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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23. 2024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천인공로할 세월호 침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성한의 극중TV입니다. 오늘은 센세이션한 분을 모셨습니다. 본인의 이름과 모습을 가려달라는 부탁을 해서 마스크를 쓰셨고, 이름은 ‘토끼탈’로 불러달라고 하십니다.”

방송국 수준이라고 인정받는 서울 서초동의 유튜브 제작 스튜디오에서 <이성한의 극중TV> 녹화가 있는 수요일 오후에 <세타의 경고> 첫 녹화를 시작했다. 이성한은 아주신문, 퍼시픽투데이를 거친 기자로 프리랜서 선언 후 유튜브에서 <극중TV>를 개설했다. 탐사보도 채널을 표방했지만 일 년이 지난 현재 구독자 9천 명에 머물고 있어서 돌파구가 필요한 이성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메일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내용을 <극중TV>에서 토크 형태로 진행하자는 제안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뜬금없는 제안을 해서 이성한은 일단 자기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답신을 하며 전화번호도 알려줬다.

3평짜리 옥탑방 사무실에서 이성한은 토끼탈을 만났다. 170센티미터는 돼 보이는 늘씬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젊은 여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스카이 블루 칼라의 땡땡이가 흐리게 들어간 원피스를 입었고 흰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체격에 비해 가슴이 작은 편이었다. 이성한은 당연히 중년의 아저씨라고 예상했다가 좀 놀랐기에 엉거주춤 일어나며 건조한 환대의 인사말을 건넸다.

“이메일 주신 분? 세월호? 아,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메일 보고 남자분으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미인이 들어오셔서 잠시 놀랐습니다. 하하”

“평소 <극중TV> 애청자입니다. 이성한 기자님이 용기 있고 진실을 사랑하는 기자라고 생각해서 찾아왔어요.”

이성한과 젊은 여자는 저녁을 함께 먹고도 밤 10시까지 얘기를 나눴다. 젊은 여자는 자기를 토끼탈로 불러달라고 했고, 영상 촬영할 때 토끼 가면을 쓰고 얘기하겠다고 요구한다. 자기 신상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도 하지 말고 서로 연락은 텔레그램으로만 하자고 한다. sim카드 없는 공기계로 텔레그램 사용하니까 전화번호 없고 철저하게 anonymous(익명성)을 지켜달라고 요구한다. 그러지 않으면 저들이 자기를 죽일 수도 있어서 두려운 마음이 크다고 덧붙였다.

“죽여요? 누가 죽인다는 말씀....”

토끼탈은 ‘당연한 걸 왜 물어요?’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성한과 토끼탈은 그 후로 두 번을 더 만나고 유튜브 방송을 하기로 했다. 토끼탈은 유튜브 수익금을 6:4로 나누자고 해서 서로 합의하고, 이성한이 토끼탈에게 현금으로 전달하기로 했다.

“현금이라도 새 돈은 안 돼요. 헌 지폐로 주세요.”

토끼탈이 이성한에게 말했다.

“새 지폐는 추적 가능해서요. 처음 네 번은 회당 150만원씩 주세요. 다섯 번째부터는 수익금에서 쉐어하고, 촬영할 때마다 현금으로 주시구요.”

토끼탈이 다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이성한이 대답했다.

“이성한 기자님도 절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 안 됩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 방송에서 밝히고, 매번 잠자리를 바꾸셔야 해요. 의심이 가는 장면에서는 믿을 만한 지인이 녹음할 수 있도록 전화를 연결시키세요. 대포폰을 추가로 마련하시구요.”

토끼탈이 나지막히 말할 때 이성한은 토끼탈이 남자가 아닐까 의심했다. 토끼탈의 상완근에 순간 골이 생겨서 운동을 엄청 많이 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첫날 녹화가 시작됐다. 흔한 PD나 촬영기사도 없다. 아이폰 15로 촬영하고 거의 컷편집 하지 않을 정도로 원테이크로 촬영하기로 했다. 삼각대에 폰을 올려놓고 아이워치에서 녹화버튼을 눌렀다.

이성한이 스마트워치로 줌아웃을 하니 토끼탈까지 투샷으로 잡힌다. 이성한이 이어서 토끼탈에게 물었다.

“시청자들과 처음 만나는데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토끼탈입니다. 토끼 마스크를 쓰고 말씀드리는 걸 양해 부탁합니다. 저는 2014년 세월호 침몰 이후 진실을 추적하는 취재와 탐사를 진행했어요. 프리랜서로 움직였구요. 이제 모든 내용이 정리돼서 존경하는 이성한 기자님의 극중TV에서 여러분을 만나기로 했어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성한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목소리 톤이 약간 올라가서 멘트를 던진다.

“아, 시청자 여러분께 강조할 점이 있어요. 매주 금요일 밤 11시에 만나는 이번 코너 <세타의 경고>는 소설의 내용을 정기적으로 작가와 제가 토크쇼를 통하여 시청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소설입니다, 소설.”

“소설이죠...”

토끼탈이 자조적 뉘앙스로 한마디 던지다가 이내 격앙된 듯 뇌까린다.

“소설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씨발. 우리가 소설로 강요당하는 거지, 씨발. 내가 왜 토끼 마스크를 쓰고 여기 앉았는지 생각해 주세요.”

이성한이 급하게 토끼탈을 진정시킨다. 얼굴은 웃고 있었다.

“우리가 유튜브 방송이지만 품격과 공정을 표방하는 극중TV에서 거친 말은 삼가주시는 게...”

이성한은 ‘미모의 여성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씀이 아니다’는 멘트를 할 뻔했다. 말하기 직전 이성한의 전두엽이 먼저 경고를 보낸 것이다. 성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어머 죄송해요. 비록 소설이지만 제가 취재하면서 느꼈던 분노가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피꺼솟이 상투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꺼구로 솟는 체험을 시청자 분들도 하실 거예요.”

토끼탈이 톤다운하며 변명을 한다.

“여러분 팩션 아시잖아요. 팩트와 픽션을 합쳐서 팩션이라고 하는데, 저희가 전달하는 내용을 팩션으로 봐주세요. 토끼탈의 지난 10년 세월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시죠. 구독과 좋아요는 세타의 경고가 이어지는 힘입니다. 일단 좋아요 눌러주시고, 오늘 내용 듣고 나서 다음 주 세타의 경고가 궁금하시면 구독과 알림 버튼도 눌러주세요. 누르지 않고 지나가시는 분은 없을 거란 확신이 듭니다.”

이성한이 한껏 들떠서 인트로를 마무리한다.

“자, 그럼... 세타의 경고는 10회, 그러니까 10주 동안 진행하는 시리즈죠? 제1화 제목이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네요. 이거 영화 제목에서 온 건가요?”

“그래요. 세월호 참사 10년 전에 개봉한 미국영화죠. 에일리언이나 프레데터나 모두 외계 종족이죠. 영화 포스터에 쓰인 문구가 ‘누가 이기든 미래는 없다’이거든요. 하지만 영화 결말은 에일리언과 프레데터 모두 소멸하고 극중 유일한 여자 인간 알렉사가 살아남아요. 저도 두 괴물이 죽기를 바라고 저를 포함한 선한 사람들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에 첫 장의 제목을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로 잡았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만들기 바라는 마음이죠.”

이성한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에일리언은 외계 괴물을 말하고 프레데터는 포악한 약탈자를 말하는데, 세타의 경고에서 누가 에일리언이고 누가 프레데터인가요?”

“에일리언은 군부 세력이고 프레데터는 국정원을 말합니다.”

“오우... 예상은 했지만 무시무시한 놈들의 전쟁이군요. 그런데 제게 전달해주신 목차에 보면 9화 제목이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2(two)이거든요. 투(two)에서도 군부와 국정원이 싸우게 되나요?”

“아닙니다. 그때는 세월호 이후의 상황인데, 전쟁 주체가 달라져요. 그건 9화에서 다시 말씀드릴게요.”

“1화 제목부터 흥미진진합니다. 그런데 맘 편하게 스토리를 즐길 수 없는 게, 세타의 경고가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소설적 상상이다 보니까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영화처럼 어둡고 음산한 기운이 감돕니다. 1화의 부제는 ‘천인공로할 세월호 침몰’인데, 왜 군부와 국정원의 전쟁이 1화로 등장하나요?”

마스크의 눈가 구멍을 통해 토끼탈이 눈을 질끈 감는 게 보인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하다가 토끼탈이 입을 열었다.

“1993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 숙청을 단행했지요.”

“네 모두 잘 아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죠.”

“하나회의 뿌리는 6.25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오랜 세월 탄탄한 기반을 가진 군부 실세였어요. 전두환과 노태우, 노태우의 처남인 김복동을 포함한 다섯 명이 오인회를 결성한 이후 25년 후배인 육사 36기까지 비밀리에 끌어들였지요. 박정희가 권력을 다지느라 일부러 하나회를 키웠기 때문에 군부를 넘어 대한민국의 실세로 작용했거든요. 하나회가 없었다면 12.12 쿠데타도 없었지요. 더구나 전두환이 하나회 두목인데 광주학살을 통해 권력을 잡았으니 하나회는 일부 젊은 장교들에게 선망의 조직이었어요.”

이성한이 맥락이 끊어지지 않게 브릿지 역할을 능숙하게 한다.

“그런 막강한 하나회를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전격적으로 어떻게 날릴 수 있을까요?”

토끼탈이 대답했다.

“하나회는 하나회 회원조차 명단을 알지 못했어요. 극소수 우두머리 그룹들만 회원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요. 김영삼이 노태우와 담판을 지으면서 거래를 했어요. 전두환과 노태우를 보호할 테니 하나회를 날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구한 거죠. 박철언이 극구 말렸지만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하나회 명단을 넘겼어요.”

이성한이 궁금한 걸 물었다.

“당시 하나회 척결에 국정원, 그러니까 당시엔 안기부겠네요. 안기부의 역할이 컸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나요?”

이름을 모르지만 토끼탈이 처음 이성한을 찾아왔을 때 얼굴을 봤다. 많아야 서른 하나 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착해보이는 인상이었다. 풀었다면 등 가운데까지 내려왔을 머리카락을 말아올려서 묶고 망을 씌워서 참한 느낌이었다. 키가 크고 날씬해서 이성한은 눈앞의 젊은 여자가 모델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김영삼이 하나회를 날릴 때 돌잔치를 했을 젊은 여자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구중궁궐 내막을 잘 알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토끼탈의 스토리텔링은 거침이 없었다. 마치 원고를 미리 써서 엠씨와 패널이 시나리오대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노태우가 명단을 넘겼다는 건 곧 안기부가 명단을 제공했다는 말이죠. 2005년에 하나회 명단 250명이 신동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을 때는 이미 하나회의 절반은 도망간 후였습니다.”

“도망가다니요? 어디로 도망갈 수 있습니까.”

“하나회가 500명이 넘는데, 김영삼 전격 조치 이후 3,40 대 젊은 장교들은 하나회 명단에서 빠지려고 온갖 로비를 벌렸어요. 어떤 장교는 수천만 원을 실세에게 전달하며 이름을 지워달라고 했지요. 도망갔다는 건 명단에서 빠져나갔다는 말입니다.”

“하나회 척결은 김영삼 임기 시작과 동시에 이루어져서 파워 게임에서 김영삼이 우위에 있었겠죠. 그렇지 않나요?”

“아닙니다. 노태우 집권기에도 권력 주변에 있던 놈들은 최루탄과 백골단, 안기부 공작으로 민중항쟁을 얼마든지 콘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울 종로와 광화문, 서울역 광장 정도에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권력이 눈치를 볼 정도로 시위대가 무섭지 않았구요. 더구나 대학생들은 오합지졸이라 언제든지 찍어 눌러서 질식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13대 총선에서 최초로 여소야대 결과가 나오면서 1990년 벽두에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이 3당합당으로 217석 거대 여당 민자당이 탄생하거든요. 개헌이 가능한 여당이 된 거지요. 하지만 지구 전체가 혼돈으로 빠지는 사태가 이어졌어요. 김영삼이 민자당 최고위원 자격으로 90년에 소련을 방문하고 고르바초프와 포옹하는 사진을 남겼지만, 이미 소련 붕괴가 예정돼 있었고 결국 91년에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잖아요.”

이성한은 점을 하나 찍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영삼 소련 방문에 박철언이 동행했죠.”

“동행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 방문이 박철언의 작품이고, 곧 안기부가 판을 짜고 벌린 거죠.”

이성한은 토크쇼의 진행상 적절한 타이밍에 자기가 멘트를 날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90년대 초반에 숨 가빴던 시기였지요.”

“문제는 온갖 혜택을 누리다가 썩을 대로 썩은 군부를 그대로 둔다면 김영삼은 집권하더라도 허수아비가 될 게 뻔했죠. 노태우 집권기에 안기부에게 권한을 모두 넘겼던 보안사를 중심으로 5공 세력이 재결집하는 움직임이 있었구요. 5공 세력은 곧 하나회를 말하는 거예요. 한번 쿠데타 한 놈들이 두 번 못 하겠냐는 만용이 있는 상태에서 미국 대사관이 김영삼과 접촉해요. 집권하고 싶으면 하나회에 대한 복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거든요. 한국 군부를 그대로 둔다면 한반도 안정에 걸림돌이 된다는 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전달해요. 동시에 같은 메시지를 노태우에게도 전달하죠.”

“당시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던 때잖아요.”

“그래요. 아버지 부시는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지구촌 원톱을 계속 먹으려고 걸프 전쟁을 일으키는데, 한반도 사태가 리스크였으니까요. 남한의 똥별들이 엉뚱한 짓을 하면 한반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늠이 되지 않으니까 하나회 척결을 종용했어요. 아버지 부시에게 한반도는 붕괴한 소련과 사실상 자본주의 시스템에 들어온 중국과 봉쇄에서 탈출하려는 북한이 뭔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독일 통일과 이어진 소련 붕괴 뒤치다꺼리를 하기에 편한 마음이 아니었죠. 그런 와중에 남한의 신군부 세력의 움직임이 포착됐어요.”

“그래서 노태우가 하나회 척결에 협조한 거군요.”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김영삼이 노태우에게 졸랐어요. 하나회 명단을 넘기라구요. 하나회를 해체하고 소속 군인들은 몽땅 옷을 벗기겠다고 선언했지요. 노태우는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하나회 숙청을 앞에서 주도한 사람이 권영해 국방장관이었잖아요. 육사 15기인 권영해.”

토끼탈이 테이블에 놓인 물병을 들고 유리잔에 물을 절반 따랐다. 천천히 물을 마시고나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권영해를 국방장관에 앉힌 게 하나회 척결을 위한 포석이죠. 권영해는 하나회에 이를 갈던 군부 변두리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로 표현한 건 군부와 안기부의 대결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토끼탈이 물잔의 남은 물을 마시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박정희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권총으로 난사한 이가 누굽니까.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이고 부하를 동원해서 작전을 펼쳤잖아요. 넓게 보면 중앙정보부가 반란의 주체인 거죠. 박정희가 하나회를 이용했지만 KCIA는 자신의 방탄복으로 사용했어요. 60년 대 대부분을 중정부장으로 일한 김형욱이 배신을 하니까 더욱 친정 체제로 강화하고, 대통령 경호실과 중앙정보부를 권력의 두 기둥으로 삼았어요. 박종규가 10년 차지철이 5년 경호실장을 하며 박정희를 두 사람이 경호했을 때, 전두환이 경호실과 야전을 들락거리며 크고 있었고, 이후락, 신직수, 김재규 세 명이 3년씩 유신정권의 KCIA 보스를 할 때 김기춘 검사가 정보부를 휘젓고 다녔어요. 조직의 대결이라면 군부의 상징 대통령 경호실과 공작정치의 브레인 KCIA이지만 개인 인물로 좁히면 전두환과 김기춘의 관계가 40년 이상 한국 현대사를 지배합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둘은 협력관계이자 길항관계로 공생하며 대한민국을 타락시켰어요. 그 타락의 끝이 세월호 참사로 나타납니다.”

이성한도 침을 꿀꺽 삼켰다.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테이블에 물잔이 하나뿐이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한 녹화를 끊지 않고 한 번에 촬영하려고 마음먹었기에 사운드 공백이 없도록 서둘러 말을 이었다.

“말씀을 들으니 이건 마치 거목을 옮기기 위해 뿌리에서 먼 곳의 흙을 파서 넓은 땅 전체를 떠올린다는 느낌입니다. 세월호 비극이 40년 이상의 한국 현대사의 결과라는 말씀이 매우 충격적입니다. 2014년 참사의 씨앗이 박정희 유신 선언이라는 건가요? 2014년의 정확한 40년 전은 1974년이군요.”

“맞아요. 박정희는 1972년 10월에 유신헌법을 선포하지만, 1974년의 대통령 부인 육영수의 사망은 충격적이고 중요한 전환점이에요. 드러난 것은 김대중 납치사건에 따른 일본의 항의를 잠재우고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말도 안 되는 긴급조치 남발에 대한 정당화이거든요.”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사정이 있나요?”

“어쨌든 대통령 경호의 실패이고 영부인이 총에 맞아 즉사했으니 누군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어요. 10년 동안 박정희 곁을 지킨 박종규 경호실장이 물러나는 건 당연하지요. 육영수가 문세광의 총알에 죽은 게 아니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1974년 8월 15일, 그러니까 한일관계의 상징적인 국경일에 일본에서 건너 온 청년의 총탄에 국가원수의 부인이 사망한 사건은 공교롭고도 기이한 일이죠. 더구나 문세광은 당시 언론이 조총련이라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민단 소속이었으니 공작의 냄새가 풀풀 나거든요. 여기서 김기춘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어요.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간여한 김기춘이 이미 청와대에 들락거렸고 박정희가 똘똘한 친구라고 이뻐했어요. 그가 문세광 자백을 받은 공로로 중앙정보부 대공국장으로 파격 승진한 것은 74년 광복절 육영수 사망 사건이 누구의 공작인지 말해주는 거예요. 문세광은 몇 달 만에 죽여버려서 증거를 모두 지웠구요.”

“74년 광복절 대통령 암살미수로 KCIA가 군부를 압박했다는 말씀이네요.”

“그래요. 사실 당시 군부의 핵심은 5.16 쿠데타 주역들인데, 대부분 꼴통들이었죠. 이승만 정부에서 거들먹거리던 정치 깡패와 군부 깡패가 다를 바 없었어요. 치밀하게 기획하고 세밀하게 추진할 수 없는 부류예요. 그런데 김기춘은 똑똑한 야망덩어리 빌런이었죠. 박정희의 후광으로 군바리 꼴통들을 우습게 생각했어요. 더구나 76년에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군이 유엔군 장교 두 명을 살해한 사건이 터지고, 한반도가 전쟁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분위기였어요. 국내에서는 긴급조치로 정치 파탄이 난 상태에서 77년에 대대장이 부대를 이끌고 월북하는 사건이 터져요. 박정희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어요. 이미 박정희는 미친 상태에 있었구요. 72년 유신 선언으로 종신 대통령을 꿈꾸지만 73년에 베트남 철수와 남베트남의 소멸을 봤어요. 박정희는 두려움에 떨었어요. 74년에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긴급조치를 발동하고, 이어서 마누라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을 만들었어요. 75년에는 인혁당 사법살인으로 전 세계에 악마 독재자로 찍혔어요. 이어서 자기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76년에 판문점 유엔사 장교 살해 사건을 빌미로 국지전을 벌리겠다고 광기를 부릴 때 미국이 어르고 달래면서 막았구요. 그런데 77년에 대대 병력이 북한으로 넘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거예요. 핵심은 70년대 내내 북한 GDP가 남한보다 높았어요. 급하게 경제 개발하겠다고 외채를 쓰니까 나랏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어요. 박정희가 제 정신일 수가 없는 거죠.”

이성한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우리의 70년대는 비극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저는 어려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몰랐지만 복기해보면 숨막히는 세월이었네요. 요즘도 위기를 느낍니다만...”

토끼탈의 목소리가 더욱 건조해졌다.

“70년대가 더더욱 위기였죠. 지금이야 대한민국은 G20에 들어가는 중요 국가입니다만, 70년대에는 정말 초라했어요.”

“77년의 대대장 월북 사건은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정말 대형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김기춘이 보안사를 조진 거예요. 월북 사건에 보안사의 책임이 가장 크니까요. 김기춘은 보안사 조직을 축소하려고 했어요. 당시 보안사령관은 하나회 소속 진종채였구요. 중앙정보부에 찍소리 못한 거죠. 진종채 다음 보안사령관이 전두환이구요.”

이성한이 조금 거든다.

“박정희 죽은 10.26에 전두환은 경호실 차장이자 보안사령관이었죠.”

“그런데 중앙정보부가 대통령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권력을 잡으려고 하니까 기회는 이때다 싶은 전두환이 하나회를 규합하여 내전에 들어가고, 결국 피의 집권을 하잖아요. 그러니 10.26 후 보안사가 KCIA를 접수할 때 김기춘을 찾았다는 풍문은 사실이에요. 김기춘은 죽지 않으려고 고향 거제도가 아닌 잠실장미아파트 친구 집에 한동안 숨어 지내요.”

이성한이 이야기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도올 선생이 6.25 한국전쟁을 한반도 국지전이 아니라 30년 동아시아 전쟁으로 바라봐야한다고 말한 게 생각납니다. 도올은 전쟁의 뿌리가 임진년 일본의 침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시던데.... 우리가 금요일마다 만나는 소설 세타의 경고는 세월호 참사에 초점이 있잖습니까. 대통령 경호실과 보안사로 대표되는 군부와 KCIA 갈등의 역사를 살펴본 것과 세월호 참사는 어떤 관련인가요?”

토끼탈이 다시 물잔을 만지다가 그냥 내려놓고 대답한다.

“김어준이 세월호 다큐 영화를 만들었죠.”

“네 <그날 바다>가 제목이죠. 그후에 스핀오프 영화 <유령선>도 제작했구요.”

“<그날 바다> 가제는 인텐션이었거든요. 세월호 침몰은 우연한 사고가 아닌 누군가의 의도적인 침몰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고의 침몰이라는....”

“앗! 고의 침몰이 맞나요? 물론 토끼탈 작가의 소설 속에서 말입니다.”

“네 세월호 침몰은 고의 사고입니다.”

이성한이 급하게 말한다.

“작가님 소설 속에서 고의 침몰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그렇죠? 작가님...”

“저는 고의침몰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어요. 제 탐사취재 결과는 그렇습니다. 의도적인 사고입니다.”

“분명히 하고 갈게요. 작가님의 믿음이죠. 저는 동의하지 않고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극중TV잖아요. 우리는 극도의 중립을 지향합니다. 대법원의 공식 입장도 ‘사고 원인을 알 수 없음’입니다. 고의적 사고라는 말씀은 소설 내용으로서 작가님의 생각이라고 정리합니다.”

“네, 인정합니다. 탐사취재를 바탕으로 제 뇌피셜입니다. 저는 굳게 믿고 있다는 말씀을 드려요.”

“저희는 소설 세타의 경고를 금요일마다 토크쇼 형태로 시청자 여러분께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의도적인 침몰이라면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말인데, 과연 누가 그런 천인공로할 일을 벌인 건가요?”

토끼탈이 더욱 목소리 톤을 낮추며 대답한다.

“보안사에서 이름을 바꾼 기무사가 기획한 공작입니다.”

“네? 국정원이 아닌 기무사라구요?”

“네. 그래서 KCIA와 군부의 갈등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음... 좀 당황스러운데요. 아니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1983년에 미얀마 랑군에서 아웅산 묘지 테러사건이 일어나지요. 5공화국은 보안사 천국이었습니다. KCIA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을 하면서 잠시 겸직했고, 이후 장세동을 비롯한 군바리 오른팔들이 안기부를 접수하면서, 보안사와 안기부는 한 몸이었어요. 테러는 북한의 소행입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미리 알았어요. 미얀마가 전두환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전두환이 미얀마를 방문하겠다고 계획을 수정해서 밀어붙였거든요. 다 계획이 있었던 거죠. 전두환은 아웅산 묘소 참배에 10분 늦었고 전두환 도착 직전에 폭탄이 터져서 살 수 있었죠. 고위 공무원 17명이 즉사했고, 버마 관계자도 4명이 죽었어요. 모든 상황을 지휘한 경호실장 장세동과 전두환 육사 동기 이기백 당시 합참의장은 아웅산 묘소에 있었어요. 장세동은 90을 바라보며 잘 살고 있고, 천수를 누리다가 이기백은 2019년에 죽고, 전두환도 죽기 전까지 골프치다가 90세를 일기로 죽었어요. 세 사람만 1983년 미얀마 랑군에서 무사했던 겁니다. 전두환이 한 말이 있어요. 세 가지 천운이 겹치면서 살았다고...”

“아웅산 테러를 말씀하시는 맥락이 무언가요?”
 토끼탈이 이어간다.

“그런 집단인 거죠. 필요하다면 목숨을 끊어버리는 게 가장 확실한 솔루션이라고 믿는 집단이에요. 공작의 달인들은 공작을 하고 싶어합니다. 86년에 아시안게임을 1주일 앞두고 김포공항에서 폭발 테러가 일어나요. 엄청난 위력의 콤포지션4 폭약이 사용돼요. 5명이 죽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어요. 폭약 위력에 비해 희생자가 덜 나왔어요. 우연히 폭발물 근처에서 일하던 공항 직원이 크레모아 파편 대부분을 맞으며 산산조각나면서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어요. 콤포지션4는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 공작원이 사용한 폭약이고, 83년에는 한국군이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아웅산 테러 이후 한국군이 콤포지션4 폭약 개발에 박차를 가해요. 콤포지션4는 87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대한항공 폭발 테러에 사용돼요. 당시 기체가 미얀마 바다에 빠진 것도 슬픈 아이러니죠. 김현희가 체포 압송되고 노태우가 당선된 이후 총기나 폭발물에 의한 테러 사건은 일어나지 않아요. 노태우는 하나회 핵심 멤버이고 수경사령관과 보안사령관을 역임한 군부 실세이지만 집권 후 방향을 바꾸죠. 박철언의 역할이 컸어요. 박철언도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였고 한 똑똑하던 인물이죠. 김기춘과 겹치는 캐릭터예요. 노태우 집권 후 김기춘이 법무장관을 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노태우가 군부를 멀리하고 안기부를 민간인으로 채우면서 동시에 1991년부터는 군사독재 성격을 희석하는 뉘앙스로 보안사령부를 기무사령부로 명칭 변경하거든요.”

“김기춘은 1991년에 법무장관으로 취임합니다.”

“그렇죠. 김기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노태우 취임과 동시에 검찰총장에 취임합니다. KCIA 대공부장 시절 캐릭터 그대로 온갖 정치 공작을 기획하고 지휘했어요. 대표적인 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이었죠. 하지만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사건은 1987년 뜨거운 여름에 벌어진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에요. 김기춘과 구원파 유병언의 관계는 이때부터 이어집니다. 그 얘기는 4화와 5화에서 다룰 예정이구요. 운도 좋고 권력에 줄 대는 선수인 김기춘은 노태우 밑에서 부활했다가 김영삼 정권에서는 국회의원으로 변신합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까지 3선을 하고 이명박 때 공천 탈락하면서 잠시 정치권에서 사라지거든요.”

“김기춘은 국정원을 상징하나요?”

이성한이 물었다.

“그래요. 김기춘의 둥지는 국정원이죠. 우리는 김기춘이 5공과 이명박 정부 시절에 대외적으로 뉴스를 장식하지 않았지만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살펴야 해요.”

“문민정부 들어와 전격적으로 하나회를 해체하고 90년대 들어와 동독이 서독에게 흡수통일되고, 소련이 붕괴하면서 겉으로 냉전이 사라지거든요. 1994년에 미국의 북한 폭격 시나리오가 실제로 진행되려다가 극적으로 멈추고 나서 두 번 다시 남한에는 군부 쿠데타가 불가능한 나라가 됐다는 설이 돌았어요. 국정원 세력에 비해 군부가 위축된 건 사실이겠죠?”

이성한이 90년대 중후반 상황을 끄집어냈다.

“사실입니다. 93년 하나회 해체 후 20년 동안 군부는 언론에서 다룰 이슈가 없었지만, 암중모색, 구밀복검, 절치부심했어요. 박근혜와 육영재단, 박지만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박지만은 약쟁이로 위장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최측근 참모는 바로 아내 서향희 변호사죠.”

이성한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박지만이 모략가였다구요?”

“그 얘기는 3화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박근혜는 박지만의 얼굴 마담이었죠. 군부 권력화의 핵심이고....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한 박지만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육사 동기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탄핵 이후 투신 자살하고, 뒤이은 조현천 기무사령관의 미국 장기 도피로 기무사의 권능은 땅에 떨어지고 조직도 개편돼 영원히 재기하지 못하도록 찌그러졌어요. 동시에 박근혜의 몰락, 최순실의 구속, 김기춘의 실각, 박지만의 사지절단으로 이어져요.”

이성한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며 감탄사 같은 말을 내뱉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권력 공백기는 갑작스러운 박정희 서거와 비슷하네요. 국회 탄핵결의가 있었지만 헌재에서 기각될 거라 대부분 예상했잖아요. 그런데 기적처럼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고.... 권력의 공백을 누군가 채우려고 했을 텐데, 그 순간 검찰 사단이 재빠르게 낚아챈 것이군요. 하나회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것처럼.”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달라요. 박정희는 정말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살해됐어요. 군부도 국정원도 준비된 시나리오가 없었어요. 그러나 박근혜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고, 공작의 주체들이 시나리오를 가동할 시간이 있었지요. 국정원에서는 1979년의 과오를 겪지 않으려고 상황을 주도했어요. 국정원은 장막 뒤 실세 역할을 하면서 무대 배우가 필요했구요. 1차는 어쩔 수 없이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고, 2차는 검찰 권력을 내세웠어요. 걸림돌이 될 인물은 자살로 위장해서 제거했어요. 말을 듣지 않는 인물이나 세력은 죽을 수도 있다고 협박하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거죠.”

“그런데 2022년 집권 후 국정원 마름 역할의 윤석열 검찰 집단이 국정원과 맞짱을 뜨는 거군요. 그림을 그려보니 확실히 보입니다.”

“검찰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요. 법리는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것이고 물리적 힘이 있어야 하는데, 단순한 검찰은 경찰보다도 물리력이 없잖아요. 에일리언처럼 국정원을 숙주로 태어난 검찰 권력이 이제 군부를 숙주 삼아 파워 업그레이드를 노리고 있어요. 검찰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아요. 어쨌든 국정원과 검찰의 개싸움으로 국민들만 죽어나는 거지요.”

이성한이 세월호로 다시 돌아간다.

“결국 세월호 참사는 공작의 산물이라는 말씀인데, 누가 무엇을 위해 저지른 것이죠?”

“박근혜가 청와대 주인이 되면서 국정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육군참모총장 출신 남재준을 원장으로 꽂으면서 국정원과 기무사의 전쟁이 세월호 고의 침몰을 일으킵니다.”

“아아....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힙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앞으로 9주에 걸쳐서 토끼탈의 소설 <세타의 경고>를 한 챕터씩 확인해 보겠습니다. 토끼탈님 마무리로 하실 말씀이 있나요?”

“국가 폭력은 잔인하고 광범위해요. 1980년 광주를 생각해보세요. 80년 전 식민지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은 학살을 통해 권력을 강화했어요. 최대치가 1950년 한국전쟁이구요. 마침 오늘은 1971년 실미도의 북파공작원들이 서울로 진격하다가 전원 폭사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지요. 변명이 불가능한 명백한 국가폭력이구요. 폭력의 원인은 권력 유지와 강화일 뿐이에요. 10년 전 세월호 학살도 똑같은 성격이구요. 소설을 통해 하나 하나 밝힐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국가폭력의 학살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요. 진실의 힘이 더 이상의 학살을 막을 수 있어요. 시청자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한 이유예요.”

“토끼탈님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네 시청자 여러분, 다음 주 금요일에 만나요. 구독 버튼, 좋아요 버튼 꼭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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