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배'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 곳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수평선 너머로 끝이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내가 서 있는 곳이 처음으로 이질감있게 느껴졌다. 육지에서는 아무리 지역을 옮겨다녀도 이런 기분은 느끼지 못했건만, 왜일까? 내가 뿌리내렸던 땅들로부터 결국 이어지지 못하는 섬이어서 일까.
육지에서는 어딜가든 내 삶의 흔적과 기억을 끌고다녔다. 딱딱한 갑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갑각류처럼, 그것을 탈피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가끔 찾아오는 우울은 그 껍질이 가진 독이었을까? 답답했다. 그 답답함이 이따금씩 나를 우울로 이끌었고, 그럴때마다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지한건 아니었지만 모든걸 리셋하고 싶은 그런 기분. 그런데 제주에 오고부터는 그런 생각이 줄었다. 나는 말랑말랑한 채로 살고 있었다. 육지에 껍질을, 나를 그대로 두고 왔다. 어쩌면 본체일지도 모를 내 경험과 기억, 상처같은 해묵은 껍질은 바다를 건너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육지에 남아 있는 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하리만큼 낯설었다.
처음에는 '육지에 두고 온 나'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그 안에 무엇인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런것은 없었고, 껍질은 껍질일 뿐이었다. 다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지만 나를 감싸고 있던 껍질 하나가 벗겨졌다는 것. 그래서 조금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너절하고 답답했던 내 자신에게서 리프레시 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말랑말랑한 겉을 가진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이 모든건 새로운 공간과 환경이 주는 드라마틱한 효과가 아니었을까?
육지에는 어딜가든 비슷한 산과 비슷한 풍경,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제주는 아예 다른 기분을 선물했다. 처음에는 외국에 온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예전에 강연을 들을때, 어떤 철학자가 그런말을 했었다. 여행을 할때 자신을 업고 가면 안된다고. 그때는 그 말을 흘려 들었지만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너절한 내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기회. 그것이 여행인 것이다. 나의 유배도 여행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면 낯설지만 좋은 기회가 될 터였다. 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 해외로 한달살기를 떠나는구나.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줘." 유치하고 뻔한 말을 내 자신에게 하면서도 스스로를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내 의지로 되는 것 못지않게 우연한 흐름으로 되는 것이 많으니까. 원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여기 와서는 확실히 힘을 빼게 됐다. 딱딱한 껍질을 잃어버린 내게 예전과 같은 전투력은 부담스러워. 신기하다. 내가 서 있는, 디디고 있는 땅의 환경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내 주변을 둘러싼 공기와 기본적인 기분이 바뀌는 것이 신기하다. 유배를 안 왔더라면 평생 느끼지 못했을 기분. 아직도 새로운걸 느끼는 내 자신이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