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도모 Dec 13. 2021

정철 <카피책>

저자: 정철 / 출판: 허밍버드 / 발매: 2016.01.25

기획자 다음은 카피라이터를 들여다본다. 

하루하루 성실함으로 작성한 일기를 모아 발행한 것 같은 글이다. 오랫동안 카피를 써오신 분이라, 보여주거나 설득하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그저 글을 글로 남겨주신 느낌이다. 자시느이 걸음을 남길 수 있다는 용기가 부럽다. 좋은 글들이 많아서 저자의 가르침대로 베껴 써보기도 했다. 훔치기까지는 못했으니 점수가 높은 학생은 아닌가보다. 언젠가 내가 완전히 훔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가 하는 일 역시 누군가에게는 컨텐츠를 기획해주고, 누군가에게는 카피를 건네주고, 누군가에게는 돈을 맞춰주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카피를 작성하는 법들이 익숙했고, 이렇게 정리된 책을 보는 건 익숙함에 질서를 더하는 일 같았다. 


1조 1항 구체성 / 낯설게 하기(너나 잘 하세요) / 읽는 사람이 쉽게(잘게 썰어라) / 카피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 리듬 / 단정의 힘 / 광고는 제품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 발에게 시키십시오 / 협동-서로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침범하는 일 등등


책을 읽으면서도 손으로 옮겨적은 글들이 수두룩하다. 특히나 '광고는 제품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라는 말에는 공감을 많이 했다. 광고를 만들다보면 꿈을 꾸는 듯한 아이디어들이 넘칠 때가 있다. 사실 가장 행복한 때다. 상상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시간. 광고를 제작한다는 건 더하기보다는 빼기가 많은 작업인데, 그 전에 가득가득 채우는 시간은 즐겁다. 다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누군가에게는(특히 나 같이 보고를 업으로 하는) 빼야 할 것들이 먼저 보이다보면, 결국은 광고가 제품을 향해 있지 않다는 걸 소위 '윗 분'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사실 그들은 계속해서 제품만 얘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윗 분'들에게 꿈꾸지 않는다고 뭐라 하기에는 그들의 매출에 대한 꿈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으니 그 부분은 패스. 여하튼 그래서 결론은 늘 제품을 향해 있어야 했다.


공감가는 구절 덕에 옆길로 살짝 새긴 했지만, 카피책은 카피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편하게 읽어서는 안되는 글이다. 그리고 카피가 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면 좀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 회사 소위 '윗 분'에게 사주고 싶지만, 그의 연봉이 더 높을 것이기에. 카피를 먼저 작성하는 이유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성찰에 대해 조금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저자는 아마 반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누구나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제품과 늘 붙어 있는 '윗 분' 역시 좋은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들이 가득했던 책. 성공한 카피보다는 사라지고 어찌보면 실패했을 카피들이 가득한 책. 그래도 좀 이 책을 나눠 봤으면 좋겠다. 


추) 

책을 읽고 나서 개인 명함을 상징적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명함 하나에도 이름 하나를 넣는데에도 '정철' 이 아닌 '정철입니다' 로 살짝 낯설게 비틀어버리는 그 몰입을 나도 좀 가지고 싶어졌다. 곧 다가올 송년회에 명함을 주고 싶어져서 만들었는데 날짜보다는 배송이 좀 더 뒤일 것 같다. 좀 아쉽지만, 해봤다는 것도 중요한 거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김도영 <기획자의 독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