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쥬스 May 31. 2024

레슨은 프로에게

골프를 처음 시작하면 당분간은 연습장에 편한 복장으로 몸만 가면 된다. 채도 필요없다.

한두달은 연습장에 있는 7번 아이언 하나만 쓰기 때문이다.


골프선수들이 경기할 때 골프백 큰 것을 매고 다니는 것을 봤었는데 골린이들에게는 클럽 전부가 필요하지 않다. 자세를 잡는 데에는 아이언 한 개만 있으면 된다.(사실 골린이는 장우산만 있어도 될 것 같다ㅋ) 기본 자세를 잡는 것만도 한달이 넘게 걸린다. 정석대로 하면 3개월도 더 걸린다고 한다. 물론 3개월간 기본자세만 가르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도망갈테니 요즘은 속전속결로 강습하는게 트렌드라고 한다. 회원이 알려달라는 것부터 알려주는 프로들도 있다고 들었다.




골프 연습장은 다양한 형태가 있다.

우리가 등록한 연습장은 천막에다 공을 치는 일반 실내 연습장이다.

가끔 녹색 그물망을 거대하게 쳐놓고 있는 곳은 인도어 연습장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GDR(Golfzone Driving Range)이라고 해서 스윙 자세나 스피드를 분석해주는 스크린골프장처럼  생긴 연습장이 많아졌다.

골프아카데미들에 설치된 트랙맨이라는 프로그램은 스윙분석까지 해준다.

모든 연습장에는 소속 프로들이 있다. 한명만 있는 곳도 있고 엄청 많은 곳도 있다.

이 프로들은 레슨비를 받고 강습을 진행하는데 레슨은 기간으로 끊을 수도 있고, 횟수당으로 끊을 수도 있다. 보통 1회에 20분 정도 강습한다.


연습장들에서는 소속 프로 외에는 레슨 금지이므로 아는 사람을 데려가서 강습 주고받을 생각일랑 애초에 접는 것이 좋다. 개인이 레슨하다가 걸리면 경고 후 퇴장시킨다.


그런데 인도어 연습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레슨을 한다. 이 경우 소속 프로의 레슨비가 문제가 아니고 자기들끼리 와서 잘 치지도 못하면서 가르친답시고 시끄럽게 떠들어서 다른사람의 연습에 방해가 되어서 못하게 하는 이유가 더 큰 것 같다. 나도 연습장에서 연습 좀 제대로 해보려고 집중하는데 앞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피해를 본 적이 있다. 골프가 얼마나 예민한 운동인데!


그리고 그 아는 사람이 진짜 프로가 아닌 이상 별 도움이 안된다. 골프는 99타 치는 놈이 100타 치는 놈한테 훈수 두는 스포츠니까.


우리 연습장은 타석이 6개밖에 없는 작은 규모라 소속 프로는 1명이었고 연세가 꽤 지긋한 산적 두목같은 분이셨다. 골프장 사장님 말로는 대학에 강의도 나가는 분이시라 해서 기대를 했다.


물론 그 기대가 깨지는데는 하루도 안걸렸다. 스파르타 + 산적 스타일 티칭법을 구사하셔서 조금만 틀려도 혼나기 일쑤여서 주눅이 들었다. 이 나이에 내가 어디가서 그렇게 혼날 일이 있겠나. 그런데 골프연습장에서는 탈곡기에 곡식 털듯 탈탈 털렸다.


편 왈, 니 고목나무같이 굳건히 디디고 선 하체를 보면 어느 티칭 프로나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나지 않겠냐며. (맞을래?)


내가 체대생도 아닌데 체대생 굴리듯이 막 굴리다니. 하지만 동네에서 이 연습장 레슨비가 제일 저렴했고, 이 프로님은 20분 강습이 아니고 우리부부가 연습하는 내내 코칭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일단 가격 매리트가 넘사라서 혼나는걸 참기로했다. 그분이  나쁜사람이 아니고 내가 못하는거니깐.


그런데 우리가 강습을 받는 동안 많은 분들이 프로님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레슨받기를 포기하고 집에 가버리거나 다른 연습장으로 가버렸다.




프로님은 사전에 나에게 강습 중 발생할 수 있는 터치에 대해서 고지하고 싫으면 미리 말하라고 하셨다. 왜 이런걸 묻지 싶었는데 골프는 생각보다 강습중에 터치가 많이 발생하는 종목이었다. 특히 어깨, 골반. 팔로우스루를 교정하려면 여차하면 실수로 가슴에 손이 닿을수도 있었다.


블라인드 골프 관련 글에 프로가 어떤 여자 회원을 끌어안다시피 하면서 수업을 해서 꼴보기 싫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회원이 몸치라서 그런거라는 댓글이 있었다. 첨엔 뭔소린가 싶었는데 강습을 받아보니 너무 알겠더라는... 일단 골프는 스윙 폼을 잡는 것 부터 시작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몸치는 하나하나 만지고 다듬어서 자세를 잡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내 경우엔 아무래도 내가 남편이랑 같이 강습을 받으러 온 여자사람이다 보니 아무리 프로님이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한들 나에게 손대기가 좀 그랬었나 보다. 내 자세가 틀어지면 골프채로 찌르기를 시전하셨다.


그리고나서는 남편한테 자세를 알려주고 집에 가서 나한테 알려주라고... 근데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남편은 타고난 운동신경 보유자라 코칭하는 대로 바로바로 자세가 나왔는데 몸치인 나는 계속 뭔가 어정쩡+이상+괴상하기 일쑤였다. 이런 내 자세를 제대로 잡으려면 뒤에서 안다시피 해서 잡아야만 했고 남편은 신경도 안쓴다지만 프로님 입장에선 뭔가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라 괜히 나한테 손대기 싫고 뭐 그랬던듯....


골프를 시작했더니 남편과 어정쩡하게 백허그하고 있는 시간만 많아졌다.




골프 강습은 보통 3개월 정도를 기본 시간으로 생각한다. 우리 역시 3개월씩을 레슨을 끊었고. 3개월안에 프로는 회원에게 드라이버까지 알려준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빠듯한 시간이다. 첨엔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대체 3개월이나 뭘 배우는거지?'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돈 되고 시간 되면 1년은 배우고 싶다. 아니 그냥 티칭프로가 나 공 칠때마다 옆에 있었음 싶다.  


골프라는게 날아오는 공도 아니고 가만히 바닥에 있는 공을 골프채로 치면 되는 단순한 운동처럼 보이지만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끔은 바닥에 있는 하얀 공이 '나 쳐봐라 메롱~' 이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화가 날 때도 있다.


일단 골프는 가장 먼저 스윙 궤적이 몸에 익어야 된다. 이 궤적이 몸에 익혀지는데 까지 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찌저찌 익혀놨다 싶으면 계속 삐뚤어진다.

게다가 아이언과 유틸리티와 우드와 드라이버를 치는 방법이 다 다르다. 기본은 같다고 하는데 클럽은 길이가 다 다르고, 채가 길어질수록 몸 쓰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다들 아이언이 맞으면 드라이버가 안맞고 드라이버가 맞으면 아이언이 안맞는다는 것은 채마다 구사하는 스윙패턴과 임팩트 구간이 달라서 그렇다. 이걸 또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물론 짜증나게 얘도 계속 삐뚤어진다.


3개월 강습이 끝나고 나 혼자 쳐보겠답시고 열심히 공을 패고 있을 때 프로님이 자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고 하셨는데 어설프게나마 3개월간 잡아둔 스윙이 무너져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결국은 한달 사이에 와장창 망가져서 3개월 추가 레슨을 끊었다.


운동신경 있는 남자들은 3개월 레슨 받고 기본을 알고 난 뒤에 각자 연습하는 것도 괜찮지만 운동신경이 없는 여자라면 6개월정도는 꾸준히 레슨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떤 연습장은 생초보는 강습비가 싼데 골프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의 강습비는 더 비싸게 받는다고 한다. 그만큼 치는 방법이 망가지면 문제가 생기기 쉽고 그걸 교정하는 것은 더 어렵다는 이야기다. 부상은 덤이다.


골프를 시작한지 8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여전히 백스윙은 엉망이다. 프로님은 첨엔 남편보다 내가 훨씬 잘칠거라는 격려를 해주셨는데 이젠 헛된 희망따윈 갖다버리고 드디어 나를 포기하셨다. 공을 치기만하면 굿이나 나이스라고 하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골프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