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도르 Jan 28. 2021

나만 생각하는게 나쁜년이라면 기꺼이

난 나쁜년이 좋드라?

내가 혹시 결혼을 해서 딸을 낳는다면 ‘나쁜년’으로 키울거야. 내 말 잘듣는 착한딸 말고 자기 인생에 집중하고 나만의 행복을 선택할 줄 아는 나쁜년 말이야. 사람들은 그걸 나쁜년이라고 하더라. 근데 참 이상하지? 내가 본 나쁜년들은 다 착했어. 솔직하고, 누구보다 마음 따뜻하고, 울땐 울고, 술마실땐 마시고, 욕나올땐 욕하고. 나쁜년의 가장 큰 매력은 확실하게 나쁜년이 될 줄 안다는거지. 너도 알지, 정민이. 내가 아는한 가장 나쁜년에 가까운 친구거든. 정민이가 그러더라. 애매하게 착해서 나쁜년, 호구 소리 둘 다 듣는 것보다 차라리 나쁜년 소리 듣고 확실하게 웃는게 낫다고.


세상은 호구 아니면 나쁜년, 두가지로 나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호구 아닌 사람들을 나쁜년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 쳤어. ‘아 나는 호구가 되긴 싫으니까 나쁜년 해야겠다’하고. 아직 미친년 까지는 못갔어. 맨날 말로만 ‘이구역 미친년은 나야’하고 다녔지,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어도 미친년이 되지지가 않는거야. 상상으로 미쳐. 꿈에서만 미친다구. 사실은 진짜 미친년들한테 당해서 꿈에서나 뺨때리지. 예전에 나한테 미안하다고 커피쿠폰 보내놓고 내가 쓰기 전에 다 환불해버린 그애, 난 그일이 그렇게 황당하고 기분이 나쁘더라. 내 인생 황당한 일 베스트라 해도 손색이 없지. 나는 그애 뺨을 꿈속에서 때렸어. 부러 상처주려는 그 마음이 너무 무서워서 그애 얼굴을 보니까 손이 덜덜 떨렸었어. 내가 상대할 수 없는 무서운 년이다 싶어서.


인간관계에서 나쁜 일이 생겼다고 하면 사람들의 제일 첫번째 반응이 뭔 줄 알아? “네가 뭘 얼마나 잘못했길래?”라고 말해. 생각해보면 맥락 없이 사람 싫어하고 그걸 마음속에서 끝내지 않고 악플 달고, 사람 괴롭히고 다음날 뻔뻔하게 출근해서 또라이 아닌척하고, 일관성 없는 태도로 여러사람 미치게 하고 의사소통 안되는 책임감 없는 사람 주변에 꼭 있지 않아? 생각보다 많이. 자기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걸까? 왜 사람들은 약자가 꼭 뭘 잘못해서 당했다고 생각하는걸까? 아니 애초에 착한 사람이 왜 약자인거지? 별 이유없이, 갑자기, 앞뒤없이 사람 상처주는게 또라이 아냐? 대체 언제부터 호구의 상징이 착한게 된거야?


15년 가량의 회사생활을 하며 느낀건 ‘착하면 안된다’야. 혼자 일 잘하면 나대는거고 뒷말 잠재우려면 그것들 누르고 올라가야해. 오죽하면 직급이 깡패라는 말이 있어? 여자의 적은 여자, 직급이 깡패, 이런말 난 너무 싫더라. 그런데 어째. 그게 현실이래. 회사원으로썬 내가 나이 먹고 직급 그나마 과장인게 얼마나 다행일 때가 많은지 몰라. 우리끼리 아웅다웅 하며 살아서 잘 모르는데 우리 명함이 그렇게 별 영향력이 없잖아. 퇴근하면 쓸모도 없는 명함 그거, 주5일 하루에 딱 8시간 써먹고 버리는거야. 그런데 그거 하나 갖자고 상처주고 괴롭히고 밟고 기꺼이 또라이로 변신하드라? 당하고만은 있을 수 없지, 하는 생각이 들때 나쁜년이 되는 연습을 하는거야.


예전엔 죽도록 참았었는데 이제 딱 한번만 참고 두번째는 안참아. 두어번 권유해서 안바뀌면 그 사람이랑 일 안해. 내가 마더테레사도 아니고 착한척 참아봐야 호구나쁜년 같은 정체성도 없이 애매한 욕이나 듣지. 그게 뭐야. 차라리 나쁜년이 낫잖아, 안그래? 예전에 나랑 친한 대리님이 그러더라. 하나만 하라고. 나보다 직급은 낮은데 친했어. 어느날 외근을 나가는데 운전을 하면서 그러는거야. “팀장님, 왜 애매하게 살아요? 하나만 하세요 하나만. 나 팀장님 좋은데, 가끔 보면 진짜 애매해. 나쁜년이야 호구야? 노선을 정해야 내가 어떻게 대할지 정하지” 좀 충격이었어. 나는 내가 착한줄 알고 엄청 많이 참아주고 있는거 였거든. 근데 호구나쁜년이라는거야. 웃기지 않아? 생긴건 나쁜년에 가까우니까 그냥 나쁜거 하래. 그땐 그말을 듣는데 나쁜년 소리 듣기가 싫더라구. 난 분명 착한 사람인데, 하면서. 레벨이 안됐던거지. 본격적으로 나쁜년이 될 레벨이.


그 살벌한 마음들을 다 지나고나니 이제 나쁜년 소리 듣는게 무섭지 않아. 뭐가 무서워 그냥 나쁜년 하면 될껄. 그냥 나쁜년 하고 가끔 할 말도 하면서 내마음도 좀 챙겨야 매번 울면서 무너지지 않고 지내지. 내가 나쁜년이 되니까 마음에 띄엄띄엄 공간이 좀 생겨. 내 실수에도 조금 관대해지고 내 기분도 좀 살피고. 착한사람이 되고싶을 때에는 착하다는 평가를 받는 순간이 기뻐서 자꾸 속상해지고 작아지고 쭈글쭈글 해졌거든? 나쁜년이 된 지금은 이상하게 어쩌다 한번 속상하고 실수를 많이 한 날에도 무너지지 않아서 좋아. 나쁜년은 그래도 되거든. 실수 해놓고 어쩔수 없네요 하고, 하고싶은 말 막 내뱉고 그래도 되는거거든. 나쁜년소리만 들었지 정작 나는 점점 순해진다니까? 마음 편하고 순둥이 같은 내가 점점 마음에 들어.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 대한 실망을 보듬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