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조일남 Aug 10. 2022

영화 평론가는 바이럴마케터다


  한 편의 영화는 극장 상영과 VOD 서비스를 위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하나의 상품가치를 갖는다. 영화 평론가는 이 물건에 말을 덧붙이며 자본 시장 안에 자기 영토를 구축하는 자다.


이건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아트시네마 상영작처럼 겉으로 시장 가치를 부여받기 거부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듯 보이는 영화를 예외로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작품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우리가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생각 해보자. 네이버 블로그, 트위터, 카카오 브런치, 티스토리,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플랫폼에 업로드 되어 오랜 기간 웹을 떠돌거나 혹은 인쇄 매체를 경유해 직접 시장에 도달하지 않는가.


 특히 전자의 경우인 웹 플랫폼 매체에 나타나는 영화글은 각 플랫폼 매체의 서버 DB에 저장되는 동시에 저작물로서의 가치 또한 지닌다. [대법원(2013도7228 판결은 이를 잘 나타낸다) ] 그것이 영화에 관한 극찬, 혹은 열렬한 저주건 간에 이러한 장, 단평들이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이란 공간을 서로 교통하면서 생성하는 것이 바로 화폐가치 대비 한 편의 영화가 지닌 이른바 '가성비'다. 이 영화는 내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가를 따지는 행위, 오늘날 영화 글이 가리키는 최소한의 당위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이 가성비를 따지는 일이다 라는 것 만큼은 천박하게 보일지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의 영화평론가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는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제쳐두고 영화 글이 지니는 순수성(정말 그런게 존재한다고?) 집착하면서 스스로 광고인이 되어버린 현실을 외면하고 심지어는 그 순수성을 지키는 투사를 자처한다. 이런 바보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왜일까? 나의 경험을 비추어 이야기 해본다면 영화 기자, 혹은 영화 평론가를 지망하는 이들 중 플랫폼에 공개되는 이른바 작품 리뷰를 취미삼아 쓰다 보면 영화 배급사로부터 vip 시사회, 언론 시사회라는 명목의 초대를 받는 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때 영화 티켓 관람료를 요구하는 내신 배급사는 영화에 관한 소감 혹은 단평(이라 포장되어진 좋은 말) 을 요구 또는 요청한다. 이러한 풍경은 겉으론 둘 사이에 아무런 금전적 교환이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리뷰 글을 쓰는 이의

sns, 혹은 그가 지면에 글을 쓰는 매체로 이어져 상품 가치를 전파하는 일련의 계약과정과도 같다. (특정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단독 시사 또한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그럼 여기서  'vip' 라는 관행에 익숙해지다보면 평자는 자신의 글이 지닌 시장 가치와 작품에 끼치는 금전적 영향을 잊는 것일까? 나는 그점이 지금 제일 의아하다. 오히려 주장해야  점은 바이럴/역바이럴의 논쟁이 아니라 당신들의 글이 지닌 상품으로서의 가치, 오늘 날의 영화 평론가가 바이럴 마케터라는 자의식을 깨닫자라는 외침이다.  영화 평론을 위한 자리는 누구나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오픈 그라운드다. 역바이럴 논쟁은 이러한 개방 구조를 거부하고 비평영토를 사유화 하려는 이들의 어거지 혹은 마지막 울부짖음처럼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늘상 하던 말이긴 하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