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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 Dec 17. 2021

석탄 산업의 살아있는 증거, 태백 탄광촌

1960년대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이었던 탄광업의 현장을 찾아서

태백을 시로 승격시킨 주역, 하지만 몰락의 주범

탄광으로 흥했던 장성동의 풍경

태백산 국립공원에서 열리는 태백산 눈축제는 태백에 온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요인이지만, 눈축제 만으로 이틀을 보낼 필요는 없다. 눈축제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눈조각을 둘러보고 태백산에 올라도 하루만 투자해도 넉넉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태백산 눈축제를 보고 태백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이는 태백시가 강원도 지자체 답지 않게 작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동(洞) 보다 작은 인구 5만 명도 되지 않는 태백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었을까.


국립공원 이야기 34 - 강원도 탄광촌 이야기

태백이 시로 승격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선 6,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탄광산업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탄광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 때다. 1920년대에 삼척 도계읍에 탄광이 개발된 이후 강원도 곳곳에 탄광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삼척이 험준한 산악지형이라 수송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 지역에 탄광을 개발한 건 묵호항이 가까워 일본으로 나르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대한민국의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석탄에 대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추운 겨울나무를 때며 버티던 국민들에게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하자 탄광업이 자연스럽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중 민영탄광의 메카로 우뚝 선 곳이 바로 정선군 사북읍이다. 1959년 79가구에 불과했던 사북은 1962년이 되자 인구가 1,800명으로 증가하였다. 후에 사북광업소 직원만 4,500명까지 늘어나는 성과를 바탕으로 1973년 사북은 읍으로 승격되기에 이른다. 탄광 노동자 유입으로 사북읍의 인구는 1980년에 51,042명이 되었으며 사북읍 고한리는 정암광업소 등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고한읍으로 분리되었다. 탄광업은 계속 발전하여 정선군의 신동읍, 태백시의 장성동・황지동・철암동, 삼척시의 도계읍, 강릉시의 옥계읍 등에서 지역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 곳곳에 위치한 탄광

사북읍이 탄광산업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이 된 것은 1980년 4월에 일어난 '사북항쟁'이라는 파동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일어난 사건에 전 국민이 주목하였으며, 이는 사북읍이 후에 우리나라 유일의 카지노인 강원랜드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만든다. 하지만 실제 탄광촌의 탄광 개수나 노동자수 등의 규모만 놓고 보면 태백시가 정선보다 몇 배나 더 큰 탄광촌이었다. 2004년에 정선의 마지막 광업소인 사북광업소가 폐업하면서 고한읍과 사북읍은 폐광촌이 되었지만, 태백시에 아직 광업소가 남아있는 건 태백시에 탄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철암동의 옛 모습

석탄의 수요가 줄자 한국 정부는 1989년에 석탄산업합리화를 시행하여 1988년에 347개에 이르는 광업소가 1996년에 11개만 남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한 때 석탄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인구가 계속 증가하여 삼척에서 분리 후 탄생한 태백시의 인구감소는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1987년에 12만 명이었던 태백시의 인구는 고작 11년 만인 1998년에 반도 안 되는 5만 9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태백시뿐 아니라 탄광업으로 발전한 삼척시・정선군・영월군 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태백의 탄광촌을 둘러보자

태백산 눈축제만 본 뒤 강원도 인근의 다른 지역을 둘러볼 수도 있지만 이왕 태백에 온 거 태백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했다. 태백시를 이루고 있는 동네 몇 군데를 둘러보며 수십 년 전 대한민국의 추운 겨울을 나게 해 준 산업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태백시내라 할 수 있는 황지동 주변에선 탄광의 흔적을 발견하기 힘들어 장성동과 철암동으로 일정을 잡았다.

태백 장성이중교

장성동은 아직도 영업 중에 있는 탄광인 태백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있는 동네다. 태백 장성이중교는 1935년에 지어진 다리로 석탄 수송 열차가 다니는 통로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장성동이 석탄을 생산하는 주요 지역이었음을 알게 한다. 장성이중교와 함께 남아있는 구 태백등기소와 태백경찰소 망루는 한국이 독립한 1950년대에 세워진 건물이다. 구 태백등기소는 태백시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관공서 건물로, 근대 건축 기법을 잘 드러내고 있다. 태백경찰소 망루는 한국전쟁 당시 살벌했던 분위기를 잘 드러내 준다. 북한군과 공비 침투에 대비해 초소와 망대 역할을 한 이 건물은 한국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는지 나타낸다.

태백경찰서 망루
구 태백등기소

장성동은 오래전 탄광으로 번영했던 동네지만 지금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건물은 많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으며, 추운 겨울 황량한 모습을 드러낸 산은 태백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장성동에서 황지천을 따라 걸으면 구문소동이 나오며, 구문소동 뒤편 언덕에 365 세이프타운이라는 테마파크가 들어서 있다. 365 세이프타운의 다양한 시설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4D 입체영상으로 자연재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으며, 각종 체험을 통해 긴급상황에서 어떻게 조치해야 되는지 알 수 있다.

365 세이프타운에서 볼 수 있는 풍경

하지만 365 세이프타운의 하이라이트는 건물 내부의 시설이 아닌 365 케이블카라고 할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으로 가면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라는 강원도 시골의 풍경이 눈에 펼쳐진다. 정상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태백시 경관을 감상할 수도 있으며,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도 있다. 태백산 눈축제의 현장은 여기에도 남아있어 어제 만끽했던 눈축제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몇몇 종목이 눈조각으로 표현되어 있어 강원도가 올림픽에 가지는 열정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게 한다.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 태백산 눈축제의 현장

세이프타운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또 다른 탄광 마을인 철암동이 나온다. 철암동은 황지동이나 장성동에서 눈으로 직접 보기 힘든 탄광의 현장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동네다. 1935년에 건설된 철암역두 선탄시설은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 시설로, 우리나라 근대 산업사를 상징하는 주요 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선탄시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낌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오랜 세월 동안 석탄을 채굴하여 황량해진 산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현대의 편의를 아무런 가책 없이 누리고 있는 나 또한 이런 자연파괴의 주범 중 하나다.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거대한 산업시설과 달리 철암동은 장성동보다도 규모가 작고 조용하다. 마치 영화 촬영장에서만 볼 수 있는 오래된 건물들이 철암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실제 광부들은 이미 대부분이 떠나고 없지만 거리 곳곳에서 동상으로 조각된 광부들을 만날 수 있다. 철암동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삶을 살아온 그들의 흔적은 현재 온 데 간데없다. 광부들이 찾던 식당과 술집은 간판마저 낡아 쓰러져가고 있다. 태백시는 철암동의 화려했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철암탄광역사촌을 조성했다. 태백과 보령에 석탄박물관이 있어 탄광에 직접 들어갈 수 있는 기회도 있기에, 마을에 불과한 철암탄광역사촌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시들하다. 하지만 철암탄광역사촌에 방문해 광부들이 일했던 현장이 아닌 여가시간을 보냈던 현장을 볼 수 있어 나름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태백을 떠나며

황량하기 그지없는 철암탄광역사촌

철암 탄광촌을 뒤로하고 태백시외버스터미널이 위치한 황지동으로 다시 향했다. 태백시내는 축제가 열리고 있음에도 추위로 인해 한산한 분위기다. 많은 사람들이 주 축제장인 당골 광장으로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태백시는 강원랜드와 하이원리조트로 대박을 친 정선군의 뒤를 이어 관광으로 먹고살 길을 모색해보지만 쉽지 않은 분위기다. 오투리조트는 살아날 기미를 안 보이고 있으며, 태백의 인구는 급속도로 줄어 5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태백의 미래를 생각하니 어둡기만 할 뿐이다. 내가 다시 태백에 올 일이 있을까. 철쭉이 만개한 늦봄이나 단군께 제사를 드리는 개천절 외에는 올 일이 없지 않을까. 태백이 다시 일어나 내 눈길을 끌 그날이 오길 고대한다.


사진 출처

1) https://ncms.ncultu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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