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작은 기록들을 해 나가자.
태릉고등학교 친구들과 했던 멀티페르소나 연구소 프로그램에서 만들었던 전시가 어느덧 끝나간다. 내일이면 이 길고도 짧았던 일주일이 지나간다. 50명의 숫자가 정말 왔다가 갈까? 싶었지만 현실이 되었고, 몇백명, 몇천명이 왔다간 전시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괜찮았다. 그들 중에도 우연히 들른 사람도 있었고, 한번 이상 이 공간에 찾아와서 전시를 보고 간 사람도 있었다. 진심을 보인 사람들이면 되었고, 그런 사람이 한명만이어도 아이들에게 분명 좋은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했다.
<나, 너 그리고 우리: 젊은 날의 추억> 전시는 지인이의 불행에 대한 이야기, 병우의 자존감, 혜인이의 시선, 예찬의 물건, 우현의 나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하림이의 포스터와 굿즈 디자인과 지윤의 떡메모지와 손길이 닿아있는 곳들. 일곱명의 친구들이 자신을 보여주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을 터. 멀티페르소나 연구소 프로그램에서 일곱번 동안 만나면서 함께 서로를 알게 되고, 이들과 함께라면 전시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믿음이 생겨갔다. 그래서 시작했던 이 전시. 중간에 정말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해냈고, 나도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중학교 때 좋아했던 선생님이 공간에 전시를 보러 오셨다. 중학교 때 선생님과 이런 사이로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감격스러운 일일까. 선생님은 진심으로 전시를 구경해주셨고, 나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주셨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 아닐까. 선생님을 포함해서 동네에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멋있다 칭찬을 받고 자라면, 나는 그것을 내리사랑으로 아이들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내내 하곤 한다.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완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튼 선생님 덕분에 오늘 하루가 더욱 충만해졌다.
내일은 아침부터 예찬이랑 버킷리스트 모임을 진행한다. 예찬이랑 전시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는데, 참 잘 되었으면 좋겠다. 예찬스럽게.
마을학교 나를 만드는 글쓰기도 벌써 아홉번째 날이었다. 오늘은 윤지와 규현이만 왔다. 모든 친구들의 글을 한권에 모아서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것보다 한명마다의 특색있는 내용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조금 무리이겠지만, 그래도 중학교 1학년 시험이 연도이니까 이 기간에 아이들이 뭔가 하나를 만들 수 있게끔 해주고 싶었다.
규현이는 인생이 문제같다고 했다. 또 인생은 한살이라 했다. 우리는 태어나면 죽는다. 규현의 글에 자주 등장하는 무서움이 있어서 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이 무섭다고 하는데, 슬펐다. 규현이가 기대가 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서. 행복한 일이 많을 것인데, 어둠으로만 가는 인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썼다. 어려운 주제를 택해서 글을 풀어가는게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현이와 잘 계속 이어나가며 글을 쓰고 싶다.
줍줍기록수집가 수업에서 만난 윤지는 오늘 기타를 들고 왔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럽덥 공간에서 윤지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오늘 노래를 한곡 들려주었다. 그의 노래를 들어보고 공연을 제안하지 않았지만, 그냥 노래 취향이 비슷했던 그였기에 뭐든 좋았다. 윤지랑 이야기를 나누며, 책과 공연을 엮어보기로 했다. 공연 비용은 창작소에서 마련할 것이고, 관람객들에게는 후원 비용을 받아서 지역 사회에 윤지와 럽덥의 이름으로 후원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지역에서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윤지는 잔나비를 좋아한다. 이소라의 노래도 좋아한다. 취향이 비슷한 누군가를 만나 행복했다. 윤지가 공연 때 부를 노래를 하나씩 보며 윤지와 함께 만들 책의 목차를 잡아갔다. 윤지는 총 여섯권의 책을 만든다. 일정이 많이 빡세지만, 할 수 있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의지도 커져갔다. 멋지게 만들 수 있도록. 나도 함께 불태워야지.
윤지가 소개해준 분식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코로나 때문에 함께 밥을 먹지 못했던 여느 날의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 해서, 행복했다. 양이 많은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은 학교 앞 분식집과 같은 맛의 떡볶이였다. 꼬마김밥도, 어묵도 모두 맛있었다. 저녁까지 이것으로 해결했으니. '햇살머믄 꼬마김밥'은 나중에도 시켜먹어야지.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꽤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전시 타임이 다가왔다. 뒷정리를 하고서, 윤지에게 조심히 노래를 청했다.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이곳에 기타를 들고 왔으니 그래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윤지는 부끄럽다며, 떨린다며 걱정을 했지만 손은 기타로 향했고 손을 몇번 풀고, 또 부끄러워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 처음이었다. 윤지의 음악 사랑을 그동안 글로, 노래로 만났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음악으로 만나는 것은. 나의 기쁨 나의 노래, 처음 느낌 그래도, TOMBOY까지 윤지의 노래를 하나하나 들었다. 그의 책과 공연이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허나, 부담스럽지 않게, 오늘 카톡으로 이야기 나눈 것처럼 즐겁게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윤지가 추천해준 선생님의 노래를 오늘 꽤나 들었다.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뮤지션은 또 무엇인가. 참 이 세상에 멋진 사람이 많다.
윤지가 가고서는 안쪽에서 편집 작업을 했다. 이제 거의 1년 째 작업하고 있는 교재 작업. 교수님도 많이 기다리실텐데 서둘러서 마무리 해야지 하며. 중국어를 몰라서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편집작업이 너무 느리다. 그래도 정확하게 한번에 할 때 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는 중. 교재 작업하며 읽을 수 있는 한글을 읽어가며 교수님의 시간과 노하우들이 모두 담겨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멋있다.
오랜만에 럽덥에 종일 앉아 사람을 맞이했다. 아침엔 마을학교를, 전시에 오는 관람객들을. 그리고 오랜만에 기록을 남겼다. 전시를 열심히 준비했던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내일이면 전시도 마지막날이다. 과정이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그 과정을 잘 남겨놓았는가. 너무 급하게만 처리하듯이 하지는 않았는가. 완벽한 기록은 없으니까, 조금의 생각이라도 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을 잘 기록해두자. 기록이 겹겹이 쌓인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을 그렇게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