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획사들이 팬덤의 체면을 위해 영업이익까지 관리해야되게 생겼다.
아래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떠돌던 메이저 기획사의 2023년 3분기(누적) 실적자료다.
그리고 아래는 덕들이 모여있다는 모 커뮤니티에서 뉴진스 멤버들의 정산에 관해 이야기하는 포스트다.
상당히 수준(?)이 높은 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커뮤니티에선 어도어와 쏘스뮤직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비교하며 뉴진스와 르세라핌의 수익성(?)을 논하고, 르세라핌은 일본 매출 비중이 높은데 그 부분은 하이브재팬으로 집계되니 어도어와 쏘스뮤직과의 단순비교로는 두 걸그룹의 성과을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보인다.
언제부터일까.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다. 팬덤은 인기차트 순위를 경쟁하고, 비교하고 좀 나아가 엘범 판매량까지도 비교하였지만 이렇게 대놓고 소속사의 수익성까지 비교하며 걸그룹의 가치를 경쟁하지는 않았었다.
이런 추이는 아마도 시작은 메이저 기획사들의 상장과 함께 엔터주 주식투자자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기획사들의 실적정보가 인터넷 게시판들에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각 회사들의 실적을 분석하며 아이돌의 인기를 논하고 차년도 실적을 예측하고.. 이런 글들이 온라인에서 계속 생산되면서 그것이 팬덤으로까지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 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아니다. 아무리 그런 글들이 많아져도 아이돌 팬덤은 어디까지나 아티스트를 감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기에 매출이니 이익이니 하는 따분한 이야기에는 그닥 관심이 가지 않는게 상식적일 것 같다. 헌데 요즘은 저런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며, 조금 과장을 보태면 이제는 아예 특정 아이돌그룹의 인기와 가치를 산정하는 하나의 기준으로까지 자리잡아가는 모양새이다.
그러면 이것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우리의 세계관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라는 세계관 속에서 60년이 넘는 기간을 살아왔다. 앞에 30년 정도는 유교나 불교 또는 기독교나 민주주의 등 다양한 세계관이 중첩된 기간이었다면 뒤의 30년 정도는 압도적으로 자본주의가 우세한 세계관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케이팝팬덤의 핵심인 10대와 20대는 그 자본주의 세계관의 한 중간에 태어나 일생 그 기간만을 살아온 순정 자본주의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조금 거친 일반화일순 있지만, 그들은 나면서부터 온라인에 익숙하며 습득이 빠르고 그 전 세대에 비해 한층 더 자본의 논리에 익숙하고 돈이라는 것에 대한 감각이 발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실제 "내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또는 "돈이 최고다." 라는 말에 대해 그 어떤 세대보다도 거부감이 적고 그 논리가 내면화된 세대는 아닐까도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트렌트를 기민하게 캐치한 아이돌그룹이 있어 조금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들은 등장부터 남달랐다. 데뷔곡 'Generation' 은 음악과 뮤비에서부터 그 의도를 확실히 드러낸다.
검증되고 신선한 모델인 뉴진스를 레퍼런스해서 기획과 컨셉 창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오히려 그를 활용한 바이럴에 올인함으로서 바로 이슈가 되겠다는 전략을 보여준다.(스타일, 안무방식 등)
그렇게 이들은 최소의 비용(?)으로 순식간에 이슈의 중심이 되었고, 그 이슈에 매몰되지 않을 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주었기에 덤으로 일군의 팬덤도 가지게 되었다. 아예 솔직해버리면, 그리고 그 만큼의 실력을 보여주면 지금의 MZ 세대에게는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의 과감한 행보는 이게 다가 아니다. 조금은 특이한(?) 그들의 행보를 보기 위해 먼저 그 소속사(기획사)를 들여다보자. 이들의 소속사는 모드하우스라는 곳으로 JYP 등 다수의 연예기획사에서 A&R 을 담당해오던 정병기라는 분이 설립한 회사다. 이곳은 회사의 운영도 상당히 파격적인데, 케이팝 기획사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습생 시스템' 을 과감히 포기하고 기획과 마케팅에만 올인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것은 제작기간을 급격히 줄여주며, 그에 비례하여 투자금액도 상당부분 절감시켜 준다. 연습생 시스템을 포기하는 대신 타소속사에서 이미 연습생을 하고 있거나 또는 유망한 재원들에게 컨택하여 즉시 데뷔를 조건으로 섭외해 오면 적은 시간과 자본 투입 대비 양질의 아티스트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소 급하게 섭외된 이들은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에 실력이나 매력에 대한 리스크가 존재하게 된다. 이들은 그런 리스크를 독특한(?) 멤버구성 시스템으로 풀었다. 총 24인이 트리플에스로 데뷔하되, 엘범 및 활동은 실제 인기가 있는 멤버위주의 유닛활동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바로 그래비티(GRAVITY)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 회사의 재미있는 기획이 빛을 발한다. 과거에도 NCT 나 이달의 소녀 등 큰 멤버 POOL 을 가지고 그 안에서 다양한 유닛이 활동하는 모델은 존재했었다. 하지만 이 트리플에스의 방식은 다르다.
그들은 유닛의 결정에 자본주의의 핵심인 주주총회 방식을 도입했다. 즉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인 시스템이다. (투표권은 어플을 통해 포토카드 NFT(->COMO) 를 구입하면 얻을 수 있다. 코인이니 POS 로 보아야할까..)
일본 AKB48의 총선거 방식과 유사한 형태인데, 이들은 MZ 세대의 감각에 맞게(IT강국 답게?) 코인과 NFT 방식을 도입했다. 그리고 이것이 너무 대놓고 소속사의 돈벌이 수단으로 비춰질 것을 염려해 이 NFT판매에서 오는 수익은 음반/음원 등 엘범활동 수익과는 별도로 구분하여 멤버들에게 즉시 정산된다는 설정도 놓치지 않았다.
위의 선택은 두 가지 효과를 갖는다. 첫째로 NFT 방식은 이들에게 연예기획사라는 정체성에 더불어 IT 회사라는 정체성을 추가로 심어준다. 이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는 빠른 정신이 주는 그룹 매력도 상승이다. 기존 연습생이나 유망한 재원을 데리고 오려면 그만한 당근이 있어야하는데 초기에 큰 계약금을 주지 않더라도 이러한 정산구조는 멤버 확보에 충분히 매력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상당히 깊은 고민과 기획을 통해 탄생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남다른 설정으로 출발하여 인기를 쌓아오던 그들은 2023년 8월,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그룹의 정체성을 공언하는 듯한 곡을 발표한다.
바로 Girls' Capitalsim 이다.
https://youtu.be/OvtoY0lfYJ8?si=h39Phduj8S2VUJLP
제목에서 이미 모든 이야기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가사는 귀엽게 자본주의 매력을 이야기하고 뮤비도 이 시대의 Girl 이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애둘러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 곡의 메세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자본주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Girls can do anything 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Girl Crush 도 아니다. 곱고 이쁘게 단장한 아이들이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탄생부터 지극히 자본주의 적이었다. 기존의 '케이팝 시스템' 에서 그 비용과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과실은 극대화하는 구조를 고안해 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총선거 시스템을 도입하였으며, 그 안에서 과금구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 방식도 가미했다. 또한 독특한 정산방식으로 멤버보상과 팬덤 거부감 감소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인 좋은 음악과 퍼포먼스라는 업의 본질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이 복합적인 구조들이 상호 호응하고 짜 맞춰져 들어가며 이런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탄생시겼다.
이 트리플에스는 케이팝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큰 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상당히 신선하고 도발적인 시도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왜 데뷔곡이 Generation 이었을까. 올해 8월에 비로소 완성된 그들의 세계관인 Capitalism Generation 을 위한 포석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