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럽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해주었다.
4월 30일 그날은 특별했다. 그래서 쓰는 럽덥 100일동안 특별판! 시작합니다. 오늘은 지연이와 주인이가 놀러오기로 했다. 지연이랑은 21살에 처음 알게 되었고, 주인이는 22살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자그마치 벌써 9년과 8년째 아는 중이네. 소오름... 하뉴 클라스란...(아 이 친구들은 하뉴라는 봉사동아리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일산에서, 당산에서 반대쪽에 있는 중랑구까지 열심히 지하철을 타고 와주었다. 진짜 감사감사 무한감사!
인천에 잠시 자취했을 때, 꽃을 사다가 꽂아둔 적이 있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 며칠간 행복을 선물받은 것만 같았었다. 하지만 꽃값이 너무나 비쌌고, 그렇게 꽃을 더이상 사지 않았었다. 그리고 개업했다고 일산에 꽃시장에서 정말 한짐 가득 사온 지연이. 우리는 커다란 책상에 꽃을 펼쳐놓았고, 다듬기 시작했다. 꽃은 싱싱하고, 또 예뻤다. 형형색색의 꽃이 다듬어지고, 럽덥이 갑자기 꽃으로, 사랑으로 물들었다.
도대체 몇송이죠? 이 많은걸 일산부터 들고 오셨다니요... 정말 이날 이후에 거의 2주간은 꽃의 행복으로 지냈다. 항상 럽덥에 들어오면 행복해지고, 몰랑몰랑해졌다. 지연이 덕분에 이날 이후로 꽃을 2번 더 구입했었고, 제일 예뻤던 꽃이 그때였던 것 같다. 나의 공간에 첫번째 꽃이어서 그런가?
이제 럽덥에서 사람들을 많이 초대를 해놔서 코스트코에서 장을 봐왔다. 옷이 많아서 기름을 사용하기 어려워서, 최대한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사왔다. 나름 친구들을 초대한 날 중에서 메뉴판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봤고, 저 메뉴판은 거짓이다. (1) 명란 아도카보 비빔밥 --> 명란 계란 비빔밥 (4) 비빔냉면 삭제. 아도카보가 후숙을 해야한다는 것을 모르고서 익지도 않은 생을 사온 것이다. 미안 얘들아.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어서 고맙다 얘들아.
럽덥 밖으로 나갔다. 배불러서 돌아다니다가 럽덥 앞에 공간에 거슬리는 포스터를 떼고 있다가, 결국 애들에게 일을 시키고야 말았다. 미안 친구들... 그래도 친구들 덕분에 여기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고마운 아이들. 날도 선선해서 폴딩창문을 활짝 열어두기로 했다. 아직 제자리에 가지 못한 간판이지만 럽덥 앞의 공간에 툭 하고 무심히 놓아보니 예뻤다. 또 언제 이렇게 갖고 놀아보겠냐며. 열심히 사진도 찍었다. 날도 좋았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좋았고, 행복했던 하루.
이날이 기점이었던 것 같다. 본격으로 개업식을 하거나, 뭘 했던게 없었어서 오픈일이라고 날짜만 정해놨었지. 어쩌면 이날로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아 정말 공간을 오픈하기는 했구나 내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날. 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 글을 보고있을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 럽덥의 매력을 많이 안 날이었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행복하다-라고 느낀 날이었다. 마음속의 오픈일이라하면 이날이 아니었을까. 주인이가 사온 케이크를 맛있게 먹었다. 주황색 장미랑 너무 어울리는 그런 장면.
얘네들 뭐하고 있는지 귀엽게 쪼그리고 앉아서 둘이서 꿍냥꽁냥 하고 있길래 다가갔다. 얼마전 창신동에 사왔던 알파벳을 가지고 놀고있었다. 놀고있는 장면부터 다가가서 어떤 걸 찍었는지까지가 귀염포인트. 약간 꺾여있었던 꽃잎을 떼어서 함께 놓고 사진 찍으니, 이렇게 예쁠 수가. (꽃아 미안해...)
거울샷을 잘 찍지 못하는데, 꽃이 있으니까 거울샷은 행복이었다. 꽃이 있으니까, 또 이전에 지연이가 선물해주었던 여인초와 함께하니까 예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흐드러지게 핀 꽃 사이에 자리잡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얘들아 멀리에서 놀러와주어서 진짜 고마워. 또 오쟈!!!!
4월 13일에 들어와서부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 시간이 우릴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것을 다시 느꼈고, 그래도 또 뭘 안하지는 않았구나에 안심을 했다. 부지런히 놀았고, 부지런히 일했다. 생각해보면 브런치에는 놀았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기는 한데, 그 사이에 동네에서 조그맣게 일들어오는 것들을 하면서 가게 오픈을 준비했다. 엄마 아빠가 만들어주시는 옷들을 잘 정리하고, 가게를 꾸미는 것에도 열중했다. 내가 원하는 공간은 어떤 곳일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하나씩 그렇게 정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사실 4월 26일쯤 럽덥의 소개글을 선물받았다. 보자마자, 마자 이거야. 라는 생각이 절로들게끔 써주었다. 괜히 그 글을 보고서 설레기 시작했고, 행복해졌다. 정체성이 모호할 수 있다. 이곳이 뭐하는 곳이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브랜딩이 중요한 시대여서 하나만 깊게 파도 모자랄 판국에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포괄적으로,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게끔 만들어 놓다니 나도 참. 근데 내 인생이 그렇게 살아왔고, 여지껏 그렇게 다음 일을 만들었었다. 천천히 정의를 내려도 되고, 결국 정의가 내려지지 않으면 그냥 그런 존재로 내비둬야지.라는 생각. 딱 하나 분명한 것은 나와 이 공간에 온 사람들이 두근두근 거릴만한 것들을 한다. 딱 이것은 지킬 것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시작한 것이고, 이 공간에 온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