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AST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루스트 Mar 03. 2021

에필로그 | 우리에게도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지나고 보니 꼭 알맞은 때였다.

TASTE | 프루스트의 입맛 저장소
Issue No. 1  Green



지난 글 ‘만남 03. 2NDIA 두번째인도’의 말미에 2세를 기다리는 마음을 기록했었다.


"싱그럽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초록을 입은 이 이불이 미래의 내 꼬마도 좋아할 이불이길 바라본다. 더불어 꼬마가 안전히 본인에게 꼭 알맞은 때에 찾아오길. 너무 애타게 기다리진 않을게. 너의 속도에 맞추어 오렴."


꼬마를 바라는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랗지만, 내가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 나는 그 마음을 할 수 있는 한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자꾸 부풀어지는 마음을 진공팩에 넣어 공기를 빼내고 압축해 네 문장으로 눌러 담았다. 일련의 과정이 다짐을 도와준 걸까. 현재 상황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태도와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고 나니, 놀랍게도 그 문장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본인에게 꼭 알맞은 때와 속도에 맞추어 오길 바라며 애타게 기다리지 않겠노라고. 3년 동안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 가만히 두면 부유하는 먼지도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듯 착지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도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2021년 4월에 태어날 꼬마가 봄의 좋은 기운을 가득 담길 바라는 마음에 봄봄이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모두가 간절히 기다렸는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거듭 진한 축하를 받았다. 나의 기쁨을 축하하는 지인의 눈물이 이토록 감사하고 벅찬 기분인지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기쁨은 정말 나누면 배가 되는 건가 보다. 우리 만큼의 기쁨을 함께해줄 가족과 지인이 있음에 감사했다. 더불어 우리 인간에게는 감정을 함께 나눌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람은 시시각각 입장이 달라진다.


나 역시 언제 끝이 있을까 싶었던 난임의 입장에서 임산부로 입장이 바뀌었다. 난임은 난임대로, 임산부는 임산부대로 각자의 입장마다 새로운 고민과 고충이 시작된다. 그저 현재 나의 입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주어지는 이벤트들을 하나씩 내 힘과 깜냥껏 해결하면 된다. 노력은 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불필요한 감정의 늪에 빠지는 대신 즐거운 일을 하면 된다. 이러든 저러든 시간은 흐르고 결과는 나오게 되어있으니까. 인생이 그런 것인지 항상 이런 건 돌이켜 보아야 느낄 수 있다. 완벽하진 않아도 덤덤해지는 스킬이 늘어간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어떤 엄마가 되고 싶냐는 사뭇 진지한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대체로 깊은 고민이 필요하거나 답변 자체가 진행형의 답변(고민 중이거나 아직 확립되지 않은) 일 수밖에 없고, 특히나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힘든 답변을 요하는 질문이 맥락 없이 '쉽게' 던져지는 것이 불편하다. 이를테면 인생은 뭐라고 생각해? 너는 어떤 사람이야? 등...


반면, 대화가 확장됨에 따라 스스로 그러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즐겁다. 대화 속에 서사가 있고 흐름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 뒤 맥락 없이 턱 주어지는 심오한 질문에 가끔 나는 목이 막힌다. 나도 그럴 것이,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어.'라고 쉽게 대답하면 될 텐데 또 그런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복잡한 사람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 가치관과 사고를 주입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라는 뭐 그런 류의 대답으로 횡설수설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의 역할이 물론 중요하지만, 은연중에 아이의 삶도 아이의 것이니, 결국은 본인의 생각과 마음이 중요하고 또 그걸 부모로서 존중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살던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 되어가고 있을 그 미래에, 내가 살던 방식과 잣대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임신 소식을 듣고 친구가 사준 '엄마의 20년'이라는 책을 읽고 깊이 공감했던 부분이 나도 모르게 정립된 것 같다. 내가 어렴풋이 그렸던 이상적인 엄마의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해볼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책이었다. '저자와 같은 엄마가 되어야지'라기보다, '나는 나대로의 엄마가 되어야지'라는 생각과 '내가 더 단단해지고, 내 삶의 밸런스를 잘 잡는 게 중요햐겠다'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와 닿았던 구절을 소개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엄마'는 없었어요. 균형을 찾아주는 '좋은 엄마'가 있을 뿐이었지요. 저는 육아를 이렇게 정의 내렸어요. 아이에게 모자란 것은 채워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주는 엄마의 일


행복 역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도록 삶의 균형을 유지해나가는 와중에 간간이 스미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매거진 TASTE의 첫 이슈 'Green'을 마무리합니다. 그 동안 잠시라도 제 글에 다녀간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서두에 언급된 글 |




        

매거진의 이전글 유난스러움은 때로 강렬한 추억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