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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루스트 Feb 08. 2021

경계의 대상에서 호기심의 대상으로

TASTE | 프루스트의 입맛 저장소
Issue No. 1  Green



마가렛 대처가 말했다.

"생각을 조심하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하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생각이 행동을 좌우하고 지속된 행동의 결과물이 곧 ‘현재의 나’ 임을 이야기한다.


나는 두려움과 겁이 많은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매 여행은 머릿속 경계의 대상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꿔주는 중요한 연습 무대였다. 여행을 통해 마음을 열게 되고 열린 생각은 사람과 입맛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가장 싫어했던 식재료 고수가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 여정을 소개한다.



01. 여행이 가져온 변화, 1인칭 시점이 3인칭 시점으로


어렸을 땐 입에도 대지 않았던 음식인데, 어느샌가 좋아져 입맛이 바뀌었나 한 적이 있다. 그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동일한 상황에서 내가 다르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그 변화된 시간의 간극에는

여행이라는 경험이 있었다.  


나는 여행하며 성장해왔다.


여행의 횟수가 늘어가면서, 다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확장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여행에서 겪었던 상황들은, 내가 이미 경험하고 생각했던 세상을 몇 번씩이나 넘어섰기 때문이다. 한 살 한 살 경험과 지식이 쌓여가고 가치관이 정립되어가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는 커져갔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한없이 작아졌다. 한없이 작아진 만큼 또다시 내가 담을 수 있는 외부의 세계는 커져있었다. 새롭게 마주한 모든 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낯선 경계의 대상이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뀌는 순간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요세미티에서 개울가를 건너야 하는 상황이었다. 건너기 전부터 일말의 고민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건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 위를 가로질러 누워있는 나뭇가지 위로 신발을 신은 채 호기롭게 건너려다 결국 개울가에 발을 풍덩 빠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저런 케이스들을 지켜보고선, 신발을 벗지 않고 깔끔하게 개울가를 건넌 후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이 구체화되니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왠지 모르게 나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이미 오랜 걸음으로 등산화와 한 몸이 되어버린 발을 꺼낸 후, 또다시 딱딱한 등산화를 신을 일이 끔찍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긴, 개울가의 1/3도 건너기 전에 야무지게 한 발을 적셨다. 나는 빠르게 포기했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 그제야 두 양말을 모두 벗었다.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앞선 시도가 민망할 만큼 쉽고 빠르게 개울가를 건너왔다. 그리고 젖은 양말과 신발을 햇볕에 말리기 위해 모래 위에 앉았다. 그 사이 신랑은 모래 위에 누워 낮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쏟아지는 직사광선을 온몸과 얼굴로 받아내고 있었다.


개울물 사건은 1인칭 시점의 여행을 3인칭 시점으로 바꾸어주었다.


신랑이 달콤한 낮잠에 빠져있는 사이 나는 각양각색으로 개울물을 건너는 사람들을 여유로운 관객 모드로 바라보았다. 대장놀이에 심취한 듯 보이는 5세 아동이 자신의 키 정도 되는 나뭇가지를 들고 건너가는 장면, 그 뒤를 따라가며 아이의 안전을 극적으로 지켜줄 것 같은 아빠의 단단하고 흐뭇한 표정, 서로의 손을 의지하며 건너는 노부부, 그리고 누워서도 보이는 요세미티의 높은 암산과 하늘. 발을 적시지 않았더라면, 놓쳤을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여행 중 뇌리에 남는 장면은 약간의 허술함과 내려놓음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경험을 몇 번 성공하게 되면 매 순간 효율을 따지는 게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상황이 받쳐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계획을 고수하는 것이 때로는 여행의 재미를 반감시킬 때가 있다.


특히 계획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도 여행에서는 일찌감치 마음을 비우는 게 좋다. 나의 익숙한 문화적 기준으로 낯선 곳을 바라보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지만, 그 나라 사람들의 기준과 방식을 이해하고 맞추게 되면 불편한 순간에 웃게 된다.


무엇이든 당연함은 내 기준 안에서 통한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그들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여행을 통해 혹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혀가며 느끼고 있다.


여행의 경험은 다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고, 낯선 대상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변모시켰다.



02. 낯선 식재료의 설레는 경험


새로운 식재료에 거리낌이 없어진 데에도 역시 여행의 도움이 컸다. 주먹밥을 튀긴 아란치니처럼, 익숙한 음식의 낯선 조리 방식을 보며 세상에 정답이 없음을 실감한다.


이렇게 같은 재료로도 다른 결과물을 보여주는 음식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얼큰한 닭볶음탕은 꾸덕한 치킨 스튜가 되어있는다든지, 만두피로 속재료를 감싸는 만두는 이탈리아에서 라비올리라는 음식으로 토마토소스 사이를 뒹군다.


또 하나, 익숙한 음식과 재료의 새로운 조합을 발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경험이다. 이를테면 된장국에 토마토를 넣는다던지, 카레에 비트를 넣는다든지, 계란말이에 고수를 넣는다든지.


메뉴 자체는 흔히 먹는 일반적인 음식이지만, 재료에 변주를 주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요리가 재밌는 이유 중 하나는 자유로움에 있다.

요리를 하다 보면 유레카! 하며 한 껏 올라간 눈썹과 동그란 눈이 되기도, 처진 눈썹과 입꼬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엉뚱한 시도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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