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는 타는 편이지만 더위는 무척 강한 편이다. 아내도 나와 마찬가지 체질이며 에어컨 바람을 싫어한다. 비록 땀은 흘리지만 하는 일에 지장을 받지 않았기에 에어컨 없이도 무난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팬데믹 시절, 코로나 민생 지원 쿠폰은 에어컨 설치하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거실이 아닌 어머니가 광주에 오면 기거하는 방에만 에어컨을 설치했다.
이랬던 내가 작년부터 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자주 듣는 기후위기라고는 하지만 일시적인 나의 컨디션 문제일 거라고 무더위를 애써 인정하지 않았다. 가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특별한 해가 있었기에, 다음 해에는 평년의 더위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여름! 작년 못지않게 무더위가 느껴진다. 장마가 지나간 요즘의 날씨는 작년보다 더욱 무더워진 느낌이다. 나이에 따른 체력저하인가 싶다가도 정말 기후위기인가를 실감한다.
주말을 보내려 시골집에 왔다. 시골집은 서향인 관계로 오후가 되면 태양빛을 정면으로 받는다. 예년 같으면 마루에 커튼을 치고 선풍기를 켜면 특별히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지낼 수 있었다.
시골집의 여름 더위를 올 들어 처음 온몸으로 받고 있다. 평소처럼 커튼을 치고 선풍기를 켰지만 어림없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더위이다. 결국 2시에서 5시까지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을 켜니 땀은 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식은땀이 나는 듯하다. 전기료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골집 에어컨은 30년이 넘은 구형이다. 전기효율이 지금의 전자제품처럼 효율적이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무더위에 항복한 자본주의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글을 쓰다 잠시 고개를 드니,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어머니가 생각난다. 재작년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마지막 여름을 보냈다. 무더울 때는 전기료 걱정 말고 에어컨을 켜시라고 재차 삼차 당부했었다. 어머니의 대답이 시큰둥할 때는 기계는 정기적으로 사용해야만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경고(?)까지 했었다.
그동안 여름이 되면 어머니는 과연 얼마나 에어컨을 켜고 지냈을까. 혼자 있을 때는 절대 에어컨을 켜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래서 구형 에어컨을 30년 동안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하늘나라에서는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