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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Aug 14. 2024

기간제 교사의 인간 관계

 

여러 사립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꽤나 곤란을 느꼈던 점 중 하나는 계약 기간 만료 시점에 날아드는 부고였다. 몇몇 학교에서 계약종료 시점인 2월에 부고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내가 그 학교에 오래 근무했거나 상을 당한 선생님과 각별한 친분이 있었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장례식장으로 달려갔겠지만 짧게는 한 학기, 길어야 1년 반 정도의 근무 기간들이었기에(서울 지역 사서교사 기간제 자리는 대부분 휴직 대체 자리들이라 한시적 교과 운영으로 인한 기간제 자리들과는 다르게 계약 기간이 짧다) 그 기간은 사람들과 돈독한 친분을 쌓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아예 친분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기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계약 종료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부고 문자를 받으면 '꼭 가야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난 사회성 쓰레기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그분들은 내 경조사에 못오실테니)물론 '그래도 조사는 참석해야지'라며 눈보라를 뚫고 다녀옴...


회사를 다닐 땐 딱히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인트라넷에 공지되는 경조사의 당사자가 나와 관계 부서의 사람의 것이라면 거의 참석하였고, 가지 못하는 경우 부조금을 전달하는 것이 당연했다. 당시 인사팀 소속이다 보니 아는 직원들이 많았고 참석해야 하는 경조사도 많았다. 나도 이렇게 참석과 통장이 버거운데 경조사 프로 참석러처럼 살아야 하는 부장님을 바라보면서 저런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난 절대로 인사팀장은 못하겠다 생각하기도...


사기업은 복지의 일환으로 회사에서 직원의 경조사비를 지원한다. 그러나 학교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구성원들이 개별적으로 내돈내산(?) 상조회를 운영한다. 학교마다 상조회 운영 시스템이 조금씩 달라서 기간제 교사를 상조회에서 아예 제외하는 학교들도 있고, 의무로 가입시키는 학교도 있고, 자율로 가입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학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간제 교사를 상조회에서 아예 제외시켜주는 학교가 가장 마음이 편했다. 언뜻보면 매정해 보이지만 상조회 가입 시 꽤 큰 금액예치금을 내야하는 경우도 있고 짧은 재직 기간 동안 지출만 있었던 적도 있었으니 그냥 안받고 안주는게 가장 깔끔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코로나 끝무렵 1년간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결혼식이 엄청...)


경조사라는 것이 일종의 품앗이인데 짧은 기간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의 경우 지출은 많고 그에 비해 돌려받을 확률이 희박한 상황이 대부분이다. 상조회 가입을 선택할 수 있는 학교에서는 담당 선생님이 나의 계약 기간 내에 부모님 환갑이나 칠순 또는 본인 결혼이나 출산이 예정되어 있으면 가입하시고 아니면 하지 마시라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도 있었다.


사립 학교는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이 정년까지 계속 함께 근무하기 때문에 그 조직의 인간 관계는 회사와 같다. 그 곳에 은 기간 드나드는 기간제 교사는 일종의 외부인이고.(재직 기간 동안은 함께하지만 떠날 사람임을 명확히 한다) 공립은 사람들이 드나듦을 전제로 하기에 끈끈한 사립과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이 두 학교의 인간 관계 역시 조금은 다른 모양일테다.



인간 관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고, 고민하고, 상처받고, 직장을 떠나기도 한다. 오죽하면 일이 힘든 것은 견딜 수 있는데 사람 힘든 것은 못 견딘다는 이야기까지 있겠는가. 특히 나같은 대문자 I 성향은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 어렵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여러 사람들과 가족, 친구, 동료, 지인 등등의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 그중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과는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하기 때문에 그 관계가 더 어렵고 신경쓰일 수 밖에 없다.


나의 경우 사기업에서 계약직 직원, 정규직 직원으로, 사립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해보았고, 각각의 상황에 따라 관계들이 매우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 속에서 매번 인간 관계는 어려웠고, 특히나 단기간 동안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친분을 만드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저 적당히 괜찮은 또는 나쁘지 않은 사람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을 뿐.


주위를 보면 기간제 교사지만 사람들과 굉장히 친밀하게 친분을 쌓는 사람들도 있고, 딱 적정선 까지의 관계를 맺는 사람들도 있다. 이 문제가 고민스러워 오랫동안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한 A 선생님에게 상담했을 때 그 선생님은 심플하게 정리해주셨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는 학교에서는 그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없는데서는 객관적인 사이만 유지하면 돼요. 그런데 어차피 기간제 교사의 인간 관계는 계약 기간 동안 유지되는 기간 한정의 관계라는걸 잊지말아야 해요. 어릴 때야 마음이 열려있어 직장에서도 친구를 만들지, 년차 쌓이면 알아서 객관적으로 변해요.'


생각해보면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 하나는 대학 졸업 후 첫 학교에서 만난 교사다. A 선생님의 말대로 당시에는 둘다 어리고 동갑이다보니 마음을 열고 만났고 지금까지 그 친구와 친분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누군가와 이 친구처럼 친밀하게 지낸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걸 보니 나도 시간이 흘러 객관적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 이렇다보니 기간 한정적 관계인 나에게 날아드는 2월 말의 부고 문자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을수도. 학기중의 부고도 마찬가지..

 

관계의 유효기간이 정해져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부담이 덜하기도 하다. 굳이 맞지 않는 사람은 일정 기간 지나면 안봐도 된다는 점이 가장 좋은 점이다. 하지만 오래 친하고 싶은 사람과의 관계도 가늘어진다는 점은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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