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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May 04. 2024

최선이란 이름의 후회

   하필이면 그날이었다. 짧은 해외 살이 기간에 친해진 친구들을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날. 그 애들이 잠시 한국을 머무르는 와중에 기적적으로 시간이 맞아 잠깐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된 그날. 하필이면 그날을 물어왔다.

   ‘빌리 아일리시 콘서트 갈래요? 제가 선예매에 성공했답니다!’

   ‘미친, 너무 좋죠. 언젠데요?’

   ‘다음 주 금요일이요.’

   ‘아…….’

   그러니까, 하필이면 그날이었다.     




   그런 일은 살다가 보면 얼마든지 있다. 좋아했던 가수가 콘서트를 여는데 티켓팅 날짜를 놓쳐서 예매 자체를 하지 못한다거나, 우연치 않게 좋은 좌석을 잡았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갈 수 없다거나 하는 일은.

   그런 게 어디 콘서트뿐이겠는가. 인생 전반이 다 그런 식이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은데, 갈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가보고 싶은 식당, 카페, 관광지, 전시, 공연 그 많고 많은 것을 언제나 다 보고 듣고 씹고 맛보고 즐길 순 없는 것이다. 한정된 재화와 기회 안에서 최선의 것을 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그게 인간이 아니던가.

   그런데 언제나 이 ‘최선’이라는 것이 내 발목을 붙잡고 끈질기게도 놔주지 않는다. 너, 이거 최선 맞아? 항상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그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싶은 후회와 물음이 깊고 깊은 밤 동안 어깻죽지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서른 해를 넘게 살면서 직업을 3번 정도 바꿨는데, 직업을 바꿀 때마다 이 선택만이 최선이라고 중얼거렸다.

   ‘지금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어. 이게 최선이야. 최선이 맞아’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후회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있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때 전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후회의 문장에 쉽게 마침표를 찍지 않기 위해 애쓴다. 아냐, 그래도 지금 더 좋은 것들이 많잖아. 맞다, 확실히 더 나은 환경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왜 자꾸 과거를 떠올릴까. 왜 자꾸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를 생각할까.     

 



   그날, 빌리 아일리시 콘서트를 포기하고 호주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차피 내가 가보지 못한 최정상급 가수들의 콘서트는 많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뉴욕 펜트하우스에서 사는 삶의 맛과 멋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행복과 즐거움이 나의 것이 될 순 없으니까. 내게 주어진 행복에 만족하는 것이 유일한 답일 것이다. 그 모든 행복이 나의 것이길 바라는 건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을 다 먹고 배가 터지겠다는 욕심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더 좋은’이라는 말은 언제나 ‘좋은’의 가장 큰 적이라고 한다. 충분히 좋은 것에 그칠 수도 있지만 ‘더 좋은’ 선택지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것이라고. 저걸 선택했어야 했는데,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더라면……. 가보지 못한 길이 더 아름답다고는 하나, 마음속에 남는 후회나 회한의 감정은 어떻게 달래면 좋을지 모르겠고.     

 



   요즘은 계속 ‘더 좋은’ 또는 ‘더 나은’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나도 충분히 좋은 내 삶의 만족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한번 어려운 것들은 어째 평생토록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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