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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Oct 04. 2023

기다리는 사람의 명절

 이른 아침 고요히 일어나 부엌을 눈으로 훔친 후 창가로 다가갔다. 날이 흐렸다. 텔레비전에서는 귀성길 정체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고 몇 년만의 긴 연휴에 말 그대로 민족 대이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그런 생각을 해야 할 때였다. 저런 건 더 이상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얘기들이라고. 세상에 가족 같은 것은 전부 다 얼어 죽어버릴 것들이라고 말이다.


 마당에는 여전히 개 두 마리가 쉴 새 없이 짖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눈 한쪽이 안 보이기 시작한 한 녀석이 경계심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툭하면 놀래서 짖었다. 바람이 불어서 제 털이 스스로를 간지럽히면 깜짝 놀라 짖기 시작하다, 이내 머쓱한 듯 짖는 소리가 수그러드는 식이었다. 그러면 반대편에서 나머지 한 녀석이 그 소리에 놀래 짖기 시작했고, 그 둘의 불협화음은 끝을 모르는 고속도로처럼 이어졌다.


 고속도로, 모든 걸 빠르게 연결해 준다던 그 길은 이내 내게서 가족들을 멀리 빼앗아가는 길로 변모했다. 그렇게 떠난 자식들은 곧잘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명절이 되면 돌아온다던데, 손주들을 이끌고 제 부모를 보기 위해 손에 과일이니 선물이니 하는 것들을 바리바리 들고서. 그런 것들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결심과 달리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뻐근해지기도 하고, 시큰해지기도 했지만. 나이가 든다고 모든 것에 무뎌지는 건 아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새 가정을 꾸렸다. 인생이 너무 긴 탓이었다. 자꾸만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어느 날엔 집행일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했다. 그 시간들을 견뎌내는 게 어려워 새 사람을 만났다. 이렇다 할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많이 아는 것치고는 무던한 사람이었다. 보통 많은 글자를 읽고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쉽게 예민해지고 비관하기 마련인데 그런 게 도통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이 세상을 진하게 낙관해 보자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손을 잡기로 결심했다. 남은 긴 인생을 같이 덤덤하게 보내 보자고. 이 결정에 사랑은 글쎄, 그런 건 차게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오빠 간대요?’

 작은 딸은 전화를 걸어와 물었다. 큰 아들이 오기로 했냐고 묻는 말이었다. 작은 딸이 오빠라고 부르는 녀석은 큰 아들뿐이었다. 큰 아들놈이 오냐고? 그런 걸 왜 묻는지 모르겠다. 큰 아들은 이미 몇 년째 얼굴을 비추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 큰 아들은 내가 새 가정을 꾸리기도 전에 질려버린 얼굴을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때가 5년 전이었는지, 6년 전이었는지 이제는 새삼 손가락을 접어보지 않는다. 아니, 안 온대. 짧은 내 대답에 작은 딸은 그럼 찬거리를 챙겨 갈 테니 점심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평생 작은 딸에겐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내 결정을 유일하게 지지하고 이해한 것은 오히려 이 작은 딸이었다. 작디작은 딸. 어려서부터 너무 작아서 저것이 어디 가서 밥벌이나 제대로 해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던 작은 딸. 그 걱정으로 평생을 엄하게 대했는데 이 녀석은 다 커서 나를 원망하기보다는 되려 연민을 품는다. 아마 작은 딸에게도 같은 시련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나서는 계속 거실을 서성거렸다. 창문 밖을 수시로 내다보며 손주 녀석의 차가 들어오지 않을까 살폈다. 거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짙은 엔진음 같은 게 들리면 얼른 고개를 들어 시선을 바깥으로 던졌다. 그러다 옆에서 ‘그러면 작은 딸이 더 빨리 오냐’는 우스갯 소리 비슷한 핀잔도 들었다. 빨리 오길 바라는 게 아니다. 조심해서 오기를, 오다가 다치지 않기를, 눈송이만큼이나 쉽게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작은 딸과 손주들이 부디 새로 이사한 이 집에 잘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시계가 12시를 넘겼을 무렵, 마침내 둔탁하게 굴러가는 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넘겨보니 진입로가 좁아서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듯 천천히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얼른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고 문을 열어젖혔다.


 “할머니, 건강히 잘 지내셨어요?”

 손주 녀석들은 차를 마당에 잘 대기도 전에 고개를 내밀어 묻는다. 곰살 맞은 녀석들이다. 평생 잘해준 것 하나 없는데, 여느 다른 손주들보다 예뻐하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지 엄마 말이라면 꿈쩍 못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기대도 못한 방문을 하면서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는다. 분명 불편할 텐데. 새 할아버지를 보는 것도, 같이 밥을 먹는 것도 하나도 쉽지 않을 텐데. 어쩌다 평생 사랑을 바쳤던 아들들에게 외면당했을까, 그런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작은 딸과 손주들은 점심해 먹을 재료와 반찬들을 챙겨 와 부엌과 거실을 드나들며 상을 차렸다. 너희들이 와서, 집 안이 이렇게 복작복작하니 명절 같아 좋다고 말했다. 그 말에 작은 딸이 웃었던가, 손주들이 눈을 맞췄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잠깐 눈앞이 흐려졌다. 커다란 상에 둘러앉아 어색한 식사를 하면서도 음식이 맵지는 않은지, 음료수가 필요하지는 않은지 자꾸 그런 것들을 챙겼다. 자꾸만, 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희한한 명절로 기억될 것이다. 허전함을 밀어내기 위해 만난 새 사람과 처음으로 맞이한 명절. 기대 이상으로 허전했으나, 또 그만큼 허전하지는 않았다고. 허전함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그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 명절이 다가오면 또 창가를 서성이겠지만, 그 기다림이 마냥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적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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