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렸던 그 밤도 나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언제나 나를 구원하는 것은 찢어지는 일렉 기타 소리와 멈췄던 심장을 제세동 시키는 킥드럼 소리였다.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귀에 꽂은 비싼 이어폰만큼은 절대로 빼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음 생엔 죽었던 사람도 다시 일으키는 연주를 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마음속에 쓰면서.
모든 걸 잃어버린 날에는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기가 좋다. 그래서 그날은 기타를 배우러 가기로 했다.
“기타 쳐 본 적 있어요?”
혹시 제 관상에 기타 줄이 보이시나요? 그럴 리가 없겠죠. 어렸을 적 엄마를 졸라 겨우 간 피아노 학원에서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법은 배웠어도 그 악보 위에 적힌 알파벳을 연주하는 법은 몰랐다.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강습비를 안내해 주면서 기타를 살 것인지 대여할 것인지 물었다. 초보일수록 자기 기타를 가져야 기타 관리 방법도 알고 집에서 편히 연습도 할 수 있다고 추천했다.
그러나 그런 입 놀림에 넘어가기에 내 월급은 작고 소중했으며 항상 내 지갑은 얇았다. 검소한 소비 습관이 내 몸과 정신을 지배한 지도 오래였다. 속으로 내심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중얼거리며 일단 기타는 대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날카로운 말솜씨는 나의 얇디얇은 지갑을 뚫기에 충분했다. 무엇이든 뚫는 창과 쉽게 뚫리는 방패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나는 심지어 선생님이 권유한 20만 원 대보다 비싸고 멋있게 생긴 30만 원 대의 기타를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었다.
당시 집중할만한 것이라고는 기타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금 더 정확히 기타에 집중이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하루에 2시간씩 기타를 연습했다. 회사에서 고된 일과를 마치고도 연습을 하기 위해 집에 뛰어갔다. 매주 성실히 강습에 나가며 새로운 코드와 주법, 노래를 배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기타 소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타 줄을 손 끝으로 튕길 때마다 퍼지는 아름다운 울림, 피크로 줄과 줄 사이를 화려하게 오갈 때 손 끝에 터지는 믿을 수 없는 쾌감. 꽤 오랫동안 기타가 나의 삶을 구원했다. 아쉽게도 딱 그 정도까지였지만.
“갑자기 왜요?”
선생님은 이제 기타를 그만 잡겠다는 나의 말에 30만 원 대 기타를 구매한다고 했을 때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 저 이제 시험 준비를 좀 해보려고요.”
침울해 보이는 표정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은 내게 더 많은 걸 묻지 않으셨다. 그저 나의 사생활에는 큰 관심이 없었을 확률도 높다. 대신 선생님은 나중에라도 꼭 다시 기타를 치라고, 너무 열심히는 말고 조금씩 오랫동안 치라고, 그러면 기타는 참 좋은 악기라고 덧붙일 뿐이었다.
“당연하죠.”
당연한 얘기지만 시험에 합격하고도 나는 기타를 다시 잡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기타를 칠 때 생기는 손톱 밑의 굳은살들이 너무 거슬렸다. 타이핑을 할 때마다 손 끝에 전해지다 마는 둔탁한 느낌이 싫었다. 그 대신 음악을 열심히 듣는 걸 선택했다. 음악은 굳이 내가 연주하지 않아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어떤 것이었다. 삶이 고통스러울 땐,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어두운 방 안 침대 속으로 들어가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절대 잃어버리거나, 망가트리면 안 되는 비싸고 소중한 이어폰을.
그러다 이어폰이 줄 수 없는 현장감을 느끼고 싶을 때면 여지없이 공연장으로 향했다. 좋아했던 아이돌 콘서트, 인디 밴드, TV 오디션으로 유명해진 가수들을 가릴 것 없이. 무대 양편으로 커다란 곤충 마냥 달려있는 스피커에서 쿵, 비트가 쏟아지면 그 진동이 발끝부터 심장까지 전해져 내 심장에서 다시 쿵, 하는 것이 느껴졌다. 죽었던 영혼이 되살아나는 기분. 그걸 느끼고 싶어서 계속 공연을 보러 다녔다.
얼마 전엔 처음으로 야외에서 열리는 한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잘 모르기도 하는 가수들이 다수 출연하는 공연이었다. 이틀 동안 진행되는 페스티벌이었는데 고민할 것 없이 이틀권을 끊어 양일 모두 참여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날이 선선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야외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멀리 퍼지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커다란 공간을 꽉 채우며 그 안에 여러 가지 서사를 부여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많은 사람들과, 이 파동과, 이 세상과 나는 연결되어 있구나, 세상이 비교적 다정하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함께 페스티벌을 갔던 친구에게 말했다. 피곤할 때 당을 충전하듯, 삶이 메마를 때 우리는 음악을 충전해 주자고. 어느 날 눈을 떠 양치를 하는 내 표정이 너무도 무미건조하다면 다시 공연장을 찾자고. 그러면 이 세상이 한결 나은 곳으로 느껴질 테니 곧, 다 괜찮을 거라고 말이다. 다시 한번 나를 일으키는 것은 내가 사랑한 음악이었음을.