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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를 마무리하며

by 조여름


처음 이 매거진을 시작할때가 서른하나였으니까, 나는 벌써 10년째 브런치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때 이 매거진을 시작한건 30대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생각한 것처럼 촘촘한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이런 저런 글을 써두며 30대의 감정들을 새겨놓을 수 있었다. 이 매거진에 담긴 글은 몇개 안되지만 내 전체 브런치의 글들이 모두 30대에 쓴 글들이니 아주 엉망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 사이 법적인 나이의 기준이 바뀌며 요행히 1년을 더 얻었고, 나는 아직까지 삽십대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몇달 후면 냉정하게 40줄에 들어서게 되지만 30대를 마무리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서 다행이다. 지난 10년의 시간동안 나 스스로 발전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는 말 못하겠다. 열정과 총기를 잃었고, 욱하는 성질은 버리게 됐고, 자산은 늘어났지만 건강은 좀 더 안 좋아졌다(당연히!) 어찌저찌 커리어를 쌓았고, 운좋게 결혼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댓가로 호기심이 줄었고, 야망은 사그라 들었고, 세상이 조금 더 재미없어지긴했지만. 그건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며 겪는 현상이니 별다른 감정은 없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 매거진은 문을 닫으려 한다. 딱히 쓴 것도 없이 문을 닫는다는게 굉장히 웃기기는 하지만, 나의 매거진들이 대부분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는 흐지부지 없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이렇게라도 마무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삼십대를 지나오며 내가 느낀 것들, 그리고 나름대로 끌어올린 교훈이라면


1. 다정함이 전부다. 사람은 누구나 강하지 않고, 이런저런 고난 앞에 엄청나게 약해진다. 그럴때 다정함과 친절함이 전부라는걸 알게 된다.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태도, 짜증섞인 성격을 유지하면 결국 옆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새로 사귀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게 좋다.


2. 회사에 나를 갈아넣으면 안된다. 인생을 열심히 살고 싶다는 열정은 좋지만, 그게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가는 정확히 봐야한다. 과로로 수액을 맞아가며 일해야 하는건,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방향이 아니다. 삼십대 초반까지는 조금 무리해가면서까지 일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령이 생기고부터는 적당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연차를 써도 업무를 넘기지 못해 무조건 3~4시간은 집에서 일해야했던 회사, 수액을 맞아가며 일해야 했던 분위기, 일을 떠넘기는데도 넙죽 받았던 지난 일들이 잘못되었음을 이제는 깨닫는다.


3. 많은게 운으로 이루어지는건 맞지만, 그 운을 잡기 위해 내가 기본을 닦아놓지 않으면 안된다. 기본기가 없으면 목표를 위해 더더 확률이 낮고 엄청난 운을 기대해야 하는데, 그게 쉽게 올리 없고 어쩌다 이룬다 해도 유지할 수 없다. 내가 이룬 것들의 대부분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쌓아놓은 곳에서 운을 만나 성과를 냈다.


4. 건강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없이 말하면 입만 아프다. 이건 언제나, 어느 나이때나 똑같다. 다만 완벽하게 건강해지는 일같은건 없으니 너무 강박을 가지진 말아야 한다.


5. 외국어는 여전히 중요하고, 외국어 공부를 안해둔것도 여전히 후회한다.


6. 뒷담화는 달콤하지만 하지 않는게 맞다. 나도 이걸 알면서도 잘 못하는 편인데, 마흔에는 딱 끊고 싶다. 뒷담화를 열심히하는 무리와도 어울리지 않는게 좋다. 가십만 찾아다니는 무리는 결국은 내게 마이너스가 된다.


7. 그 조직이 영 아닌것 같고 스트레스가 극심하다면 이직하는게 맞다. 이직을 무서워 하면 안된다. 2년 정도 일했다면 이직해도 괜찮다.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는건 무조건 옳다. 나는 이직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결론적으로 지금 다니는 회사가 지금껏 다녔던 그 어떤 회사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8. 미래에 중독됬다는 표현을 언젠가 본적이 있는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굉장히 와닿는 표현이었다. 삼십대의 나는 늘 내일의 나를 생각하며 살았다. 자산이 부족하고 불안하니 그랬던 건 맞지만, 그게 조금 과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은 그럴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마흔이 가까워지니 그 시간들이 꽤 후회된다. 아마 뭘 해도 후회했겠지만 계속 내일만 생각하며 산건 특히 더 후회가 된다.


9.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게 좋다. 이 세상에 좋지 않은것도 있지만 스스로에게도 클린하지 못하게 되니까. 다행히 크리티컬한 도덕적 해이나 잘못은 없었다. 그런면에서 뭐랄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마음이 쾌청하다. 굳이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덕지덕지 만들 필요는 없어.


10. 사랑은 많이 하는게 좋은것 같다. 물론,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무래도 결혼을 해버리거나 나이가 들면 더이상 하기는 어려워지니까. 그때가 지나면 할 수 없는 것들은 그때 바짝 해두는게 좋은것 같다.



이 외에도 다른게 많겠지만 다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것들은 마흔으로 넘기면 그만이야. 내년을 시작하며 마흔 보고서를 하나 만들어야지. 이번에는 그래도 꽤 오랫동안 열심히 써봐야겠다. 서른 보고서는 이걸로 마친다. 다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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