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예찬이가 버킷리스트 모임을 진행했다. 이른 아침부터 럽덥에 와서 모임을 위한 것들을 준비했다. 예찬이도 열심히 준비해서 온 모양이었다. 많이 긴장했고, 떨려하는 것 같아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내 모습이 보여 나까지 떨렸다. 나만 믿어 했는데, 나도 떨린다니. 버킷리스트 모임은 열일곱살의 예찬이가 진행한 모임으로, 중학교 1학년 예나, 윤지. 20대 1명, 30대인 나까지 총 다섯명이서 함께했다.
손수만든 질문카드에 답을 해가며 나를 소개했다. 매일 운영해보기만 해봤지, 누군가 질문을 하고 모임원으로 참여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괜히 설렜다. 천천히 카드에 적힌 질문을 바라보고 생각을 하는 모습,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때 쯤 다음 코너로 넘어갔다.
오랜만에 버킷리스트를 적어봤다. 몇개의 칸이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다 채웠다. 오랜만에 적은 버킷리스트는 당장 내년에 해볼 것들을 표시해보니 더 실감이 났다. 새로 버킷리스트가 생기다니...! 차마 못채운 빈칸은 다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를 들으며 채워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우리는 또다른 모임을 기약하며 안녕했다.
오후에는 마지막 날 전시를 보러 선생님과 아이들이 럽덥에 왔다. 안쪽에서 교재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마지막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선생님도 휴일까지 시간을 할애하여 또 공간에 방문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기도 했다.
2시에서 4시에는 마을학교 마지막 수업을 했다. 다음주 토요일에 진행했어야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바꾸게 되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공간에 와주었고, 우리는 마지막 수업을 했다. 사실은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 수업. 이제 시작이다.
윤지와 예나, 규현이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 규연이까지 책작업을 위해 글을 열심히 썼다. 윤지는 12월 25일 공연에서 부를 노래들 마다 한권의 책자로 만들기로 했다. 예나는 화장에 대하여, 규현이는 인생에 대하여, 규연이는 살아야하는 이유에 대하여. 정말 각자마다 특색있는 것들을 주제로 잡아서 만들어간다. 달리자. 달려야 한다. 책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좀만 더 힘내어보자. 화이팅!
네시가 되었을 무렵 우현이가 왔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우현이는 마지막 전시를 위해 공간에 방문하였다. 제일 이 공간에 많이 왔던 우현이. 이 친구가 이곳에서 많은 것을 느꼈기를. 친구에게 전화해서 럽덥으로 부르는 모습, 자기 전시를 설명하는 모습이 참 예뻤다. 오늘 이 전시와 마지막 날이라니까 나도 괜히 먹먹해져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정말 우리 모두 고생했는데. 작은 울림이라도 있었기를.
밤에 일정이 있어서 마지막 전시장을 한솔님이 지켜주기로 했다. 하지만 예약자가 없어 아마 공간을 혼자 있어야 했고, 전시지킴이로 온 한솔님에게도 결국 글을 부탁했다. 남기님, 한솔님 모두 감사하게도 흔쾌히 글을 써주셨다. 정말 간단한 후기여도 충분했는데, 감동의 글을 선물해주었다. 정말 운다 울어...
https://m.blog.naver.com/ricky020/22293385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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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hoiyiseul.notion.site/bd78ca42f5e24f969895db79d3ff84cc
한솔님에게 전시장을 맡긴채 나는 오늘의 마지막 일정을 위하여 럽덥을 나섰다. 지영이랑 상봉역에서 만나서 써브웨이 가서 간단하지만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저녁도 사서 연습실로 이동했다. 지하실의 습한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일곱시에서 열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을 우리는 그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과정드라마 워크숍! 처음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준원님이 프로그램을 구성해왔다. 연극은 너무나 신기한 존재.
걱정되는 마음을 가지고 뭐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우리는 한 노래의 가사로부터 출발해서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공주, 신. 우리의 주인공은 신공주. 열네살의 친구로 나이를 설정했다. 어쩌다보니 마을교사 학습동아리의 본분을 다하여 청소년에 관련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과정 내내 준원님은 우리에게 상황을 주었고, 우리는 그 상황에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을 던지고 역할에 임했다. 사실 이런게 어색한 사람이라 중간중간 어색한게 티가 났지만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이입이 되어 버린 적도 꽤나 있었다. 신공주 잊지 못할 거야.
마지막, 공주가 다른 aaa33에게 보내는 편지를 끝으로. 또 그 편지가 또 다른 편지가 되는 것을 정말 끝으로 프로그램은 끝이 났다. 신기했다. 재밌었다. 준원님이 이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년들도, 어른들도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늘 하루도 정말 길었다. 밤에 와서 한솔님과 남기님의 후기를 받았던 것이었는데, 그 하루를 온전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사람의 힘에 대해 느꼈던 날이었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을 누군가와 함께 했을 때,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나도 남기님과 한솔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선물해야지.
오늘도 고생 많았다. 이슬!
나는 사업을 하고 있을까? 아니 어떤 누군가가 1인 사업장은 대표 노동자라는 표현을 했다. 그 이후로 그 말이 떠나가질 않는다. 나는 대표 노동자이다. 오늘은 럽덥을 한번도 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일을 하기 싫은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했다. 할일이 쌓여있어서 그 매듭을 어딘가에서부터 풀어야 하는데, 잘 풀리지 않는다. 너무 꽝꽝 묶여있다. 할일은 너무 많은데, 계속 일은 또 만들어가고 있고, 또 감당하는 것은 대표 노동자인 나 혼자일 뿐인데 바보같이 또 일을 받아낸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인가. 아니겠지. 내 몸을 혹사시켜가며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없을텐데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니 소영이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믿고보는 소영이의 그림들. 일러스트 시안이 와 있었다. 꽤나 기분좋은 마음으로 담당 선생님한테 카톡을 보냈다. 분명 아침에는 지도 모양이 예뻤는데 계속 볼수록 마을이 더 눈에 들어온다. 과연 어떤 것이 결정이 될까 궁금하네...! 어제 전시가 끝났고, 오늘은 럽덥에 가지 않기로 했다. 치울 것이 쌓여있는데, 할일도 쌓여있는 바람에 깔끔한 공간에 카페로 가기로 했다. 머리가 복잡할수록 공간도 복잡하면 더 정신이 없다. 그러지 않아야 하는데 물건이 많은 나는 어려운 일이다.
'치워야지, 치워야지.'
카페에 가서 귀가 아플 정도로 통화를 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일을 대부분 했다. 일을 받고 싶지만 과부하 걸릴 것 같아 친구에게 넘길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해서 소통을 하고, 처음 사업자를 만든 선생님의 세금 신고 방법을 위해 통화를 하고. 그렇게 통화의 연속이었다. 강의도 준비해야 하는데,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점점 더 지쳐갔다. 거기에다가 카페인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히 또 연하게 먹는다며 먹은 커피 때문인가 귀도, 머리도 멍해져간다.
2시 40분이 되었고, 간식을 사러 근처 빵집에 들렀다. 택시를 타고 강의를 다녀오기로 했다. 7월에 시작한 디지털리터러시 강의는 모든 센터 중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하필 공휴일이 가득했던 월요일에 진행했던 터라 이제서야 끝났다. 그만큼 아이들이랑 정이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멘토샘들도, 아홉명의 아이들까지도. 마지막 박람회 수업을 마치고서 우리는 인사를 했다. 마지막까지 정신없이 수업을 마쳤던 것 같다.
이 수업은 참 재미있었다. 환경과 디지털리터러시를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수업이었다. 수업안을 만드는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강의를 하는 강사로서는 정말 12주차 내내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고, 즐거워하는 것이 보일 때면 괜히 행복했다. 나조차 새로운 서비스들을 많이 알게되었으니, 얻어가는 수업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멘토선생님들이 항상 함께했던 수업이라서, 나 또한 많이 고마웠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감동을 주셨다. 어디서든지 정말 뭐든 다 잘 할 것 같은 선생님들이었다. 이제 보기 어렵겠지만, 항상 응원하는 마음으로!
수업이 끝나고 택시를 탔다. 도저히 버스를 탈 힘이 없었다. 택시에서 기절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쯤 일어났다. 다행히 체력이 조금 회복되어서 씻고 책상 앞에 앉았다. 지금 해야할 것들을 메모해본다. 그냥 적기엔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폼텍 스티커를 노트에 크게 붙여가며 적어봤다. 뭐가 많다...
하나씩 끝이 나가는 것도, 새로 시작하고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 스티커로 붙여놓고 커다랗게 보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눈에 조금은 들어왔다. 천천히 하나씩 매듭을 풀어가자고. 대표노동자의 삶이 신기하다. 정말 적절한 단어를 찾았다. 대표노동자라니...! 대표이지만 노동자는 나밖에 없으니. 다른 대표 노동자와 협업을 할 뿐이다. 그래도 다른 대표 노동자들이 주위에 하나 둘씩 생겨가고 있으니 그들과 같이 잘 살아 남아야지.
내일도 하루는 시작이 될 것이다. 이번주에 대구를 가야하는데, 무사히 잘 쉬다가 놀다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제발 잘 쉬고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하여 대표노동자여 일하자.
어제와 오늘 두편의 일기를 쓴 나 자신도 칭찬 가득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