 겸 바로 잠에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세운 계획을 보니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 대해 알기도 전에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다소 황당한 일정이다. 프라하를 둘러보면 교통편에 대해 아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지방 도시로 떠나려면 교통편과 시간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결국 ‘쿠트나 호라’로 떠나는 기차 시간표와 프라하 역의 위치에 대해 조사한 뒤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자정이 다 돼가는 시계를 보고 한숨이 나왔지만 내가 무리한 계획을 세운 것이니 한탄할 수도 없다.
 

세들레츠 납골당 (Sedlec Ossuary)

전화번호: +420-326-551-049

홈페이지: www.kostnice.cz

관람시간: 8am-6pm Apr-Sep, 9am-noon & 1-5pm Oct & Mar, 9am-noon & 1-4pm Nov-Mar

입장료: 90 Kč

세들레츠 납골당

쿠트나호라 역에서 10분 정도 남쪽으로 걸으면 세들레츠 납골당이 나온다. 세들레츠 납골당은 1278년에 지어진 평범한 성당이었지만, 1870년에 슈와츠젠버그 (Schwarzenberg) 가문이 구입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가문의 후원으로 성당 지하실에 있던 40,000명의 해골로 납골당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두개골과 대퇴골이 아치형의 천장을 장식하고 있으며, 샹들리에는 인간 몸을 구성하는 뼈가 최소한 하나씩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납골당 구석은 피라미드로 쌓인 뼈들이 있으며, 제단 또한 수많은 뼈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들레츠 납골당의 상징인 해골
세들레츠 납골당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해골들

세들레츠 납골당을 유명하게 만든 뼈들은 중세시대 흑사병과 후스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납골당에 조용히 잠들어 있어야 할 사람들을 쓸데없이 깨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들레츠 납골당 덕분에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전쟁과 질병의 참혹함을 사람들에게 일깨울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세들레츠 납골당은 쿠트나호라 시내에 들어가기 전 여행의 전주곡으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이다. 매년 200,000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프라하를 떠나 해골 성당을 보기 위해 이 곳을 방문할 정도니 말이다.


이탈리아 궁정 (Italian Court)

전화번호: +420-327-512-873

관람시간: 9am-6pm Apr-Sep, 10am-5pm Mar&Oct, 10am-4pm Nov-Feb

입장료: 100 Kč

이탈리아 궁정 (Italian Court)

쿠트나호라 시내 중심은 팔라체호 광장 (Palackeho nam)이며, 세인트 제임스 성당 (St James Church)이 광장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광장 오른편은 이탈리아 궁정 (Italian Court)가 있다. 이탈리아 궁정은 쿠트나호라가 번영했던 시기, 왕실의 동전 주조 국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이탈리아 궁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피렌체에서 온 장인이 1300년에 이곳에서 화폐를 주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5세기에 지어진 강당에 그려진 19세기 벽화가 인상적이다. 벽화는 블라디슬라브 자기엘로 (Vladislav Jagiello)가 1471년에 보헤미아의 왕으로 선출되는 장면과 웬체슬라스 4세와 얀 후스에 의해 1409년에 쿠트나호라 법령(the Decree of Kutna Hora)을 선포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탈리아 궁정 외관


흐라덱, 체코 은 박물관 (Hradek, Czech Silver Museum)

전화번호: +420-327-512-159

홈페이지: www.cms-kh.cz

관람시간: 10am-6pm Jul&Aug, 9am-6pm May, Jun&Sep, 9am-5pm Apr&Oct, 10am-4pm Sat&Sun Nov (closed Mon year-round)

입장료: 150 Kč (‘Way of Silver’ tour / museum)

흐라덱 (Hradek)

‘작은 성’이라는 뜻의 흐라덱은 쿠트나호라가 번영했던 시기의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은 폐광이지만 한 때는 수많은 광부들이 은을 캐기 위해 작업한 동굴로 들어갈 수 있다. 현지 가이드에 의해 진행되는 1시간 30분 투어 동안 은광으로 번영했던 쿠트나호라의 역사에 대해 들을 수 있다. 안전을 위해 헬멧을 쓰고 들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쿠트나호라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폐광이 된 은광 내부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은광에 들어가기 직전


예수회 대학교 (Jesuit college)

오른쪽 하얀 건물이 예수회 대학교다

흐라덱에서 남서쪽으로 걸어가면 길쭉한 모양의 건물이 도로 오른편에 서 있는데, 이 건물이 바로 예수회 대학교다. 건물보다 대학교의 테라스에 서 잇는 13명의 바로크식 성인상이 인상적인 곳으로, 마치 프라하의 찰스 다리 (Charles Bridge)를 연상시키게 한다. 두 번째 성인이 바로 바바라 (Barbara)로, 광부들과 쿠트나호라를 대표하는 수호성인이다.

예수회 대학교에서 감상한 미술 작품

세인트 바바라 성당 (Cathedral of St Barbara)

전화번호: +420-327-512-115

관람시간: 9am-5.30pm Tue-Sun, 10am-4pm Mon May-Sep, 10am-4pm Oct-Apr

입장료: 85 Kč

첨탑이 아름다운 세인트 바바라 성당

세인트 바바라 성당은 흐라덱과 더불어 쿠트나호라의 번영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다.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프라하의 세인트 비투스 성당 (St Vitus Cathedral)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다. 쿠트나호라가 중세시대에 프라하의 경쟁도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얼마 남지 않은 흔적 중 하나인 것이다.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6개의 뾰족한 검은 지붕이 인상적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15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만날 수 있다. 벽화에선 은광에서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을 수는 없지만, 세인트 바바라 성당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쿠트나호라가 중요한 중세도시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세인트 바바라 성당으로 가는 길 왼편에 서 있는 아름다운 동상들

쿠트나호라 맛집!

피브니체 다치키 (Pivnice Dacicky)

전화번호: +420-327-512-248

메뉴: 흑맥주, Gamekeepers Reserve

피브니체 다치키

피브니체 다치키는 쿠트나호라의 흑맥주를 맛보기에 최고인 펍이다. 대표 음식은 Gamekeepers Reserve로 맥주와 잘 어울리는 플래터다. 프라하에 수많은 맛집이 있기 때문에, 쿠트나호라에서 식사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피브니체 다치키는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나 또한 이곳의 흑맥주에 흠뻑 취해 하마터면 프라하로 못 돌아갈 뻔했기 때문이다.

흑맥주와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 된다

쿠트나호라, 체코 여행의 서막

한적하고 아름다운 도시, 쿠트나호라

쿠트나호라를 체코 또는 동유럽 여행의 첫 여행지로 정한 것은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소도시라 여행 일정을 여유롭게 잡아도 도시를 다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시차적 응이 덜 된 상황에서 천천히 둘러보며 걸을 수 있었다. 게다가 유럽의 기독교 문화와 역사를 직접 보고 듣지 못한 상황에서 쿠트나호라는 여행의 전주곡으로 부족함이 없는 도시였다. 무서운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세들레츠 납골당을 들린 뒤 잠을 설칠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쿠트나호라 흐라덱의 가이드 분과 함께 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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