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조일남 Aug 24. 2020

놀란이 잃어버린 건

<테넷>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해준다면, 그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물리학 이론이나 천문학에 관한 깊이를 다루는 데서 가치를 찾기보단, 그가 고집하는 아이맥스 화면 만큼이나 방대한 자본력을 뒷받침한 세트를 우리 눈 앞에 보여 준 뒤 이를 일 순간에 파괴하는 스펙타클의 쾌감에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건  <인터스텔라>의 옥수수밭이나 <다크나이트> 속 뒤집어지는 화물 트럭의 움직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벌어지는 경찰과 죄수 간의 대난투, <인셉션>의 회전하는 호텔 방과 같이 디지털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스펙타클한 이미지를 구현하겠다는 투명한 욕망이 드러난 세계가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운성 평론가는 <매드맥스>에 관한 평을 쓰며 ("결국 디지털 편집 프로그램의 타임라인에 올라 변형되고 말 SF영화의 ‘소스영상’을 위해 35mm 필름 촬영을 고집하는 <인터스텔라>의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쓸데없는 허식과 낭비가 조지 밀러에게는 없다"며 위 방식을 비판했는데 나는 그 지점에 적극 동의하고 있음을 미리 밝힌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놀란의 스펙타클은 여전히 유효한 결과를 낳는다. 그건 앞서 언급한 비판점과 상관 없이 우리의 눈이 방대한 스크린 앞에 펼쳐진 부서지는 건축물과 자동차들의 파열음을 경험할 때 느끼는 생경함에 있는 걸까 싶기도 하다. 허나 다소 극단적인 예로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인셉션>을 대립항으로 놓고 보더라도, 규모의 스펙타클만으로 놀란의 영화가 성립한다고만 볼 순 없을 것이다. 그건 앞의 영화와 달리 <인셉션>이 갖는 미덕을 언급하며 이야기해야겠다.



<인셉션>의 후반부, 그러니까 코브가 사이토를 데려오기 위해 심연으로 향하는 과정까지의 편집은 지금봐도 여전히 뛰어난 연출이다. 시간을 축으로 분리된 각각의 레이어들이 서로 갖는 유기적인 긴장을 유지한 채로 끝내 잠에서 깬 코브의 평온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광경은 <인셉션>이 왜 놀란의 가장 뛰어난 영화인지를 보여주는 백미일 것이다. 나는 이 긴장이 영화의 결말이 갖는 미스테리 (코브의 꿈이냐 아니냐)를 보충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로 여긴다. 그건 반대로 동일하게 시간을 미스테리 요소로 활용한 <테넷>엔 이 긴장이 부재한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 이다.



<테넷>은 현대 과학 이론의 외피를 두른 스펙타클의 총체라는 점엔 기존 놀란 영화와 유사성을 띄면서도 후반부엔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들이 눈에 띈다. 가령 후반부 시퀀스에 레드팀과 블루팀이라는 두 시간적 레이어 사이를 관객으로 하여금 직감적으로 받아들여지게끔 하는 편집들이 논리적으로 빈약함은 물론이며, 그들이 오직 하나의 서사 (우리를 구원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로 귀결되는 장면을 보기 위해 소모되고 있음이 직감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가 자랑하는 '인버젼' (거꾸로 시간이 흐르는 세계)은 어떠한 영화적인 긴장을 마련하지 못한채 단순히 리플레이는 리플레이다. 라는 생각만이 들게끔 한다. 스펙타클은 여전하지만 긴장을 잃어버린 놀란의 <테넷>은 수 차례 개봉일자를 연기하며 모든 스포일러를 차단하려 발버둥 친 영화 치곤 다소 슬픈 결과처럼 다가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