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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Oct 18. 2024

에일이언vs프레데터 시즌2

국정원과 검찰의 개싸움

“극중TV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다시 금요일이 왔습니다. 세타의 경고 코너에 여러분의 댓글이 만 건 이상 달렸습니다. 솔직히 제가 일일이 다 읽지 못했습니다. 너무 많은 댓글이라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구독자 여러분들의 반응이 뜨겁고 극중TV의 세타의 경고는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모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토끼탈 님 모셨습니다.”

이성한이 세타의 경고 아홉 번째 시간을 열었다.

“네. 안녕하세요. 저도 건강하게 잘 지냈어요.”

토끼탈이 조금은 가벼운 톤으로 인사했다.

“박근혜 탄핵 재판에서 ‘무능이 법적으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됐습니다. 그래서 박근혜는 세월호 관련 사안은 탄핵 사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국민의 법 감정’에 어긋나는 판결이었습니다. 세월호의 엄청난 희생자가 한 명만 제외하고 303명은 ‘구조하지 않아서 죽었다’는 표현은 문학적인 서술이 아닌 정확한 지적입니다. 구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구조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현장 출동한 경위 계급의 김경일 123 정장만 징역 3년을 받고 이미 오래전에 석방된 상태입니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부터 모든 해경의 구조 관련 인사들이 몽땅 무죄 판결 났습니다. 100톤급으로 세월호에 비하면 조각배에 불과한 경비정 123정의 책임자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아무도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이성한의 말을 토끼탈이 끊으며 보충 설명한다.

“명확하게 짚어야 해서요.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과 이재두 전 3009함 함장은 징역형 집행유예로 최종 확정됐어요. 나머지는 무죄가 작년 11월에 대법원에서 확정됐지요. 세월호 학살 9년 만에요. 김문홍은 구조명령을 내린 것으로 허위 문서 작성했다는 이유고, 이재두 함장도 같은 사유인데, 이재두는 처음부터 잘못을 시인했어요. 나머지 인간들은 전부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어요. 심지어 해경 간부들은 2015년 특조위 청문회에 나와서 특조위를 비아냥대는 태도를 보였어요. 세월호 이후에도 누릴 건 다 누린 징글징글한 놈들이지요.”

“그래서 말입니다.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왜 구조하지 않은 겁니까? 구조하지 말라고 이재수가 미리 해경에게 명령한 것입니까?”

이성한이 ‘도대체’를 세 번 외치며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2020년 12월 14일 공판에서 세월호 당시 해경경비안전국장 이춘재가 이런 말을 해요. ‘만약 갑판 수밀문이 닫혀 있었다면 오랫동안 떠 있었을 수도 있었다’고 말이에요. 세월호를 만든 같은 조선소에서 건조한 아리아케호는 50도 기운 상태에서 5시간 이상 떠있었다는 사례를 가져와서 말하죠.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만 수밀문은 영어로 워터타이트 도어(Watertight Door)라고 말하는데 세월호에 두 개가 있어요. 세월호를 인양하고 보니 둘 다 활짝 열려있었지요. 나중에 똑바로 세웠을 때 들어가 보니 수밀문이나 10개 해치, 5개 수밀맨홀의 흔적을 없앴어요. 지금 세월호는 시설물을 모두 철거하고 벽체 없는 기둥만 남아있어요. 만약 수밀문만 제대로 닫혀있어도 100분 만에 세월호가 물밑으로 완전 가라앉지 않지요.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 동안 떠있었을 겁니다. 수밀문은 조타실에 개폐스위치가 있어요. 4월15일 당일 승선한 장영준 조기장이 수밀문을 수동조작으로 열었어요. 수밀맨홀도 마찬가지였어요. 수밀맨홀은 일일이 스패너로 볼트를 풀어야 하는데 수밀맨홀 하나에 볼트가 수십 개예요. 1994년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후 한 번도 수밀맨홀을 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다섯 개 수밀맨홀이 모두 개방돼 있었구요. 10개의 해치도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개방됐어요. 해치도 쉽게 열리지 않는 구조고, 해치를 연다고 해서 선원들 통행에 보탬이 되는 일은 없어요. 장영준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외부 물이 선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밀폐하는 수밀장치를 몽땅 열었던 거예요. 다른 조기수들은 눈치 챌 수 없었어요. 자정 넘어 기관부에 당번 한 명 외에 모두 방에 있을 때 작업한 거니까요”

“그러니까 수밀장치 개방은 세월호 침몰의 충분조건이란 말씀입니까? 침몰이란 결과는 필요조건이고 말입니다.”

“갑자기 수학 용어를 사용하시니까, PD 님 표현대로 말하면, ‘수밀장치 오픈이면 침몰이다’가 돼요. p→q에서 수밀장치 오픈은 p이고, 침몰은 q이지요. 제 주장을 반박하려면 p→~q일 수 있다, 즉 수밀장치 오픈이지만 침몰이 아닐 수 있다는 예를 한 가지라도 보이면 되지요. 그게 제 주장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지요. 문제는 p가 하나가 아니에요. 세 가지이지요. 수밀장치 오픈과 배가 50도 이상 기울었다는 것, 그리고 폭약으로 선체에 구멍이 났다는 것이지요. ‘배가 50도로 기울었고, 수밀장치가 모두 개방됐고, 선체에 구멍이 난다면 급속한 침몰이다’ 이게 제 주장의 수학적 표현이에요. 일단 앞의 두 가지, 배 기울임과 수밀장치 개방은 이미 확인된 것이지요. 폭약을 사용한 선체 파공(破空)은 장영준의 비밀 임무였지요. 그런데 전체 수밀장치 개방에 대해서 해경이 알 수 없었던 건 분명해요.”

토끼탈이 고등학교 수학 명제 단원의 내용을 가지고 풀어 말했다.

“아, ‘p이면 q이다’를 여기서 만나니 좀 어색합니다. 어쨌든 해경은 6500톤급 여객선이 쉽게 물에 가라앉지 않는다는 걸 믿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요. 김경일 123정장을 포함해서 해경 지휘부와 일선 해양경찰서 근무자들이 수밀장치 개방에 대해 상상을 못하고 배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확신 때문에 느슨하게 대응한 건 맞아요. 4월의 바닷물은 상당히 차갑지요. 당시 수온이 12도 내외로 예상됐는데, 물에 빠지면 몸이 오그라드는 찬물이에요. 만약 바다 속에서 2시간 동안 방치되면 저체온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어요. 구조선이 팽목항에서 출발하면 적어도 1시간은 걸리고, 목포항에서 출발하면 2시간 이상 걸려요. 따라서 현장을 보지 못한 채 침몰하는 선박에서 탑승객의 구조를 지휘하는 구조본부 입장에서 선박 탈출 명령을 선장에게 일임하는 선택은 자연스러워요. 구조 본부에서는 세월호 주변에 대형 유조선이 사고를 목격하고 대기하고 있다는 상황, 구조 요청 통신을 들은 어선들이 몰려왔다는 상황을 모를 수 있어요. 추가적으로 그 누가 선박에 구멍을 뚫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침몰될 줄 알았겠어요. 그러니까 탈출 명령을 선장이 내리는 건 일반적 상식이에요. 선장이 정상적인 상황 판단을 할 수 없을 때 현장의 해경이나 지휘본부에서 승객의 선박 탈출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매뉴얼이 있지만 말이에요.”

“그렇지만 123정이 유독 재빠르게 선원만 구조하고, 선원인 줄 몰랐다고 발뺌한 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선원 구조 후 승객 구조에는 나서지 않은 건 분명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성한이 답답함을 토로했다.

“바로 그 점이에요. 김경일 정장에게 누군가 가장 먼저 선원을 구출하고, 승객은 섣불리 탈출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거죠. 앞에 말한 수학 명제처럼 말할 수 있어요. 김경일이 지시에 의해 움직인 점은 분명해요. 수온이 차갑다는 점,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현장 상황을 감안할 때 김경일은 합리적인 명령으로 받아들였어요. 불과 1시간 후에 끔찍한 학살 현장으로 바뀔 줄 처음엔 몰랐던 거예요. 역사적으로 악당의 하수인들은 자기기만을 해요.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나는 명령에 따른 결과가 범죄가 될 줄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목숨이 소중한 건 본능이니까’ 이렇게 자기기만, 즉 스스로 세뇌하지요.”

“김경일 정장에게 지시한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누구입니까?”

이성한이 급박하게 물었다.

“김경일 정장은 10시28분에 자기 휴대폰으로 064로 시작하는 2등 항해사 김영호의 집 일반전화에 전화를 걸어요. 13초 동안 통화했어요. 10시 28분은 세월호가 공 모양의 구상선수만 남고 선체가 완전히 물에 잠긴 순간이에요. 13초 통화는 ‘여보세요. 접니다. 저는 잘 지냅니다. 안녕히 계세요’ 정도 얘기하고 끊었다는 걸 말해요. 간단하게 주고받는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이에요. 그런데 김경일이 방금 전 조타실에서 내려온, 그것도 줄곧 선원인 줄 몰랐다고 진술한 2등 항해사의 제주도 거처 일반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김경일은 끝까지 그런 적 없다고 하고, 폰을 빌려준 일도 없다고 말했는데 말이죠. 그럼 김영호 2등 항해사가 정장의 폰을 슬쩍해서 세월호가 완전 침몰한 시각에 자기 집으로 전화를 했다는 건데, 앞뒤가 맞지 않아요. 이건 김경일이 세월호 완전 침몰 순간에 어딘가로 보고를 한 거지요. 김영호 집 전화는 착신전환이 된 상태고, 김경일이 김영호 집으로 전화를 하면 다른 핸드폰으로 연결되도록 미리 조치했던 거예요. 김경일이 전화한 064 번호는 김영호 2등 항해사 집이 맞았어요. 제가 직접 가보고 조사했거든요. 착신전환한 번호가 무엇인지 알아봤는데, 제주 거주하는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였어요. 전화 소유자 이름까지 알았지만, 그 사람이 실제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저는 대포폰이라 추측했어요. 10시28분에는 누가 봐도 세월호에 남은 사람은 살아날 수 없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어요. 딜레이된 녹화 화면이지만 전 국민이 지켜본 상황이구요. 팩트는 누군가에게 김경일 정장이 세월호 침몰 상황을 보고했어요. ‘선박 전체가 침몰했고, 대부분 사망 예상’으로 보고한 거죠. 그리고 전화를 받은 사람이 김경일에게 사전에 명령한 것이구요. 조타실의 운항부와 기관부 선원만 신속하게 구조하고 승객은 구조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내용의 명령을요.”

“어이쿠! 예상 못한 충격이 제 심장을 때립니다. 제가 슬픈 건지 화나는 건지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대혼란 난장판 한 가운데 던져진 느낌입니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제 방송이니까요.”

이성한이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저도 취재하고 조사하면서 울면서 다녔어요. 이게 현실인지 제가 꿈을 꾸는 건지 헷갈렸지요. 취재 해보니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협박하고 입에 돈을 물리면 다 굴복했어요. 이런 세상에 산다는 게 리얼이 아닌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데카르트가 모든 건 꿈이라고 말한 걸 충분히 이해해요. 세상은 매트릭스고 한낱 스토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죽어서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살아있는 게 모욕일 뿐이었죠.”

“지금까지 <세타의 경고> 맥락을 본다면 김경일에게 미션 수행 명령을 한 자는 기무사 공작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한이 좀 차분해진 톤으로 말했다.

“저도 그렇게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럼 여기서 소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조영 성우님 부탁합니다.”


국정원이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서 조사한 지 한 달 만에 정리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 공식 보고가 아니라 이명호 8국장이 김기춘에게 비밀리에 올린 보고서였다. 보고서 책임자는 사천호 2차장이었다. ‘기무사가 주도해서 세월호를 침몰시키려고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정황이다’가 결론이다. 이유는 파악하지 못했고, 시기도 특정하지 못했다는 내용이고, 다만 방법적으로 진도군 병풍도 가까이 접근하여 앵커를 고정시설물에 걸리게 해서 배를 쓰러트린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보고 내용을 담고 있다.

손에 칼을 쥐고 있으면 휘두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손에서 칼을 빼앗아야 하는 법이다. 칼을 쥐고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나 조직은 없다. 칼의 존재 이유가 ‘베다’와 ‘찌르다’에 있기 때문이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쥔 자는 군림하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인류가 지구에 아주 오래 살아남는다면 권력이란 개념이 소멸될 것이다. 동시에 총칼을 녹여 보습을 만드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김기춘은 그런 원리를 잘 아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가 마블의 최종 보스 타노스가 되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망이 지난 60년 한국 현대사의 우울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해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다가 1964년 대위 전역 이후 2024년 오늘날까지 60년 동안 김기춘의 삶을 살피면 눈물겹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김기춘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서면 할 말이 뻔하다. “저는 남북분단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정의를 사랑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북한의 위협에 맞대응하는 건 천부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처럼 지옥문 앞에 서는 걸 알았다고 해도 제 태도는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저는 양심수입니다. 선처를 바라고 확신합니다.” 그에 대한 염라대왕의 대답도 또렷하게 들린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고, 너는 그냥 악마야. 인마.”

빌런이 빌런을 알아보는 법이다. 김기춘은 박지만이 무엇을 꿈꾸는 지 알 수 있다. 자신이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 무척 반가운 것처럼 박지만도 엄청 흥분했을 것이고, 그 이유는 자신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게지. 후후.’

기무사령관이 박지만과 둘도 없는 친구고, 3성 장군 승진 후 인사사령관과 기무사령관에 연달아 발령된 것이 박지만의 청탁에 의한 결과라는 건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자기들이 원해서 노재준 육군참모총장을 국정원장에 앉히곤 국정원 소속 세월호를 침몰시키려는 의도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 같으면 왜 그런 짓을 벌이겠다고 공을 들이겠는가 반문한다. 어렵지 않게 상황 판단이 서고, 자신의 대응도 쉽게 정리된다.

‘죽이겠다면 먼저 죽이면 되지!’

김기춘은 이명호 8국장에게 조용히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철저하게 국정원맨이지만 이명호도 육사 출신이다. 이재수 기무사령관을 비롯한 군부의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체크하라고 명령했다. 1979년12월12일 한남동 정승화 계엄사령관 공관을 보안사가 쳐들어간 것처럼 기무사가 세월호 침몰 후 접수하겠다고 나설 곳은 국정원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기무사가 국정원을 먹는다면 이후 상황은 어떨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는 건 어렵지 않다. 5공화국으로 거꾸로 가는 것이고, 김기춘 자신은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을 것이다.

“노재준 원장 취임 이후 이재수가 만나고 접촉한 사람이 누군지 리스트를 뽑아와. 수방사령관부터 수방사 배후 부대장까지 영관급 이상은 모두 리스트에 담아서 가져와. 노재준 원장 움직임을 더욱 디테일하게 감시해서 매일 시간대별로 움직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인포그래프 형식으로 만들어와. 아 그리고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게 블랙데블 팀에게 텐션을 걸고.”

“네 알았습니다. 일주일마다 보고를 리프레시해서 올리겠습니다.”

블랙데블은 국정원 내 암살전담 팀이다. 이명호도 전쟁이 임박했다는 걸 알고 바짝 긴장하며 명령을 받고 돌아갔다. 원장을 따라 죽는 걸 영광으로 알도록 세뇌된 회사 사람들이 이번엔 원장을 제거하는데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강아지는 주인을 따르는 법이데 노재준은 유감스럽게도 자신이 주인이라는 걸 부하 직원에게 각인시키지 못했다.

첫 보고서가 김기춘 책상에 올라왔다. 이재수가 김석구 맹호부대 사단장을 만났다는 내용이다. 대화 내용이 상세하게 보고됐다. 김석구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조현천에 이어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인물이다. 맹호부대는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의 애칭이다. 박정희 때부터 엘리트 부대로 만들었고 장교들의 승진을 위한 선호 부대이다. 최신예 탱크와 장갑차를 보유하고 기동성이 뛰어나서 서울 방위를 위한 최정예 부대로 성장했다. 이재수가 인사사령관일 때 맹호부대 사단장으로 김석구를 꽂았다는 건 이재수와 김석구의 인연은 오래됐다는 얘기다. 

이명호와 김석구는 육사 41기 동기 인연이다. 이재수와 김석구의 미팅 접보를 확인하고 이명호가 연락해서 김석구와 독대했다. 둘은 같은 해에 육사를 들어가고 나왔다는 인연 말고는 그동안 만난 적도 없었다.

“명호야 웬일이야. 이게 얼마만이냐. 국정원에서 고생한다는 얘기만 듣고 있었다.”

“사단장님 활약을 소상히 잘 알고 있었지. 내가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게 있겠는가. 장차 육참총장을 거쳐 합참의장으로 직행할 분으로 알고 있었지.”

“나야 늘 야전에서 살고 야전에서 죽을 생각이야. 승진에 특별히 뜻을 두고 살지는 않지.”

김석구는 국정원 1급 국장이 자기를 찾아온 의도가 뭔지 직감했다. 석 달 전 이재수 선배가 자기를 찾아온 것과 관련이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조금 긴장을 했다.

“석구야. 우리 잘 살자. 살 길을 찾아야 해. 니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기에 내가 알려주러 온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줘.”

“이재수 선배가 너를 만난 걸 알고 왔어. 왜 너를 만났을까 알고 있어. 내가 알고 있다는 게 니가 살고 죽는 기로에 섰다는 거야. 국정원 접수하면 가장 먼저 나를 체포하라고 하든?”

이명호가 약간 넘겨짚어 쑥 들이밀었다. 한참 침묵하던 김석구 입에서 의외의 답이 나왔다.

“아니. 너는 현장에서 죽이라고 하더라.”

“뭐? 으하하하. 내가 총 맞고 죽는 시나리오였어?”

이명호는 오히려 자신에게 깊숙이 되돌아온 강력한 메아리에 순간 휘청였다.

“명호야. 이재수 선배가 너랑 같은 얘기를 했다. 자신의 제안을 들었기 때문에 영광의 길이 아니면 죽음 둘 만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조국을 위한 군인의 정당한 선택이라고 하더라. 이재수 선배는 내가 군인이 되는 순간부터 인연을 맺었지. 나는 선배를 존경하며 따랐고 선배는 나를 끌어줬어. 너를 죽이는 게 군인의 길이라면 당연히 너를 죽일 것이고, 내가 죽는 일이 군인의 본분이라면 죽는 게 두렵지 않아.”

“그래서 니가 이재수에게 어떤 대답을 한 거지?”

“내가 고3 때 서울에서 광주의 비극을 들었어. 다음 해 나는 육사 생도가 됐지. 나는 맹세했어. 절대로 자기 욕심을 위해 동포를 죽이는 군인이 되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런 군인이 있다면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그 놈을 제거하겠다고 맹세했었지.”

“그래서 니가 이재수에게 어떤 답을 한 거냐고.”

이명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김석구를 추궁했다.

“나는 니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너는 또 다른 이재수 아니니? 그렇게 보인다.”

“나도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이재수는 우리 손에 죽을 거야. 니도 이재수 제안을 거절해야 살 수 있어.”

이명호가 힘을 주어 말했다.

“물론 이재수 선배에게 한 내 대답은 거절이었다. 절대 군인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 먼저 날 죽이는 게 좋을 거라구. 선배를 존경한다고. 절대 쿠데타는 안 된다고. 우리끼리 싸움은 안 되니 내가 유서를 쓰고 죽겠노라고 했다.”

“그래서?”

“그랬더니 보안을 지켜달라고 말하더니 가더라. 내가 너에게 말하는 건 너를 도우려는 게 아니다. 착각하지 마. 날 죽이려면 죽여라. 쿠데타는 막아야 하니까 말한 거야. 쿠데타 과정에서 수만 명이 죽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너도 명심해. 날 죽이지 못한다면 니네 회사도 권력을 탐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듣는 귀가 있어. 네 위에 누가 있는지.”

김석구 사단장의 눈빛은 레이저보다 강했다.

보고서를 읽은 김기춘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났다.

“이 새끼들이 무덤을 파는구나.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이다.”

새로운 보고서가 올라왔다.

양평에 주둔해서 양기사라고 불리는 20기계화보병사단은 맹호부대와 쌍벽을 이루는 수도권 방위 기갑부대였다. 별칭은 결전부대. 80년 광주학살에 동원된 20사단이 바로 결전부대이다. 보고서에는 결전부대 사단장 권택수 소장이 이재수와 커넥션을 이루어 세월호 침몰 직후 국정원을 장악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결전부대 주력 K2 흑표 탱크 8대를 동원하고 K21 장갑차 5대로 국정원장을 체포하고 저항 세력은 현장 사살해서 작전개시 4시간 안에 완료한다는 계획이 담겨있다. 이어서 수방사와 특전사가 이재수와 미팅이 확인됐으며, 합의된 내용이 있는지 첩보 수집 후 보고하겠다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김기춘은 이명호에게 전화했다.

“나다. 20사단 권택수에게 작전9호를 걸어. 작전일은 블랙데블에서 결정하고 작전일 하루 전에 보고하고, 작전 완료 즉시 보고해.”

블랙데블 팀은 자료실에서 권택수 파일을 꺼내서 검토하고, 즉각 24시간 권택수와 가족 동향 파악에 들어갔다. 권택수는 평소에 당뇨약을 처방해서 먹고 있었다. 블랙데블은 인슐린 주사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특수 농축 인슐린은 혈당을 급격하게 떨어뜨려 저혈당 쇼크로 사망하게 만든다. 시신을 아무리 살피고 부검해도 외상이 전혀 없고, 혈액 내 약물이 검출되지 않아 심장마비 돌연사로 결론날 수밖에 없다. 권택수는 부대 회식에서 소맥을 두 잔 먹고 귀가한 날 밤에 사망한다.

권택수 장례 직후 이명호는 부하들을 시켜 과천의 수방사령관, 이천의 특전사령관, 일산의 백마부대 9사단장, 안양의 충의부대 군단장을 비밀리에 방문하도록 한다. 방문자가 들고 간 리스트에는 아내와 아들딸의 이름과 휴대폰 전화번호, 학교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재수와 약속을 모두 파기하고, 보안을 유지하며, 이재수의 콜이 있어도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협박한다. 권택수는 우리 팀에서 작전을 걸었고 이재수에게 협력할 경우 당사자와 가족을 몰살하겠다고 경고하고 현금 가득한 가방을 전달한다. 즉각적으로 대상자 전원의 동선 체크와 초음파 반향 도청, 휴대폰 도청, 전화선 도청과 인터넷 감시에 들어간다.

그들은 아무도 이재수에게 정보를 넘기지 않았다. 이재수가 부정기적으로 변심하지 않도록 연락할 때도 약속 이행을 철저히 하겠다고 맹세했다. 이명호 8국장은 인천항 파견요원에게 세월호 선원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회유해서 정보를 얻어 일일동향보고를 올리도록 했다. 세월호 D데이 첩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달했다. 가장 확실한 정보는 세월호 원래 선장 신보식에게서 나왔다. D데이는 4월16일이라는 정보가 국정원과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올라갔다. 출항은 4월15일 밤이다.

김기춘은 세월호 고의 침몰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고가 일어나도록 방치하고 박지만과 군부에서 벌이는 짓을 똑같이 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군부가 더 이상 권력에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하고 완전 물갈이를 하며 군 인사를 자신이 장악하는 전환점으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마치 청의 2대 황제 홍타이치가 명나라 정벌 전에 화근이 될 조선을 먼저 침략한 것과 같았다. 김기춘에게 법조계와 재벌 커넥션이 홍타이치에게 명나라와 같은 존재였다. 

재벌을 등에 업은 법조계는 커져도 너무 커져서 정치권력까지 접수하려고 기고만장이다. 과거에는 없었던 현상이다. 이제는 재벌뿐만 아니라 언론까지 가세하는 상황이라 김기춘은 군부 장악 다음으로 썩은 법조계를 깨부수려고 마음먹었다. 사실 꿀은 법조계로 모여들었다. 변호사와 건설사 기자가 작당을 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벌이는 개판이 됐다. 그들이 정치권력까지 탐하게 되자 김기춘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이명박이 원인이었다.

김기춘은 박근혜 대통령 4월16일 일정을 살폈다. 청와대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기춘은 안봉근을 불렀다.

“4월20일에 잡혀있는 대통령의 주치의 면담을 4월16일 오전으로 바꾸면 어떨까. 내가 말했다고 하고 대통령께 여쭤보게.”

“왜 그러십니까?”

안봉근이 기춘에게 물었다.

“4월20일이 최태민 기일이라 대통령님하고 최순실 이사장하고 내가 산소에 다녀오려고 하니 여쭤보라고 하는 거야.”

안봉근은 박근혜에게 물어보고 OK를 받아서 기춘에게 보고하고, 주치의에게 연락했다. 4월16일 실리프팅 시술이 아침에 있을 예정이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6시간동안 모든 보고를 기춘이 받게 된다.

사천호 2차장은 이명호를 통해 D데이 정보를 알았다. 눈치 빠른 사천호였다. 왜 이명호는 블랙데블의 동원과 군부와 접촉한 공작을 자신에게도 보안을 유지했을까 생각했다. 최초 기무사의 움직임은 국내 사찰 네트워크를 총 동원해서 자신이 정리해서 보고했는데, 결국 기무사의 프로젝트가 현실이 되는 사태에 아연실색했다. 평생 경찰로 살아온 사천호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김기춘의 뒷배를 가진 자신을 노재준 원장이 선선히 받아들였을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사천호는 벌떡 일어났다. 무의식적으로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책상에 부딪혀서 허리에 멍이 들었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사천호는 일단 도망가기로 했다. 자칫하면 휘두른 파리채를 정면으로 맞고 몸통이 으스러지는 똥파리 신세가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포에 떨며 탈출구를 찾던 사천호에게 이명호가 전화했다.

“보스가 2차장 사표를 받고 국정원에서 내보내라고 한다. 짐 싸서 사표 내고 여기를 떠나는 게 좋겠다. 가능한 빨리.”

4월15일 아침에 사천호는 사표를 쓰고 수리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회사를 나왔다. 가족들도 아무데나 국외로 가능한 빨리 나가라고 하고, 자신은 설악산의 소박한 펜션에 들어갔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한 달을 살다가 이명호의 사인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토크를 이어가겠습니다. 세월호의 기획참사를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군부의 기무사와 김기춘의 국정원이 서로 상대방을 죽이는 도구로 이용했다는 말씀입니까?”

이성한이 토끼탈에게 물었다.

“그래요. 서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군부는 박지만의 욕심을 중심으로 뭉쳐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꿈을 꾼 거예요. 마치 자신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억울한 민족이라고 자기기만을 한 거죠. 6.25 한국전쟁에서 북한으로부터 조국을 구했고, 5.16 쿠데타를 통해 최빈국 조국의 경제도약 발판을 마련하고, 80년 이후 다시 북한 남침 우려를 불식하고 경제 재도약을 이룬 주체가 군부라는 거죠. 여전히 대한민국은 남북분단과 북한과 적대적 관계로 한국적 민주주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군부는 순수해서 그 역할을 공명정대하게 맡을 수 있다는 주장이지요. 의학적으로 말하면 망상증 환자예요. 50년 동안 동굴에서 아무런 정보 없이 살다가 밖으로 나와서 어지러운 세상을 자기에게 맡기면 질서를 회복하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과 같아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박지만 육사 동기예요. 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은 박지만 1년 후배이지요. 그들의 언행을 보세요. 역사와 세계에 대한 독해력이 빵점이에요. 자신이 빵점이란 걸 모르기 때문에 망상증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사람 자체는 순진무구일 수 있어요. 하지만 백지의 망상증 환자는 공적인 일을 하면 재앙이지요.”

“그럼 국정원은 어떤 환자입니까?”

이성한이 물었다.

“국정원은 욕망덩어리죠. 세월호 비극 당시에는 2천 억 정도 수준이고, 현재는 1조를 넘는 특수활동비가 국정원의 욕망을 상징해요. 아무도 견제하지 않고 아무도 감시와 비판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을 무서워 벌벌 떠는데, 그런 천국이 어디 있어요. 군부만 꺾어놓으면 영원히 천국에서 꿀만 먹으며 살 수 있기에 국정원을 해체하기 전에는 늘 솔잎혹파리 짓을 할 집단이에요.”

“솔잎혹파리요?”

“네. 솔잎혹파리는 소나무를 말라죽여요. 솔잎혹파리는 자신의 숙주 소나무가 죽어도 옆 소나무로 옮기면 그만이에요. 국정원 해체와 동시에 국정원 고위직의 개인 재산을 조사해서 소명하지 못하는 재산은 몽땅 압수해서 국고 환수해야 돼요. 지금처럼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기 어려우니 22대 국회에서 국정원 고위직 재산환수법을 만들어야 하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문재인이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걸 생각해보세요. 그만큼 국정원은 각종 보험을 많이 들었고, 블랙데블 팀을 여전히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막강해요.”

“문재인 대통령이 나름 많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남북문제도 그렇고 지방자치도 더욱 강화했고 말입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민소득을 상당히 끌어올렸다고 보는데, 동의하지 않으십니까?”

이성한이 문재인을 쉴드쳤다.

“김기춘은 세월호 학살 직후에 노재준을 내쫓고 기소했고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이병기를 원장에 앉혀요. 원래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국정원장에 임명하려고 했던 인물이죠. 김기춘이 청와대를 나올 때 이병기를 후임 비서실장으로 불러올 정도로 김기춘은 이병기를 활용했어요.”

토끼탈은 일부러 문재인을 패싱하는 느낌이다.

“아참, 세월호 학살 직후에 국정원을 접수하려던 이재수의 작전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재수가 뒷통수를 세게 맞은 거죠. 맞은 정도가 아니라 뇌진탕으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약속했던 쿠데타 네트워크 똥별들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권택수 20사단장이 살해된 것도 사태가 한참 지난 후에 검찰 조사를 받으며 알았으니까요. 결국 이재수도 투신자살로 위장해서 죽이잖아요. 어쩌면 이재수는 자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살해될 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재수는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죽음으로써 박지만을 보호했던 거예요. 눈물 나는 우정이에요.”

“그런데 김기춘도 다음해 2015년에 청와대를 나오고 기소되는 굴욕을 당하고 잊히는 존재가 됐지 않았습니까. 바보 박근혜 집권 시기에 김기춘 원톱월드는커녕 말입니다.”

이성한이 물었다.

“새로운 빌런이 잉태되고 태어나서 성장했어요. 잉태 시기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구요. 검사 변호사 판사 법조계 카르텔이 엄청난 자본을 축척했어요. 돈을 많이 벌게 됐다는 말이에요. 모두 부동산 투자 덕입니다. 일부 법조 기자들이 자신의 정보망과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법조 카르텔을 도왔어요.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대장동 개발이지요. 밑천은 제2금융권에서 가져오고 재벌 끌어들여서 투자하게 만들고, 행정에 로비해서 개발 허가 받아 아파트 올려서 분양한 거잖아요.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어요. 널리 알려진 것이 대장동인 것이지 전국 여기저기에 변호사가 전면에서 사업하고 검찰이 뒤 봐주고 제2, 제3 금융권과 돈 좀 있는 토호들이 협작해서 부동산 개발한 곳이 지천이에요. 일부는 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성공했어요. 그러니 눈이 돌아가지요. 세상이 돈짝 만하게 보인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예요.”

“새로운 빌런이라구요?”

이성한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항상 권력의 공백이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요. 박근혜 대통령 자체가 진공 상태예요. 그러니 30년 동안 잠들었던 군부도 나오고 최강 올드 빌런 김기춘도 양지로 올라왔잖아요. 두 악마가 싸워서 빈틈이 보이니까 특수부 검사들 카르텔이 힘을 얻고 날뛰기 시작했어요. 고문으로 간첩 조작하던 공안부는 일이 없어 놀고 있을 때 돈 흐름을 파악하고 이용할 줄 하는 특수부가 때는 이때다 하고 튀어나왔어요. 재벌만 있으면 청와대 없어도 대한민국은 돌아갈 것이고, 총칼을 쓸 수 없는 시절에 ‘법대로 하자’는 외침만 있으니 특수부 검사들이 법조계 카르텔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던 거예요. 그들도 외쳤죠. ‘우리도 세상을 먹을 수 있어’ 이렇게요.”

“그… 그… 래서 윤석열 정부가 탄생한 거란 말씀입니까?”

“왜 그래요. 마치 몰랐던 것처럼 연기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아 뭐 음음. 방송이니까 말입니다.”

“항상 돈이 문제예요. 돈이 쌓이면 초파리가 먼저 생기고 나중에 똥파리도 오고 똥파리를 먹으려고 거미가 몰리고 거미를 먹으려는 두꺼비도 어슬렁거리는 법이에요.”

“그럼 박근혜 탄핵의 빌미가 된 최순실 비선 실세와 삼성의 뇌물을 받고 이재용 오너 승계를 도왔다는 내용은 특수부로 구성된 정치 검찰의 작품이라는 말씀입니까?”

“국정원은 댓글 공작으로 때려잡고, 청와대는 김기춘 내쫓고 탄핵을 추진한 정의로운 이미지로 치장해서 검찰은 권력화 됐어요. 이때부터 군부가 폭망한 상황에서 국정원 구 세력과 정치 검찰 집단이 사생결단 개싸움을 벌이는 거예요. 고려 말 원나라를 등에 업은 권문세족과 정몽주와 정도전의 신진사대부의 싸움과 똑같아요. 정말 똑같다고 보면 돼요.”

“아, 신진사대부가 정몽주파와 정도전파로 갈리고, 정몽주를 죽이고 급진 정도전파가 얼굴 마담으로 내세운 이성계가 그럼 바로…”

“딱 맞아요. 윤석열이죠. 정도전은 얼굴 마담이라고 생각했던 이성계에게 죽잖아요. 하지만 이성계도 지 아들에게 죽지요. 앞으로 윤석열이 어떤 길을 걷다가 누구에게 죽는지 보면 피플 입장에서 안타깝고 비참하지만 보는 재미는 있을 거예요.”

“구독자 여러분. 어떻게 보셨습니까. 여러분 감정과 생각을 댓글에 남겨주십시오.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주 마지막 세타의 경고 시간에 만나 뵙겠습니다. 토끼탈 님 한 주 동안 건강하게 지내시고 다음 주에는 문재인 미스테리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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