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리 Apr 03. 2024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그러니까.

   ‘비결은 뜨겁다는 데 마음을 쓰지 않는 거야.’

   누군가 그렇게 말했을 때는 안경을 고쳐 올려 썼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손으로 촛불을 꺼놓고 뜨겁지 않은 비결이랍시고 하는 말이 마음을 쓰지 않는 거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내가 마침, 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비결은 타인에 시선에 마음을 쓰지 않는 거야.’

   타인의 시선. 이 진부한 단어에는 인류사의 엄청난 비결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진부한 역사를 감내하며 살아왔다. 그 시선은 곧 내게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나의 행동을 수정해주기도 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타인과 함께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타인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문제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데서 나온다. 지나친 의식. 이 부정적인 단어는 경험을 통해 생성된다.

   “걔가 너 뒷담화 하고 다니던데?”

   그런 시절을 지나면,

   “이번에 사람들이 너 승진한 거 가지고 말이 많더라.”

   같은 시절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지점에서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떤 색깔로 판단할까? 그보다 조금 더 원초적인 질문.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할까? 싫어할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백 번쯤 할 무렵 피해의식이 생겨난다. 인간들은 모두 머저리 같아서 쓸데없는 이유로도 타인을 미워하지. 그들에게 지능을 준 건 신의 실수라니까.


   이건 내 얘기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가 겪은 지난한 시간들이 눈앞에서 나를 여전히 조롱한다. 네 얘기가 아니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처음에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그 사람들의 생각이 당신의 평판을 만드는 거라고, 그 평판은 알게 모르게 중요하다고.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했다. 꾸준히 생각했다. 그게 나를 좀 먹는다는 걸 알지 못한 채.


   모든 기력이 사라진 어느 날, 삶의 의욕도 동기도 나의 이성을 붙잡지 못하는 그런 날. 꾸미지 않아 봤다. 못한 것에 가깝지만. 억지로 웃지 않았고, 부러 활달하게 굴지 않았다. 대화 주제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고, 화제의 중심이 되려고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고 싶었으므로.


   타인의 시선에 무기력한 채로 놓여 있기를 거부했다. 그것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 건 줄은 몰랐지만 막상 해보니 편했다. 내 스스로가 편안했다. 결국 중요한 건 그런 거였는데, 한참 동안이나 알지 못했다. 잘해보려고, 잘 지내보려고, 억지로 반응하고 대화했던 날들을 반성하게 됐다.


   사회적 자아. 전 남자친구가 무척이나 싫어했던 말이다. 너 나한테는 잘 웃어주지도 않으면서 왜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만 웃어주는데, 그게 네가 말하는 개떡 같은 사회적 자아야? 웃기고 있네, 에서 그 사회적 자아. 그 애는 무척이나 싫어했지만 나에겐 실재하는 무엇이었다.


   그게 내 영혼을 갉아먹었다. 억지로 웃고 떠드는 동안 속으로는 우울이 차곡차곡 쌓였다. 이제 그만하는 연습을 해볼까. 찾아오는 밤마다 후회 속에서 나를 질타하는 일을 그만둬볼까. 막상 해보니 타인의 시선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내가 의식하지 않을 때만큼은. 타인의 시선보다 중요한 게 자신의 시선이었구나.


   작은 깨달음에 가슴을 한 번 툭, 치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리는 사람의 명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