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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May 11. 2024

잘하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그저 열심히'가 답이 아니었던걸까


어느날 갑자기 번아웃이 왔다. 지난해 말,  우리팀 사람들은 번아웃이 올것 같으니 이렇게 저렇게 업무를 조정해 달라고 부서장에게 요구했었다.  사실, 받아들여져도 업무량에는 큰 변화가 없는 소심한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어쩌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몸은 더이상 버텨내지 못했다. 기관지, 코, 후두, 귀 등 얼굴에 있는 모든 기관이 염증으로 뒤덮혔고 아무리 쎈 주사와 수액을 맞아도 쉽사리 낫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힘든 일정에도 수액을 맞아가며 꾸역꾸역 일할때 미리 알아차려야 했을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휴직을 할 수도, 업무를 조정할 수도 없었다. 남은 선택지는, 결국 하나 뿐이었다. 


퇴사라는 두 단어가 입밖으로 나오자, 이미 한번 나를 잡았던 팀장님은 체념한듯 차분하게 절차를 진행했다. 건강이 계속 좋지 않으니, 나를 더 잡을 수도 없는 상황.  이상한 일이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적어도 직장생활에서는 항상 자신만만했었는데... 다른것도 아니고 건강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다니. 살면서 처음으로 겪는 종류의 좌절이었다. 


지난 한해, 시간외 근무가 잦은 촬영팀을 제외하고는 부서에서 가장 많은 초과시간을 기록했다는게 내 나름의 자부심이었다. '내가 회사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했구나.'라며 스스로 뿌듯해한 내가 지금은 고개를 갸웃댄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잘한다는 말은 아니다. 딸 둘을 키우면서도 나보다 더 힘든 일을 해내는 차석님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나는 그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나'에 취해 있었고, 열심히만 하면 모든게 다 해결되리라는 '성실근면만능설'을 신봉했다. 상사가 주는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다는 양 '넵'하고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열렬한 내 신념이 무너지는건 참으로 혼란스럽고 뼈아픈 일이다. 



퇴사 후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써오던 웹소설을 본격적으로 쓰는 것. 이미 웹소설 작가로 데뷔했었고, 어릴때부터 전업작가를 언젠가는 해보리라 결심했기에 그 기회가 빨리 온 것 뿐이었다. 하지만 '열심히'에게 배신 당한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쉬어야겠다, 쉬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시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계획없이 무질서하게 쉬어봤자 결국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을 것 같아 평소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나가기로 한다. 나의 휴식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쉬기위한 시간이 문란한 식생활과 쇼츠같은 도파민에 중독된 시간들로 채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과정에서 일과 일상에 대한 밸런스, '워라밸'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정립해 나간다면 더 좋겠다. 뭐, 안돼도 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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