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목마른 사슴처럼 새로운 목적을 향해 기웃거리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틈만 나면 새로운 우물을 팠다. 업무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새로운 언어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나의 사는 것이 그 누구의 것과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해서.
그런 힘도 없는 날에는 우물이 아닌 동굴을 파고 들어가기 일쑤였다.
“성취감이 갖고 싶은 거면 운동을 좀 해봐.”
거꾸리 하듯 침대에서 늘어져 있는 나를 한심하게 보던 친구는 말했다. 운동이 성취도가 눈에 팍팍! 보여서 좋대. 팍팍!이라는 말에 손바닥 옆 날을 세워 박자에 맞춰 흔들며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운동? 그거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
“운동을 안 하니까 나약해지는 거지, 몸도 마음도.”
그는 나의 우스갯소리에 반응도 해주고 싶지 않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좀 재수 없다.”
나는 대화할 의지를 읽고 그만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래도 운동은 정말 싫은데. 안 그래도 우울증에 운동이 좋다는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시도를 안 해본 것도 아니다. 남들 다 하는 헬스, 스피닝, 복싱, 요가, 발레 등등 접근성이 높으면서 진입장벽이 낮은 운동은 다 해봤다. 3개월 이상을 못해서 그렇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라고? 아무리 인간이어도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코로나를 만났고 몇 주, 아니 몇 달 가까이 집 반경 5km를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하다 보니 문득 꿈속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아주 너른 운동장 트랙을 홀로 끝없이 질주하는 꿈을. 아무도 나를 막아서지 않았고, 내 심장도 다리도 너끈히 버텨주었다. 꿈속에서도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늘을 보고 뛰면 하나도 안 힘들다?”
고등학생 시절 함께 하교하던 길이 지루했던 한 친구는 냅다 달리면서 말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영문도 모르고 따라 뛰는 나를 향해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그랬던 그 말이 꿈속에서 다시 재생되었다. 구름 좀 봐 봐, 진짜 멋있지 않냐 – 그런 메아리 같은 울림과 함께. 바로 그날, 꿈에서 깨어나 이른 새벽 공기를 뚫고 근처 체육 센터 운동장으로 향했다. 한 번도 제대로 뛰어본 적 없지만 무작정 딱 30분만 너무 힘들면 걷다 뛰다를 반복해서라도 채워보자고 생각했다. 새벽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그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러닝은 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바꾸어 놓았다. 다리에 근육이 제대로 박힌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거의 천지차이였다. 내딛는 걸음걸음이 훨씬 더 안정적이라 이 세상 위에서 제대로 균형을 잡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와서 갑자기 태클을 걸어도 흠, 약해, 작게 중얼거리며 내 갈 길을 마저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스트레스 해소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 나를 둘러싼 모두가 갑자기 가시로 뒤덮인 옷을 입고 내 주변을 오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 커다란 곰인형을 품 속 가득 끌어안아도 해결되지 않을 만큼 예민해졌을 때, 그럴 때 더 이상 이불 속에 들어가서 울지 않았다. 대신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언제나 나를 살게 하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할 땐 내가 세상을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외에도, 활력이 생긴 것이나 이왕이면 몸에 좋을 것을 먹는 등 러닝은 내 일상의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저번 보다 조금 더 빠른 기록, 안정적인 페이스, 근육의 사용 이런 것들을 체크하며 나날이 향상되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은 더 이상 스스로에게 과연 잘 살고 있는지를 묻지 않도록 해줬다. 동태 같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왜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게 되었다. 대신 어떻게 하면 더 잘 뛸 수 있을까, 언제 뛰면 좋을까, 그런 계획을 세우게 만들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이렇게 딴생각을 최대한 줄이고 가는 대로만 간다면 분명 후회하지 않는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목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 삶은 의외로 쉽게 간단해질 수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