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어릴 적 얘기다. 내 아이를 생각하면 한참은 먼 얘기다. 아이의 상장이 집의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을 TV에서 봤다. 아빠가 된 다음, 아직 엄마 안에 있는 태아임에도 불구하고 TV에서 아이가 나오는 집이면 잠시 눈을 고정한다. 한 아이의 상장이 그렇게 벽면 한 쪽을 채우고 있었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적 작디 작은 방. 안방이자 거실이었던 그 방의 한쪽 벽면에는 내 상장이 줄지어 걸려있었다. 상을 받아오는 날은 신나서 만원이고 삼만원이고 주셨던 기억이 난다. 작은 돈이 아니었는데, 나중에는 흔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고마움을 잘 몰랐다. 그만큼 상을 많이 탔다.
그랬다. TV를 보고는 그 시절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목수라 자신의 직업을 알려주었다. 아마도 막노동꾼이었다. 내 눈에 그의 망치질과 나무를 다루는 모습은 우아했다. 예술작품을 하는 목수가 아니라 집을 지을 때 수반되는 온갖 일을 하시는 사람이었지만 내 눈에는 기술자였다. 긴 나무를 뒤쪽에 덧대서 상장이 잘 보이도록 기울여 붙이셨다. 그야말로 제대로였다. 두 줄이고 세 줄이고 아버지는 걸어주셨다.
(오만하게도)커오면서 당시 부모한테는 그게 자긍심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아이가 어느 날 누군가와의 경쟁이건, 자신과의 싸움이건, 사회 질서를 잘 지킨 것이건 상장을 타온다면 그걸 걸고 그렇게 아이의 자긍심을 키울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어떻게 그 기회를 놓칠 수 있을까. 걸어주고 자랑하면서 아이의 자긍심을 키워주고 싶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걸어준 내 상장들은 아버지의 자긍심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내 안에 쌓인 자긍심들이 다 거기서 왔던 것었다. 아버지는 우아한 망치질로 지금의 내 자긍심을 그렇게 미리 걸어주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